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역사로서의 현재>
1강 : 불평등의 역사
- 김만권, 정치철학자
인권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불평등이다. 그러나 불평등이 어떻게 생겨났고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인간은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불평등은 이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하는 일종의 이야기를 만들어놓은 것이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이며 불평등의 기원을 다루는 유일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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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 그 누구와도 다른 삶

▲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루소는 18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이다. 현대에는 그가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당대에는 소설가로 훨씬 유명했으며,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와 ‘부를 많이 가진 사람’의 경계가 약한 현대(예: 빌 게이츠)와 달리, 루소는 늘 생활고에 시달렸다.
루소의 아버지는 너무나 가난함에도 늘 열심히 독서하고, 항상 제네바 시민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들인 루소는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였고 10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 친척의 도움으로 근근이 공부를 했다. 어머니는 루소가 태어난 뒤 9일 만에 돌아가셨는데, 이후 이를 알게 된 루소는 자신을 ‘비극의 씨앗’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이 자기에게 오고 있다는 피해망상에도 시달리는 등 인간의 양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정치철학자 중에서도 루소는 특이했다. 대부분은 이성을 중시하고 이성적인 사회를 갈망했던 반면 루소는 모든 인간의 시작은 감성 또는 감정이라고 하며 연민의 감정에 대해 열심히 탐구한 사람이었다. 즉, 고통에 처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고통 속에서 구해내고 싶은 인류의 감정을 가장 먼저 강조했던 사람이 루소다.
1789년 프랑스 대학명 당시 ‘모두를 연민하라’는 구호가 많이 외쳐졌는데, 연민의 감정을 프랑스인에게 전달한 것도 루소였으며 혁명에 불을 지핀 것도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이었다. 상상해서 쓴 글이 실질적인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주게 된 셈이었다.
불평등은 인간의 본성인가 v. 사회구조 때문인가
불평등이 인간의 본성이 발현되어 만들어진 문제인지, 아니면 사회구조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것이 문제인지는 중요한 질문이다. 무엇이 근본적인 것인가를 알면 무엇에 투자해야하는지, 즉 정책의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의 본성이 원인이라면 교육이 대책이고 구조가 문제라면 정치체계(정당제도, 시민사회 등)를 바꿔야할 것이다.
『사회계약론』에서 등장하는 ‘자연상태’는 인간의 본성에 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정치사회가 성립하기 이전의 상태를 일컫는다. 제네바에서 나고 자란 루소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제네바의 모습처럼 각기 떨어져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로 인간은 고독한 상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모여 살면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었다. 모여 살 때 자연상태에서 선했던 인간이 타락하고, 타락한 사회가 인간을 불평등에 몰아넣는다고 생각했다.
루소가 상상한 불평등의 시작

▲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 표지.
“그는 평등한 상태로 되돌아갔다(Il retourne chez les Egaux)'라고 써져 있다.
연민과 동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선한 존재들이 모여살게 되면서 어떻게 불평등으로 나아갔을까. 루소는 그 시작을 ‘자기애(amour propre)’라고 얘기했는데, 이는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의미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오두막 앞이나 큰 나무 주위에 자주 모이게 되었다. 연애와 여가의 진정한 소산이라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이, 모여든 한가한 남녀들의 심심풀이라기보다는 매일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저마다 남을 주목하고 자신도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노래를 가장 잘 부르고 춤을 가장 잘 추는 사람, 얼굴이 잘 생기거나 힘이 센 사람, 재주가 가장 뛰어나거나 언변이 가장 좋은 사람은 존경을 받았다. 이것이 불평등을 향한, 동시에 악덕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주목받는다’는 것은 차이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자질을 실제 갖추거나 적어도 갖추고 있는 척이라도 해야했다. 결국 자기애는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돋보이고자 하는, 내가 아닌 사람의 행세를 하는 ‘허영’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주목’과 ‘허영’은 자신의 존재감을 오로지 타인과의 비교, 타인의 판단에서 이끌어낸다. 흔히 ‘사회화’라고 하는 과정 자체가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방식을 배우고, 인정을 받는 과정이다.
미개인은 자신 안에서 산다. 항상 자신을 떠나서 존재하는 사회적 인간은 오로지 타인의 의견 속에 살 수 있을 뿐이며, 또한 자신의 존재감을 오로지 타인의 판단에서 이끌어낸다.
루소는 또한 불평등의 시작은 여가라고 주장했다. 생활만 보았을 때는 필요가 없고 더해진 활동이 여가를 통해 가능해졌고 이는 사치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여가에서 나오는 것이 예술의 향락이었으며, 과학기술의 진보로 여가시간은 더욱 많이 생겨났기 때문에, 과학과 예술을 묶는 ‘문명역시 여가와 사치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봤다. 과학과 예술이 넘치는 ‘사치스러운 삶’의 결과는 당연히 도덕의 타락과 붕괴라고 믿었다.
불평등의 구조에 대한 해답은 정치사회이다
루소 역시 불평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유재산이라 믿었다. 애초에 공유물이었던 것들이 어떻게 사유물이 되고, 어떠한 것들이 사유물이 되었을까.
루소에 따르면, 어느 날인가 갑자기 누가 어떤 땅에 울타리를 친 다음, ‘이 땅이 내 땅이다’라고 주장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래, 너의 땅이다’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단 한사람만이라도 ‘그곳은 모두의 땅이다’라고 반론을 제기했다면 불평등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인간이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것을 가진 인간들이 단순히 더 많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굴종하는 인간을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 알았을 때 그 이상의 쾌락이 없었다.
부유한 자들은 남을 지배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자 다른 쾌락을 무시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가장 강한 자 또는 가장 궁핍한 자가 자신들의 힘이나 욕구 자체를 타인의 재산에 대한 일종의 권리 - 그들이 볼 때 소유의 권리와 동등한 권리 - 로 생각함에 따라평등은 깨어지고 끔직한 무질서가 초래되었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자신은 인간이 자연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유재산이 생기고 개인이 커지는 구조가 존재하는 한 불평등의 구조를 해체시킬 수 없으며 인간의 악덕은 구조에서 재생산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을 가진 사람,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법을 만들고 정착시키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수정하고 고치는 방법은 강력한 정치공동체라고 믿었으며, 따라서 『인간불평등 기원론』 표지에 쓰여있는 “평등한 상태”는 사회계약론을 의미한 것이었다. 루소에게 정치사회란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구조가 확고한 상태이다. 만일 그러한 효과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정치사회가 성립된 사회가 아닌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루소가 지금의 사회를 바라보았을 때, 정치사회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현대의 불평등에 비추어보다
과거의 불평등은 불평등의 구조 속에서 현재 더욱 악화되었다. 세계화가 진행되기 이전인 1970년대에는 가난한 국가가 지고 있던 빚이 6,000억이었다면, 지금은 7,000조로 불어났다. 전 인류의 2/3은 하루에 $3 이하로 생활하고 있는 반면, 전 세계 군사비의 1%만 전가해도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을 먹이고 학교에 보낼 수 있다. 10년 전에는 2:8 사회였다면, 지금은 1:99 사회로 갔다. 다국적 기업의 경제규모는 국가와 수준을 나란히 하며, 일례로 아프리카 국가 중 다수는 삼성보다 경제규모가 훨씬 작다.

▲ 과거 프랑스 대혁명을 현대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사회에 비추어
재구성한 이미지. (출처보기)
우리나라의 경우, IMF가 발생한 1997년이 하나의 기점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생산자 중심의 사회, 일자리가 넘치는 사회였으나 이후 산업구조 자체가 역전되었다. 인간이 아닌 기계가 생산하고, 노동력을 국내에서 구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청년들의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리한 것은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뿐이다. 즉, 언어가 되고, 국경을 넘어도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인데, 대부분의 중산층이나 중하위층은 그러한 여건에 있지 못하다.
생산자 사회 이후, 현재는 소비자 사회가 되었다. 내가 무엇을 소비하는가가 나의 정체성, 나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 실제로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한 사회다. 또한 루소의 말대로 현대사회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주목하고 재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부를 안겨주고 있기도 하다. 일례로, 어떤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도 시급이 5,000원대에 머무르는 반면, 노래를 잘 부르면 5분만 노래를 불러도 몇 천 만원을 벌기도 한다.
이러한 소비자 사회 무엇인가를 소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열등한 위치에 있게 되며, 자기경멸의 구조를 생산한다. 자기경멸은 자연히 타자에 대한 경멸로 이어지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유행하는 감정은 '모멸감'이다.
근대 사회의 불평등은 이전 아날로그 시대가 겪은 불평등과 구조 자체가 아예 다르다. 세계화와 발전된 산업, 디지털 문명 등으로 인해서다. 우리나라의 구조가 바뀐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정치 흐름으로는 인권의 세계화가 유일한데 전혀 고착화되고 있지 못하다. '보호의 의무'를 버린 현대의 국가에서는 연대만이 힘이다. 역사는 요구하지 않는 자의 요구를 들어준 적이 없으며, 요구하는 방식은 여전히 정치 속에 있다. 때문에 청년실업의 시대에서 새로운 직업은 정치 속에 그 답이 있다.
강사 김만권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뉴욕의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정치학 박사과정에서 입헌주의 정치 및 정치이론을 전공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현대 자유주의 정치철학 입문』, 『불평등의 패러독스 : 존 롤스의 정치철학과 분배정의』,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 정치와 사회에 관한 철학에세이』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만민법(공역)』 등이 있다. 철학, 정치, 법을 함께 아울러 간결하고 쉬운 말로 세상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다(출처: 교보문고).
제 3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역사로서의 현재>
1강 : 불평등의 역사
- 김만권, 정치철학자
인권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불평등이다. 그러나 불평등이 어떻게 생겨났고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인간은 그 답을 알지 못한다. ‘불평등은 이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하는 일종의 이야기를 만들어놓은 것이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이며 불평등의 기원을 다루는 유일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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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 그 누구와도 다른 삶
▲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루소는 18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이다. 현대에는 그가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당대에는 소설가로 훨씬 유명했으며,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와 ‘부를 많이 가진 사람’의 경계가 약한 현대(예: 빌 게이츠)와 달리, 루소는 늘 생활고에 시달렸다.
루소의 아버지는 너무나 가난함에도 늘 열심히 독서하고, 항상 제네바 시민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들인 루소는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였고 10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 친척의 도움으로 근근이 공부를 했다. 어머니는 루소가 태어난 뒤 9일 만에 돌아가셨는데, 이후 이를 알게 된 루소는 자신을 ‘비극의 씨앗’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들이 자기에게 오고 있다는 피해망상에도 시달리는 등 인간의 양면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정치철학자 중에서도 루소는 특이했다. 대부분은 이성을 중시하고 이성적인 사회를 갈망했던 반면 루소는 모든 인간의 시작은 감성 또는 감정이라고 하며 연민의 감정에 대해 열심히 탐구한 사람이었다. 즉, 고통에 처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을 고통 속에서 구해내고 싶은 인류의 감정을 가장 먼저 강조했던 사람이 루소다.
1789년 프랑스 대학명 당시 ‘모두를 연민하라’는 구호가 많이 외쳐졌는데, 연민의 감정을 프랑스인에게 전달한 것도 루소였으며 혁명에 불을 지핀 것도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이었다. 상상해서 쓴 글이 실질적인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주게 된 셈이었다.
불평등은 인간의 본성인가 v. 사회구조 때문인가
불평등이 인간의 본성이 발현되어 만들어진 문제인지, 아니면 사회구조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것이 문제인지는 중요한 질문이다. 무엇이 근본적인 것인가를 알면 무엇에 투자해야하는지, 즉 정책의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의 본성이 원인이라면 교육이 대책이고 구조가 문제라면 정치체계(정당제도, 시민사회 등)를 바꿔야할 것이다.
『사회계약론』에서 등장하는 ‘자연상태’는 인간의 본성에 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정치사회가 성립하기 이전의 상태를 일컫는다. 제네바에서 나고 자란 루소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제네바의 모습처럼 각기 떨어져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로 인간은 고독한 상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태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모여 살면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었다. 모여 살 때 자연상태에서 선했던 인간이 타락하고, 타락한 사회가 인간을 불평등에 몰아넣는다고 생각했다.
루소가 상상한 불평등의 시작
▲ 장 자크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 표지.
“그는 평등한 상태로 되돌아갔다(Il retourne chez les Egaux)'라고 써져 있다.
연민과 동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선한 존재들이 모여살게 되면서 어떻게 불평등으로 나아갔을까. 루소는 그 시작을 ‘자기애(amour propre)’라고 얘기했는데, 이는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의미한 것이었다.
‘주목받는다’는 것은 차이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자질을 실제 갖추거나 적어도 갖추고 있는 척이라도 해야했다. 결국 자기애는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돋보이고자 하는, 내가 아닌 사람의 행세를 하는 ‘허영’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주목’과 ‘허영’은 자신의 존재감을 오로지 타인과의 비교, 타인의 판단에서 이끌어낸다. 흔히 ‘사회화’라고 하는 과정 자체가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방식을 배우고, 인정을 받는 과정이다.
루소는 또한 불평등의 시작은 여가라고 주장했다. 생활만 보았을 때는 필요가 없고 더해진 활동이 여가를 통해 가능해졌고 이는 사치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여가에서 나오는 것이 예술의 향락이었으며, 과학기술의 진보로 여가시간은 더욱 많이 생겨났기 때문에, 과학과 예술을 묶는 ‘문명역시 여가와 사치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봤다. 과학과 예술이 넘치는 ‘사치스러운 삶’의 결과는 당연히 도덕의 타락과 붕괴라고 믿었다.
불평등의 구조에 대한 해답은 정치사회이다
루소 역시 불평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사유재산이라 믿었다. 애초에 공유물이었던 것들이 어떻게 사유물이 되고, 어떠한 것들이 사유물이 되었을까.
루소에 따르면, 어느 날인가 갑자기 누가 어떤 땅에 울타리를 친 다음, ‘이 땅이 내 땅이다’라고 주장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래, 너의 땅이다’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단 한사람만이라도 ‘그곳은 모두의 땅이다’라고 반론을 제기했다면 불평등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인간이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더 많은 것을 가진 인간들이 단순히 더 많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굴종하는 인간을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를 알았을 때 그 이상의 쾌락이 없었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자신은 인간이 자연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유재산이 생기고 개인이 커지는 구조가 존재하는 한 불평등의 구조를 해체시킬 수 없으며 인간의 악덕은 구조에서 재생산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을 가진 사람,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법을 만들고 정착시키면서 불평등을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수정하고 고치는 방법은 강력한 정치공동체라고 믿었으며, 따라서 『인간불평등 기원론』 표지에 쓰여있는 “평등한 상태”는 사회계약론을 의미한 것이었다. 루소에게 정치사회란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구조가 확고한 상태이다. 만일 그러한 효과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정치사회가 성립된 사회가 아닌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루소가 지금의 사회를 바라보았을 때, 정치사회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현대의 불평등에 비추어보다
과거의 불평등은 불평등의 구조 속에서 현재 더욱 악화되었다. 세계화가 진행되기 이전인 1970년대에는 가난한 국가가 지고 있던 빚이 6,000억이었다면, 지금은 7,000조로 불어났다. 전 인류의 2/3은 하루에 $3 이하로 생활하고 있는 반면, 전 세계 군사비의 1%만 전가해도 전 세계 모든 아이들을 먹이고 학교에 보낼 수 있다. 10년 전에는 2:8 사회였다면, 지금은 1:99 사회로 갔다. 다국적 기업의 경제규모는 국가와 수준을 나란히 하며, 일례로 아프리카 국가 중 다수는 삼성보다 경제규모가 훨씬 작다.
▲ 과거 프랑스 대혁명을 현대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사회에 비추어
재구성한 이미지. (출처보기)
우리나라의 경우, IMF가 발생한 1997년이 하나의 기점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생산자 중심의 사회, 일자리가 넘치는 사회였으나 이후 산업구조 자체가 역전되었다. 인간이 아닌 기계가 생산하고, 노동력을 국내에서 구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청년들의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리한 것은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뿐이다. 즉, 언어가 되고, 국경을 넘어도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인데, 대부분의 중산층이나 중하위층은 그러한 여건에 있지 못하다.
생산자 사회 이후, 현재는 소비자 사회가 되었다. 내가 무엇을 소비하는가가 나의 정체성, 나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 실제로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한 사회다. 또한 루소의 말대로 현대사회는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주목하고 재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부를 안겨주고 있기도 하다. 일례로, 어떤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도 시급이 5,000원대에 머무르는 반면, 노래를 잘 부르면 5분만 노래를 불러도 몇 천 만원을 벌기도 한다.
이러한 소비자 사회 무엇인가를 소비하지 못하는 사람은 열등한 위치에 있게 되며, 자기경멸의 구조를 생산한다. 자기경멸은 자연히 타자에 대한 경멸로 이어지며, 이러한 구조 속에서 유행하는 감정은 '모멸감'이다.
근대 사회의 불평등은 이전 아날로그 시대가 겪은 불평등과 구조 자체가 아예 다르다. 세계화와 발전된 산업, 디지털 문명 등으로 인해서다. 우리나라의 구조가 바뀐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정치 흐름으로는 인권의 세계화가 유일한데 전혀 고착화되고 있지 못하다. '보호의 의무'를 버린 현대의 국가에서는 연대만이 힘이다. 역사는 요구하지 않는 자의 요구를 들어준 적이 없으며, 요구하는 방식은 여전히 정치 속에 있다. 때문에 청년실업의 시대에서 새로운 직업은 정치 속에 그 답이 있다.
강사 김만권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동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뉴욕의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정치학 박사과정에서 입헌주의 정치 및 정치이론을 전공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현대 자유주의 정치철학 입문』, 『불평등의 패러독스 : 존 롤스의 정치철학과 분배정의』,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 정치와 사회에 관한 철학에세이』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만민법(공역)』 등이 있다. 철학, 정치, 법을 함께 아울러 간결하고 쉬운 말로 세상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다(출처: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