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2강 : CEDAW x 여성인권
-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성 역할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하다
본인은 사실 노어노문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시절, 전 소비에트 연방국가들을 방문할 당시 본인도 소비에트 국가 여성들이 ‘작고 순종적일 것’이라는 여성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 보았던 여성들은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었으며 트랙터와 전차를 운전하는 등 직업상의 성역할을 따르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러시아 여성’은 성애화된 이미지로 바라봐지고 있었다. 젠더의 문제는 각 지역, 국가, 계급 등 다양한 위치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국제 여성인권 보호체계의 발전

▲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라는 말은 1975년 세계여성대회 때 힐러리 클린턴이 했던 말이다. 여성의 권리는 특별한 하나의 이슈로써가 아니라 보편적 권리로써 인정하고 다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강의 PPT 자료 중)
페미니스트 운동은 1945년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했으나, 유엔 안에서 어떻게 여성인권운동이 발전했는가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1945년 유엔 설립되면서 채택한 헌장은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equal rights of men and women)’를 재확인하고 있는데, 성평등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여성인권운동의 결과, 이후 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는 ‘everyone’이나 ‘human beings’처럼 성 중립적인 용어가 사용됐다.
그 사이 1946년에는 여성지위위원회(Committee on the Status of Women, CSW)가 만들어졌다. 유엔 내 여성 담론과 관련한 모든 논의는 이 기구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구는 정부 간 기구로 매년 3월에 2주간 세계여성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초기의 CSW는 여성참정권 운동에 초점을 맞췄으며, 지난 60차 대회의 주제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권한강화(empowerment)였다.
이후 1979년 ‘여성권리의 권리장전’이라 불리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이 채택되었다. 당시 참정권을 비롯한 공적인 영역에서의 평등은 인정되고 있었으나 사적 영역에서의 폭력과 차별은 다루지 않았었다. 때문에 협약 내용에는 여성폭력 담론이 상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추후 일반논평 12호와 19호를 통해 이 내용을 포함하게 되었으며, 두 가지 문서는 1993년 채택된 여성폭력철폐선언의 이행기준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CEDAW 1조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의하고 있으며. 3조에서는 비준당사국이 채택해야할 일반적 조치를, 그리고 4조에서는 잠정적 특별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 조치는 여성의 완전한 발전 및 진보를 확보해줄 수 있는 입법을 포함한 모든 적절한 조치(예: 여성발전국가기본계획, 여성발전기본법 등)를 말하며, 잠정적 특별조치는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이 심한 상황에서 실제 성평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조치(예: 여성 우대고용, 여성할당제 등)이다. 단, 모성 보호의 경우, 이는 신체적 차이로 인해 우대 또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잠정적’이 아닌 ‘영원한’ 특별조치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 CEDAW를 비준할 당시 국적에서의 여성차별철폐에 관한 9조와 가족 성에 관한 16조(g)항을 유보했었다. 9조는 국적법을 개정하며 유보가 철회되었으나 16조(g)항은 여전히 유보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하고있기 때문이다.
1993년에는 비엔나인권국제회의가 열렸고 그 결과 비엔나 선언이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유엔체계 내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의 필요성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전담부서 또는 기구에서만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일할 것이 아니라, 노동, 안보, 교육, 보건, 난민 등 모든 분야가 각자의 영역 안에서 어떻게 성별화된 경험이 발생하는지에 주목하고 모든 정책과 프로그램에서 젠더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페미니스트들의 움직임으로 여성 폭력이 명시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앞서 언급된 여성폭력철폐선언이 등장하게 되었다.
동 선언에서는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주목하고, 그를 명시하고 있다. 가정폭력, 부부강간, 성희롱 등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 정치적 투쟁의 결과로 엄연한 폭력으로 규정되게 되었다.
1995년 베이징 여성대회는 유엔 여성인권 담론에서 굉장히 큰 획을 그었다. 단순히 규모뿐 아니라, 동 회의의 결과로 행동강령 12가지가 선포되었다. 이에는 기존의 이슈와 더불어 여성과 무력분쟁, 환경, 미디어 등 기존에 이슈화가 되지 않은 문제도 포함되어 많은 학자들은 ‘여성 권리 증진의 가장 진보적인 청사진’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 베이징 행동강령은 5년마다 한 번씩 대륙별로 그 이행이 점검되고 있으며, 가장 최근 점검은 작년에 진행되었다.
한편, 1990년대에는 르완다 제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분쟁으로 인하여 여성 성폭력 피해자만 10~25만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국제사회는 이 문제에 집중하였고, 200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여성, 평화 및 안보에 관한 결의안 1325를 채택하게 된다. 성폭력은 전쟁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결과물이 아닌, 지역의 해체와 정복, 질병 전파 등을 목적으로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행해진 범죄라는 인식이 발전한 결과였다. 동시에 단순히 국가의 물리적 수호로써의 안보가 아닌 인간 안보로의 프레임 확장이 있었다. 이 결의안은 분쟁 상황의 성별화된 영향에 주목하고, 갈등해결과 평화구축의 과정에서 피해자로써의 여성이 아닌 적극적 참여자로써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개발과 여성인권
개발과 여성을 생각할 때, 3가지를 고민해볼 수 있다. 첫째, 빈곤과 저개발은 성별화되어 있는가? 둘째, 개발/발전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셋째, 개발/발전 과정에서 여성은 동등한 참여를 보장받는가?

▲ “빈곤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펫말을 든 여성. (출처: 강의 PPT 자료 중)
국제개발 담론은 1970년대 ‘개발 속 여성(women in development)’에서 1980년대 ‘젠더와 개발(gender and development)’으로, 1990년대에는 또 다시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로 발전했다. 60년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진 국제개발에서는 여성의 참여가 배제되었다는 비판이 일었고, 때문에 70년대에는 여성을 개발과정에 통합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여성의 생산성과 소득 증대를 위한 특화된 사업들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사업을 한다고 성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젠더 권력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80년대에는 이 문제에 주목하여 사회적 관계와 권력, 그리고 관습과 관행의 개선과 여성의 진정한 권한강화(empowerment)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책에 있어서는 기존의 WID 담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한계가 지적되었다.

(출처: 강의 PPT 자료 중)
2000년에는 많이 알려져있듯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채택되어 15년간 이행되었다. 그중 ‘성평등 증진과 여성의 권한강화’는 목표 3번이었다. 목표달성의 지표는 초·중·고등 교육에서의 남녀 성비, 15-24세 남녀의 문해율, 임금고용 분야에서의 여성비율, 그리고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었다. 대부분 이행하지 못했다. 더불어 지표가 실현된다 해도 목표가 달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누락된 부분이 많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후 2015년부터 2030년까지, 15년간의 새로운 개발목표가 바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이다. 여성인권과 관련된 것은 목표 5번으로 포함되었다. 이 목표는 경제적 개발과 사회적 개발을 함께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 구체적인 지표는 구성 중에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을 비롯하여 이미 다양한 비판이 존재한다. 가령 성적 및 재생산적 권리를 표현함에 있어서 ‘건강’에 대해서는 성적·재생산적 차원을 인정한 반면, ‘권리’에 대해서는 재생산적 차원만을 포함하여 성적 권리가 누락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또한 여성의 권한강화에 있어서 일터에서의 여성 참여와 여성의 소비 등 경제적 차원에 집중된 측면이 있다고 제기되었다.
끝나지 않은 여성인권의 문제들
여성들은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여전히 남성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실제 학력수준이 높아질수록 비정규직 비율이 낮아지는 남성과 달리, 여성의 경우에는 고졸 이하와 대학원 졸업이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여풍당당’이나 ‘역차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또한 OECD 국가 중 가장 임금격차가 심한 나라이며, 20대 총선으로 구성된 국회 내 여성 의원의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흔히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여성들이 더 극심한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이 국가들도 강력사건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이 30%를 넘기지 않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51%에 해당한다.


최근 강남역 부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소라넷, 데이트 폭력 등만 보아도, 한국은 법제도상의 평등과 실질적인 평등간의 괴리가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국제적, 그리고 국내적 차원의 여성인권운동이 존재했기에 여성인권이 많이 안정화될 수 있었음에도, 아직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제 4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2강 : CEDAW x 여성인권
-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성 역할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하다
본인은 사실 노어노문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시절, 전 소비에트 연방국가들을 방문할 당시 본인도 소비에트 국가 여성들이 ‘작고 순종적일 것’이라는 여성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 보았던 여성들은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었으며 트랙터와 전차를 운전하는 등 직업상의 성역할을 따르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러시아 여성’은 성애화된 이미지로 바라봐지고 있었다. 젠더의 문제는 각 지역, 국가, 계급 등 다양한 위치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국제 여성인권 보호체계의 발전
▲ ‘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라는 말은 1975년 세계여성대회 때 힐러리 클린턴이 했던 말이다. 여성의 권리는 특별한 하나의 이슈로써가 아니라 보편적 권리로써 인정하고 다루어져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강의 PPT 자료 중)
페미니스트 운동은 1945년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했으나, 유엔 안에서 어떻게 여성인권운동이 발전했는가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1945년 유엔 설립되면서 채택한 헌장은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권리(equal rights of men and women)’를 재확인하고 있는데, 성평등 언어를 사용하도록 하는 여성인권운동의 결과, 이후 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는 ‘everyone’이나 ‘human beings’처럼 성 중립적인 용어가 사용됐다.
그 사이 1946년에는 여성지위위원회(Committee on the Status of Women, CSW)가 만들어졌다. 유엔 내 여성 담론과 관련한 모든 논의는 이 기구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구는 정부 간 기구로 매년 3월에 2주간 세계여성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초기의 CSW는 여성참정권 운동에 초점을 맞췄으며, 지난 60차 대회의 주제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권한강화(empowerment)였다.
이후 1979년 ‘여성권리의 권리장전’이라 불리는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이 채택되었다. 당시 참정권을 비롯한 공적인 영역에서의 평등은 인정되고 있었으나 사적 영역에서의 폭력과 차별은 다루지 않았었다. 때문에 협약 내용에는 여성폭력 담론이 상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추후 일반논평 12호와 19호를 통해 이 내용을 포함하게 되었으며, 두 가지 문서는 1993년 채택된 여성폭력철폐선언의 이행기준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CEDAW 1조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의하고 있으며. 3조에서는 비준당사국이 채택해야할 일반적 조치를, 그리고 4조에서는 잠정적 특별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 조치는 여성의 완전한 발전 및 진보를 확보해줄 수 있는 입법을 포함한 모든 적절한 조치(예: 여성발전국가기본계획, 여성발전기본법 등)를 말하며, 잠정적 특별조치는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이 심한 상황에서 실제 성평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조치(예: 여성 우대고용, 여성할당제 등)이다. 단, 모성 보호의 경우, 이는 신체적 차이로 인해 우대 또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잠정적’이 아닌 ‘영원한’ 특별조치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 CEDAW를 비준할 당시 국적에서의 여성차별철폐에 관한 9조와 가족 성에 관한 16조(g)항을 유보했었다. 9조는 국적법을 개정하며 유보가 철회되었으나 16조(g)항은 여전히 유보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여성과 남성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도록 하고있기 때문이다.
1993년에는 비엔나인권국제회의가 열렸고 그 결과 비엔나 선언이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유엔체계 내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의 필요성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전담부서 또는 기구에서만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일할 것이 아니라, 노동, 안보, 교육, 보건, 난민 등 모든 분야가 각자의 영역 안에서 어떻게 성별화된 경험이 발생하는지에 주목하고 모든 정책과 프로그램에서 젠더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글로벌 페미니스트들의 움직임으로 여성 폭력이 명시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앞서 언급된 여성폭력철폐선언이 등장하게 되었다.
동 선언에서는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주목하고, 그를 명시하고 있다. 가정폭력, 부부강간, 성희롱 등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도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당시 정치적 투쟁의 결과로 엄연한 폭력으로 규정되게 되었다.
1995년 베이징 여성대회는 유엔 여성인권 담론에서 굉장히 큰 획을 그었다. 단순히 규모뿐 아니라, 동 회의의 결과로 행동강령 12가지가 선포되었다. 이에는 기존의 이슈와 더불어 여성과 무력분쟁, 환경, 미디어 등 기존에 이슈화가 되지 않은 문제도 포함되어 많은 학자들은 ‘여성 권리 증진의 가장 진보적인 청사진’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 베이징 행동강령은 5년마다 한 번씩 대륙별로 그 이행이 점검되고 있으며, 가장 최근 점검은 작년에 진행되었다.
한편, 1990년대에는 르완다 제노사이드를 비롯한 여러 분쟁으로 인하여 여성 성폭력 피해자만 10~25만명 정도로 추산되었다. 국제사회는 이 문제에 집중하였고, 200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여성, 평화 및 안보에 관한 결의안 1325를 채택하게 된다. 성폭력은 전쟁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결과물이 아닌, 지역의 해체와 정복, 질병 전파 등을 목적으로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행해진 범죄라는 인식이 발전한 결과였다. 동시에 단순히 국가의 물리적 수호로써의 안보가 아닌 인간 안보로의 프레임 확장이 있었다. 이 결의안은 분쟁 상황의 성별화된 영향에 주목하고, 갈등해결과 평화구축의 과정에서 피해자로써의 여성이 아닌 적극적 참여자로써의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개발과 여성인권
개발과 여성을 생각할 때, 3가지를 고민해볼 수 있다. 첫째, 빈곤과 저개발은 성별화되어 있는가? 둘째, 개발/발전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셋째, 개발/발전 과정에서 여성은 동등한 참여를 보장받는가?
▲ “빈곤은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펫말을 든 여성. (출처: 강의 PPT 자료 중)
국제개발 담론은 1970년대 ‘개발 속 여성(women in development)’에서 1980년대 ‘젠더와 개발(gender and development)’으로, 1990년대에는 또 다시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로 발전했다. 60년대에 활발하게 이루어진 국제개발에서는 여성의 참여가 배제되었다는 비판이 일었고, 때문에 70년대에는 여성을 개발과정에 통합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여성의 생산성과 소득 증대를 위한 특화된 사업들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사업을 한다고 성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젠더 권력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80년대에는 이 문제에 주목하여 사회적 관계와 권력, 그리고 관습과 관행의 개선과 여성의 진정한 권한강화(empowerment)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책에 있어서는 기존의 WID 담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한계가 지적되었다.
(출처: 강의 PPT 자료 중)
2000년에는 많이 알려져있듯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채택되어 15년간 이행되었다. 그중 ‘성평등 증진과 여성의 권한강화’는 목표 3번이었다. 목표달성의 지표는 초·중·고등 교육에서의 남녀 성비, 15-24세 남녀의 문해율, 임금고용 분야에서의 여성비율, 그리고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었다. 대부분 이행하지 못했다. 더불어 지표가 실현된다 해도 목표가 달성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누락된 부분이 많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후 2015년부터 2030년까지, 15년간의 새로운 개발목표가 바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이다. 여성인권과 관련된 것은 목표 5번으로 포함되었다. 이 목표는 경제적 개발과 사회적 개발을 함께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현재 구체적인 지표는 구성 중에 있다. 그러나 성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을 비롯하여 이미 다양한 비판이 존재한다. 가령 성적 및 재생산적 권리를 표현함에 있어서 ‘건강’에 대해서는 성적·재생산적 차원을 인정한 반면, ‘권리’에 대해서는 재생산적 차원만을 포함하여 성적 권리가 누락되는 결과가 발생했다. 또한 여성의 권한강화에 있어서 일터에서의 여성 참여와 여성의 소비 등 경제적 차원에 집중된 측면이 있다고 제기되었다.
끝나지 않은 여성인권의 문제들
여성들은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여전히 남성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실제 학력수준이 높아질수록 비정규직 비율이 낮아지는 남성과 달리, 여성의 경우에는 고졸 이하와 대학원 졸업이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여풍당당’이나 ‘역차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또한 OECD 국가 중 가장 임금격차가 심한 나라이며, 20대 총선으로 구성된 국회 내 여성 의원의 비율은 17%에 불과하다. 흔히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여성들이 더 극심한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이 국가들도 강력사건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이 30%를 넘기지 않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51%에 해당한다.
최근 강남역 부근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소라넷, 데이트 폭력 등만 보아도, 한국은 법제도상의 평등과 실질적인 평등간의 괴리가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국제적, 그리고 국내적 차원의 여성인권운동이 존재했기에 여성인권이 많이 안정화될 수 있었음에도, 아직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