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아카데미] 3강 - 과거사 청산과 이행기 정의

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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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역사로서의 현재>

3: 과거사 청산과 이행기 정의

- 이영재, 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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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볼 수 있는 호프집을 한 번 연상해보자. 갑자기 한 남성이 술에 취해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성을 구타했다.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제3자고 이러한 현장을 목격했다. 내가 혼자서 남성을 바로 제압하는 방법 혹은 여러 명이서 공동으로 제압하는 방법, 그리고 신고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이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이 속이 풀릴 때까지 같은 방법으로 응징하는 방법도 있고 여론에 의해 파렴치범을 만드는 방법, 신고를 통해 법에 의한 처벌을 받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준다고 했을 때에는 가해자를 무조건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 상황을 모면하고 나면 다른 곳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청산,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

 

위와 같은 사례를 국가차원으로 확대해보았을 때, 청산 방법은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어떻게든 죄를 묻고 처벌하는 방법(정의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뉘우칠 경우 사회용서를 전제로 관련 진실을 유도하는 방법(진실모델)이다. 1·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의 경우,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에 전부 법정에 세워지고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가해자들이 진실을 얘기하고 반성을 하면, 과거를 묻지 않고 화해의 단계에 들어갔다. 이처럼 사건과 형태에 따라 청산 방법은 다를 수 있다.

 

피해자에 대해서는 흔히 치료비와 위로금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호프집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술 먹을 돈을 모아 치료비를 줄 수도 있고 가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물게 할 수도 있다. 유엔의 원칙에 따르면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배상이나 보상을 할 때, 피해자의 원상태, 즉 피해를 입기 전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례로, 장애를 입었을 경우 또는 죽었을 경우가 있다. 때문에 앞서 가해자를 중심으로 한 청산 방법 2가지와 더불어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배상모델이 있다.

 

우리나라의 과거청산의 90%는 배()상모델에 가깝다. ‘배상은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금을 주는 것이고 보상은 국가의 잘못과는 무관하게 국가가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다. 배상이 인정된 경우는 5.18 광주항쟁이 유일하다. 이들에 대한 배상은 그날로부터 17년이 흐른 이후인 1997년에 와서 처음으로 광주보상은 배상으로 본다518특별법제정에 따라 인정되었다. 한편, 5.18과 관련하여 두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노태우 씨가 처벌을 받은 것이 정의모델이 유일하게 제대로 관철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왜 이러한 형태인가. 흔히 19876월 항쟁을 대한민국 민주화 이행기 시점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군부 쿠데타를 일소하고 민주화를 일궈내기 보다는 권위주의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공존하는 방식의 민주화 이행을 이루었다. 일반적으로 민주화로의 이행은 쿠데타 세력을 투옥시키거나 축출하여 정치적 동력을 거세하여 이뤄지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평화롭고 타협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된 대표적인 사례로 일컬어진다. 한편 이런 경우, 국가폭력의 행위자들이 여전히 정치적 세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처벌을 주장했을 시 정치세력이 양분화 되어 처벌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진다. 따라서 가해자가 잘못을 시인했는지 묻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만 논의가 되어왔다.

 

이행기 정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행이라고 하는 것은 정지해있는 것이 아니라 군부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형태가 고정되어있지 않다. 가령 전쟁이 있었을 경우, 이행기 정의의 추상적 정의는 평화이다. 그러나 대량 학살은 양측이 싸움이 되기 때문에 일어났던 전쟁과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평화보다는 생명 또는 인권이 이행기 정의로 적합할 것이다. 그렇다면 군부 권위주의는 어떠할까. 이에 대한 이행기 정의는 민주화이다. 독재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데 있어서 민주주의가 확립될 수 있다.

 

따라서 이행기 정의에 있어서의 정의는 분배의 정의가 아니라 교정적인(corrective),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형태를 띤다. 현재의 상황을 최대한 공정하고 평등하게 만들어서 미래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규범과 정의, 미래 가치의 확립이다.

 

우리나라의 과거청산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의 과거청산은 다층적 구조가 특징이다. 여러 형태의 층위가 있고 이행기 정의도 다양하다. 그 이유는 한국이 식민지, 해방, 분단, 전쟁, 쿠데타, 군부독재를 한 세기 안에 압축적으로 경험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을 국가범죄 박물관으로 여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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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강의 PPT자료)

 

단계별 가해자는 비교적 명확하나, 피해자의 문제는 더욱 어렵다. 적극적으로 항거한 이도 있었고 일방적 피해를 받은 사람 중 누구에게 배상을 많이 해줘야 할까. 이를테면 5.18 당시 항쟁하는 시민도 있었지만 항거와 무관한 상황에서 사고를 당한 경우도 있다. 즉 국가공권력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과정에 피해를 입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일방적 피해의 사례가 있다. 때문에 보상 또는 배상과 유공을 둘러싸고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개별 사건을 청산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만들어졌던 특별법과 위원회만 15개에 달했으나, 이를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한 시도가 노무현 정권 때 설립됐던 진실화해위원회(이하 진화위). 진화위는 포괄적인 과거청산을 위한 일종의 실험이었다. 가해자의 층위와 피해자의 층위가 각기 다른데 청사진이 없이 시작하였고, 이를 도입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위원회는 무력화되었다. 결국 진실규명의 전제인 조사권과 국가의 협조 확보에 실패했고 이후 정권에 따라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과거청산은 보상과 무죄판결을 받았는지 여부에 따라 피해자 간의 골을 남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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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강의 PPT자료)

 

과거청산, 국민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이에 대해 국민들은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까. 세대를 25년 주기로 나누고 1세대를 19805.18 참가자로 가정하면, 2세대는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학생운동세력이 된다. 이들에겐 5.18이 가깝게 다가오나 이들의 자녀들에게는 먼 이야기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투쟁해본 적도 없고 왜 해야하는 지에 대한 당위도 없다. 체험세대도 기억세대도 아니나 새로운 세대에게 이행기 정의가 제대로 관철되지 않았을 때의 영향은 크다.

 

▼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출처: 강의 PPT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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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갈등의 현주소

 

Case 1.제주도를 가면, 4.3 기념공원이 있다. 거기에는 피해자의 이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혹시 이름들이 몇 개 훼손된 것을 보았는가. 이는 관리 소홀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국가폭력의 희생자라고 분류되는 이들끼리 맺힌 원한이 많아 서로 가해자라고 지칭하며 상대 가문의 이름이 적힌 기념물을 훼손한 것이다. 4.3 당시 3집 걸러 1집이 죽었는데, 1집은 고발자였다. 때문에 현재에도 혼인 문제에 있어서 살았던 마을과 성씨를 따진다.

Case 2.1975, 8명의 사형수가 사형당한 인혁당 사건이 발생했다. 3년 전, 재판부 판결보다 사형 공문 작성이 더 빨랐다는 것이 밝혀졌다.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하기도 전에 사형이 집행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인혁당 사건의 연루된 사람들은 배상도 받고, 무죄판결도 받았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와서 돌연 배상금 중 상당수 금액을 계산을 잘못했다며 배상금 일부를 반환해갔다. 1인당 회수금이 4~5억 원에 달했는데, 피해자들은 현재 70~80대 노인들이다. 이들의 가족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고 배상금을 보태 겨우 집을 장만하여 자식들을 결혼시켰는데, 그렇게 마련한 집을 팔아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Case 3.대한민국 헌정질서의 시작을 1948년 정부수립일로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19193.1운동 한 달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정안이 나왔었고 그로부터 우리나라 헌법이 이어진다. 헌법 전문을 봐도 3.1운동 정신과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것이 출발선이며 그러한 헌정질서의 흐름에 따라서는 식민시기 친일했던 사람들의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 이명박 정부가 1948815일을 건국일로 주장한 적이 있었다. 최근까지도 이 건국절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 헌법 전문에 나타난 대한민국 법통의 연원을 따져 본다면, 우리는 일제강점기 31운동과 임시정부로 이어지는 헌정질서의 연원을 가진다. 현실적으로 친일매국 행위를 통한 재산축적을 문제 삼을 수 있는 것도 이러한 법통의 해석에서 가능한 것이다.

 

왜 이행기 정의가 필요한가. 우리나라에 적용해보면, 해방 이후 독립투사들이 귀국했을 때 이미 이승만을 중심으로 세력이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전쟁 국면에 들어갔고 당시 말을 할 줄 알고 글을 쓸 줄 알았던 지식인들이 많이 죽었다.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많이 죽었다. 이러한 역사를 경험한 사회의 규범과 정의는 집회에 나가지 마라’, ‘사회활동에 눈 감고 앞만 보고 가라식이 된다. 이행기 정의는 이렇듯 왜곡된 규범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고 솔선수범한 사람에게 명예를 부여하는 것이 정착되었을 때 비로소 미래를 향한 가치를 기대할 수 있다.

 

? 과거청산이 미래를 향하는가? 공정한 규칙이 있을 때 평등이 가능하다. 일례로, 토끼와 거북이가 경주를 하는데 그 장소를 바다로 정한다면, 토끼는 바다에서 살아나올 수 없기 때문에 경쟁 자체가 성립되지 못한다. 잘못된 부정의로 출발선의 평등이 어그러졌다면, 이를 바로 맞추어 놓을 필요가 있다. 과거의 부정의를 용인한 채 불공정한 출발선에서 사회공동체의 규범과 정의가 무너지고 있는데, 공정한 분배만을 논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강사 이영재는 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이다. 현재 <역사와 책임>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논저로는 자유희망진보를 향한 교육민주화, 민주주의강의 4 : 토의 민주주의, 민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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