2012 KOCUN 인권강좌 <차별은 ‘반’인권이다>를 듣고
인턴 황현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는 ‘인권’이라는 주제 하나로 사람들이 모였다.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삼일 간 2012 하반기 KOKUN 인권강좌가 <차별은 ‘반’인권이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것이다.
첫 번째 날은 인권에 대한 보편적인 시각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첫 강의에서는 인권교육센터 ‘들’의 루트 활동가가 ‘차별’의 감수성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차별과 인권 침해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생활 속의 차별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간단한 활동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사회에서 차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대상 중 하나를 등 뒤에 써 붙이고 같이 인권강좌에 참가한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나는 내게 어떤 문구가 붙어있는지 모른 채 눈을 감고 사람들이 이 대상에 대해 어떤 편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주책 맞다”, “늙어서 뭐 하는 거냐” 등등 현실에서는 이 대상이 아님에도 귀에 거슬리는 말들 이었다. 등 뒤에 붙어있던 종이를 확인한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등 뒤에 대상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하철에서 스킨십하는 노부부”였다. 차별의 대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대상도 사람의 기본감정인 사랑에 대하여 차별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활 가까이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만든 ‘정상’이라는 기준에 의해 차별을 당하고 인권을 침해 당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또한 우리가 인지하고 있던 대상일지라도 그 사람이 어떤 말을 들으며 어떻게 상처를 받는지 몸소 느껴보니 그 무게감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배타성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인지하고 보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 강좌 첫째날 그룹 활동>
두 번째 강의는 “인권을 외치다”의 저자인 류은숙 인권활동가의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강연이었다. 먼저 강연의 도입에서는 “헤쳐 모여”라고 하여, 사람을 개개인으로 보되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연대하여 서로의 인권을 지켜주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연대는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져왔는데, 예를 들어 고대사회에서 ‘시민의 연대’의 시민은 여성 노예 그리고 외국인을 배제한 것이었던 것이다. 현대사회의 연대는 정치적 연대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헤쳐 모여’의 정신을 담은 연대적 개인주의가 아닌 소비적∙소유적 개인주의로 흐르고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기억에 남는 강의는 셋째 날 국내 이주민 인권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의 이란주 대표님은 4명의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사회와 정책에 대해 말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외국인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청년실업을 이야기하는 젊은 인력들은 더 나은 세계와 일자리를 위해 외국으로 나가고 한국의 일자리는 이런 인력들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배려가 충분하며, 적어도 진전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정말 이 문제들에서 무관심해도 될 만큼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은 보호되고 있는 것일까? 4명의 이주노동자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최근의 일어난 어느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였다. 그는 얼굴의 상처를 입은 채 경찰서에 앉아있었다. 그의 뒤에는 그의 사장님이 그가 회사를 옮기기 위해 자해를 했다고 진술을 하며 씩씩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그는 자신을 위한 변명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도움을 요청 받은 아시아인권문화연대에서 온 분이 그 이주 노동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상황은 이러했다. 이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는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빼앗은 사장님의 부당한 대우를 한국말을 잘하는 친구에게 토로했고 그의 친구는 사장님한테 부당한 대우를 그만해 달라 연락을 했던 것이다. 이를 들은 사장은 분노했고 이 분노는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를 향한 폭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진술이 이어지자 사장은 경찰서에서 도망치듯 나왔다고 한다. 언제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해주고 있음에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아야만 하는가?
외국인 이주민의 문제는 노동자들뿐 아니라 이주아동들에게까지 이어져왔다.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의 석원정 활동가는 대부분의 이주아동들은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에 진학하는 데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며 학교에 진학한다고 해도 학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거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등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차별뿐만 아니라, 이렇듯 환경의 영향으로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불이익에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인권, 말 그대로 풀이하면 사람의 권리라는 뜻이다. 상당히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어디까지이며, 누가 정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가 충돌 할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렇듯 인권에 관한 정의는 본질적으로 요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논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권강좌도 그러한 우리사회의 노력의 일환이다. 이번 강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인권 강좌를 시작으로 조금이나마 우리 사회의 인권 진보를 위해 노력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12 KOCUN 인권강좌 <차별은 ‘반’인권이다>를 듣고
인턴 황현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는 ‘인권’이라는 주제 하나로 사람들이 모였다.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삼일 간 2012 하반기 KOKUN 인권강좌가 <차별은 ‘반’인권이다>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것이다.
첫 번째 날은 인권에 대한 보편적인 시각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첫 강의에서는 인권교육센터 ‘들’의 루트 활동가가 ‘차별’의 감수성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차별과 인권 침해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생활 속의 차별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은 간단한 활동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사회에서 차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대상 중 하나를 등 뒤에 써 붙이고 같이 인권강좌에 참가한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나는 내게 어떤 문구가 붙어있는지 모른 채 눈을 감고 사람들이 이 대상에 대해 어떤 편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주책 맞다”, “늙어서 뭐 하는 거냐” 등등 현실에서는 이 대상이 아님에도 귀에 거슬리는 말들 이었다. 등 뒤에 붙어있던 종이를 확인한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등 뒤에 대상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지하철에서 스킨십하는 노부부”였다. 차별의 대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대상도 사람의 기본감정인 사랑에 대하여 차별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활 가까이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만든 ‘정상’이라는 기준에 의해 차별을 당하고 인권을 침해 당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또한 우리가 인지하고 있던 대상일지라도 그 사람이 어떤 말을 들으며 어떻게 상처를 받는지 몸소 느껴보니 그 무게감이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배타성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인지하고 보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권 강좌 첫째날 그룹 활동>
두 번째 강의는 “인권을 외치다”의 저자인 류은숙 인권활동가의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강연이었다. 먼저 강연의 도입에서는 “헤쳐 모여”라고 하여, 사람을 개개인으로 보되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연대하여 서로의 인권을 지켜주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연대는 부분적으로만 이루어져왔는데, 예를 들어 고대사회에서 ‘시민의 연대’의 시민은 여성 노예 그리고 외국인을 배제한 것이었던 것이다. 현대사회의 연대는 정치적 연대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헤쳐 모여’의 정신을 담은 연대적 개인주의가 아닌 소비적∙소유적 개인주의로 흐르고 있으므로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기억에 남는 강의는 셋째 날 국내 이주민 인권에 관한 내용이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의 이란주 대표님은 4명의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한국사회와 정책에 대해 말했다. 지금 한국사회는 외국인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청년실업을 이야기하는 젊은 인력들은 더 나은 세계와 일자리를 위해 외국으로 나가고 한국의 일자리는 이런 인력들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배려가 충분하며, 적어도 진전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정말 이 문제들에서 무관심해도 될 만큼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은 보호되고 있는 것일까? 4명의 이주노동자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최근의 일어난 어느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였다. 그는 얼굴의 상처를 입은 채 경찰서에 앉아있었다. 그의 뒤에는 그의 사장님이 그가 회사를 옮기기 위해 자해를 했다고 진술을 하며 씩씩대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그는 자신을 위한 변명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도움을 요청 받은 아시아인권문화연대에서 온 분이 그 이주 노동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상황은 이러했다. 이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는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빼앗은 사장님의 부당한 대우를 한국말을 잘하는 친구에게 토로했고 그의 친구는 사장님한테 부당한 대우를 그만해 달라 연락을 했던 것이다. 이를 들은 사장은 분노했고 이 분노는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를 향한 폭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진술이 이어지자 사장은 경찰서에서 도망치듯 나왔다고 한다. 언제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해주고 있음에도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아야만 하는가?
외국인 이주민의 문제는 노동자들뿐 아니라 이주아동들에게까지 이어져왔다.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의 석원정 활동가는 대부분의 이주아동들은 한국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에 진학하는 데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며 학교에 진학한다고 해도 학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거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등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당장에 눈에 보이는 차별뿐만 아니라, 이렇듯 환경의 영향으로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불이익에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인권, 말 그대로 풀이하면 사람의 권리라는 뜻이다. 상당히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어디까지이며, 누가 정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가 충돌 할 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렇듯 인권에 관한 정의는 본질적으로 요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논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권강좌도 그러한 우리사회의 노력의 일환이다. 이번 강연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인권 강좌를 시작으로 조금이나마 우리 사회의 인권 진보를 위해 노력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