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3강 : ICESCR x 사회권
-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사회권은 소위 자유권보다 평가하기가 더 어렵다. 가령, 경찰이 집회·시위를 탄압했다고 했을 때, 헌법상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국제적으로도 자유권규약 위반 사항으로 얘기하기가 쉽다. 그런데 용산참사의 예를 들어보자. 마침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사회권규약의 이행에 관한 심의를 받는 시기였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재개발사업을 주거환경 개선의 성공적 사업으로 국제사회에 홍보하고 있었고 용산에서 일어났던 일은 주거권 관련된 문제가 아니며 강제철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당시 사회권위원회 위원들은 한국 정부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응을 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사회권으로써의 건강권과 국가의 의무
사회권과 자유권은 마치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권리인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그렇지 않다. 가령 투표권은 주소지를 기준으로 나오기 때문에 주소지가 없는 홈리스들은 투표를 할 수가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결국 홈리스들은 사회권만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권도 박탈당하게 된다. 때문에 사회권은 ‘그냥 노력하는 취지에서 있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인권 자체를 가두는 것과 같다.
사회권규약 12조1항은 “당사국은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누릴 수 있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러한 건강권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은 아플 때 병원에 가고 약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등 보건의료에 관한 권리만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의 건강이라는 것이 약만 먹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도달 가능한 최고수준’이란 아무도 안 아픈 세상, 병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 아니라, 어디가 아프다고 하더라도 나의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권과 관련한 사회권위원회 일반논평은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취해야하는 조치들을 설명한다. 이 문서에 따라 모든 조치는 충분한 의약품 보장, 보건소와 병원의 확보 등 이용가능성(availability)과 정보에 대한 접근과 경제적 차원도 포함한 접근성(accessibility), 프라이버시 존중과 성인지적 관점, 문화적 적절성을 갖춘 수용성(acceptability), 그리고 좋은 질(quality)이라는 네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상대적으로 ‘적극적 의무’를 수반한다고 인식되던 사회권의 이행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새롭게 규정한 것이 림버그 원칙(Limburg Principles)과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Maastricht Guidelines)이다. 여기서는 세 가지의 의무를 얘기하는데, 하나는 존중할 의무다. 국가가 개인의 권리 향유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보호할 의무. 국가의 관할권에 있는 한, 국가만 침해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체에 의한 인권침해로부터 사회구성원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실현할 의무는 보다 적극적인 것으로, 권리 향유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 행위의 의무와 결과의 의무 모두 중요하다. 예를 들면, 건강권과 관련해서 보건소를 세운 것이 행위의 의무를 충족한 것이라 해도, 보건소까지 교통편이 좋지 않아 갈 수가 없어 건강권이 실현되지 않으면 결과의 의무는 다하지 않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건강과 인권의 관계는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건강이 인권에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으로 에이즈 환자들은 건강과 관련된 문제로 낙인과 차별, 그리고 격리조치와 제한조치 등 인권적 영향을 받는다. 반대로 인권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고문 피해라는 인권침해가 있었을 경우, 계속적으로 건강상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끝으로, 인권과 건강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이 얼마나 사회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지에 대해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 보고서는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으로 수입 및 사회적 수준, 교육수준, 물리적 환경, 취업 및 작업조건, 사회적지지 체계, 문화, 성별 등을 포함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와 인권
메르스 사태는 최종적으로 2015년 12월 23일 공식적으로 종식이 선언됐다. 이미 한국 사회는 한참 전에 잊어버렸지만, 이날까지 메르스를 앓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38명이 사망, 186명이 감염, 그리고 단 한번이라도 격리되었던 사람 수가 16,752명에 달했다.
관련하여 인권으로 이야기된 부분은 주로 시민·정치적 권리(자유권) 영역이었다. 가령, 감염 병원 등 메르스 관련 정보를 사람들이 SNS 메신저를 통해 공유하면서 정부가 ‘유언비어 유포로 처벌하겠다’고 발표하자, 일종의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이야기되었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람들을 격리한 것은 일종의 구금 문제로 이야기되었다. 이후 병원명이 공표되면서 의료인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 나오지 말게 하라는 등의 학부모 탄원이 있었고, 이는 차별문제로 이야기되었다.

(출처: JTBC)
사실 자유권이 많이 얘기되었지만 그에 대한 인식도 아직 취약한 부분이 많다. 일례로 순천 장덕마을이 폐쇄되었을 때 ‘스스로 격리한 모범사례’로 이야기됐었다. 하지만 폐쇄로 인하여 병원을 이용하지 못해 끝내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생업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입은 손해에 대한 보상책은 전혀 이야기되지 않았다. 마을의 폐쇄는 실상 엄청난 인권침해다. 국제적으로는 자유를 제한할 때 지켜야 하는 인권원칙을 담은 시라큐사 원칙(Siracusa Principle)이 있다. 자유의 제한이 반드시 꼭 필요할 경우,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실행해야 하고, 정당한 목표가 있어야 하며, 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되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원칙에 대한 고려없이 그냥 ‘위험하다’며 과학적 근거 없이 많은 조치가 이뤄졌다.
또한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감염 위험이 가장 높은데도 초기에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준다’며 마스크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이후 병원은 오로지 정규직들만 보호를 하고 비정규직은 보호를 하지 않았다. 보건의료종사자는 감염이 될 경우, 일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원래 감염율이 0%여야 함에도, 메르스 사태 당시 확진자 중 보건의료종사자가 무려 20%에 달했다. 에볼라 사태에 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심리적 괴로움, 낙인, 장시간 노동과 업무 과중, 보호구 사용에 따른 탈진과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져 의료인 감염이 높았다고 한다. 메르스 사태 때도 이러한 일이 발생됐던 것이다. 질병을 없앨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피할 수 있는 질병은 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사회권이 열어주는 시야
사회권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기에 중요하다. 첫째,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구조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여성과 아동의 에이즈 유병률이 높은데, 이는 콘돔 사용을 둘러싼 권력관계,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 등 사회적 요인들과 관련이 깊다고 바라보고, 여성의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차지할 수 있는 위치에 영향을 미치는 차별적 구조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인종차별과 성차별과 같이 역사적으로 만들어져 일시적 조치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구조적 폭력에 의한 구조적 인권침해로 볼 수 있게 한다.
구조적 폭력이라는 용어는 대단히 적합하다. 왜냐하면 구조적 폭력 탓에 발생하는 고통은 역사적으로 주어진, 그리고 경제적으로 추진된 과정과 힘에 의해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 나의 환자들에게 있어 크고 작은 삶의 선택들은 인종차별, 성차별, 정치적 폭력, 그리고 극심한 빈곤에 의해 제약을 받았다.
-폴 파머, <권력의 병리학>
둘째, 누가 인권을 침해당하기 쉬운 조건에 놓여있나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메르스 사태 당시 모임과 집회 등이 전염 위험성을 이유로 많이 취소되었는데, 서울역에 몰려있는 홈리스들과 한 건물 안에 방이 수십 개 몰려있는 쪽방촌에 대한 보호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지역 아동센터들도 문을 닫았는데, 이 센터들은 주로 가난한 가정의 아동들이 이용하다보니 센터에 가지 않으면 밥을 차려줄 사람이 없어 문제가 되었고, 결국 교사들이 자신의 집으로 아동들을 데려가 밥을 먹이기도 했다.
셋째, 누가 인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나 가늠하게 한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휴교했을 때, 정규직 교사는 휴교해도 월급이 보장되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임금 지급을 하지 않기 위해 연차를 쓰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제기 하면 해고될 수 있으니 비정규직 교사들은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 한편, 당시 친척집에 다녀온 후 감기로 열이 났던 한 이주노동자에게 고용주는 나오지 말라고 했고, 작업장이 곧 집이기도 한 이주노동자가 갈 곳이 없어 항의하자, 고용주는 ‘근무지 이탈’로 고발했다. ‘근무지 이탈’은 곧 추방 사유가 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라는 지위 자체가 인권을 주장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권리보장을 이야기할 때 권한강화(empowerment)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권리의 주체들이 자신의 권리를 알고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째, 제대로 인권이 실현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해보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을 뒷받침할 물질적 조건이 필요한데, 현재의 복지제도는 개개인이 시장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알아서 구매하고, 그것이 안 될 경우 보조해주는 ‘잔여적’ 복지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는 개인에게 무력함을 증명하도록 함으로써 권리의 주체를 모욕하고 서비스의 객체로 만들기 쉽다. 가령 기초생활수급자는 부양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통장과 통화기록 등을 보여줘야 한다. 때문에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고 분배되는 구조의 대안, 사회적 공공성을 높이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제 4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3강 : ICESCR x 사회권
-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사회권은 소위 자유권보다 평가하기가 더 어렵다. 가령, 경찰이 집회·시위를 탄압했다고 했을 때, 헌법상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국제적으로도 자유권규약 위반 사항으로 얘기하기가 쉽다. 그런데 용산참사의 예를 들어보자. 마침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사회권규약의 이행에 관한 심의를 받는 시기였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재개발사업을 주거환경 개선의 성공적 사업으로 국제사회에 홍보하고 있었고 용산에서 일어났던 일은 주거권 관련된 문제가 아니며 강제철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당시 사회권위원회 위원들은 한국 정부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응을 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었다.
사회권으로써의 건강권과 국가의 의무
사회권과 자유권은 마치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권리인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그렇지 않다. 가령 투표권은 주소지를 기준으로 나오기 때문에 주소지가 없는 홈리스들은 투표를 할 수가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결국 홈리스들은 사회권만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권도 박탈당하게 된다. 때문에 사회권은 ‘그냥 노력하는 취지에서 있는 것이다’라는 주장은 인권 자체를 가두는 것과 같다.
사회권규약 12조1항은 “당사국은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누릴 수 있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러한 건강권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은 아플 때 병원에 가고 약을 받을 수 있는 권리 등 보건의료에 관한 권리만 생각한다. 그런데 인간의 건강이라는 것이 약만 먹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도달 가능한 최고수준’이란 아무도 안 아픈 세상, 병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 아니라, 어디가 아프다고 하더라도 나의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권과 관련한 사회권위원회 일반논평은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취해야하는 조치들을 설명한다. 이 문서에 따라 모든 조치는 충분한 의약품 보장, 보건소와 병원의 확보 등 이용가능성(availability)과 정보에 대한 접근과 경제적 차원도 포함한 접근성(accessibility), 프라이버시 존중과 성인지적 관점, 문화적 적절성을 갖춘 수용성(acceptability), 그리고 좋은 질(quality)이라는 네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상대적으로 ‘적극적 의무’를 수반한다고 인식되던 사회권의 이행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새롭게 규정한 것이 림버그 원칙(Limburg Principles)과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Maastricht Guidelines)이다. 여기서는 세 가지의 의무를 얘기하는데, 하나는 존중할 의무다. 국가가 개인의 권리 향유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보호할 의무. 국가의 관할권에 있는 한, 국가만 침해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체에 의한 인권침해로부터 사회구성원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실현할 의무는 보다 적극적인 것으로, 권리 향유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 행위의 의무와 결과의 의무 모두 중요하다. 예를 들면, 건강권과 관련해서 보건소를 세운 것이 행위의 의무를 충족한 것이라 해도, 보건소까지 교통편이 좋지 않아 갈 수가 없어 건강권이 실현되지 않으면 결과의 의무는 다하지 않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건강과 인권의 관계는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건강이 인권에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으로 에이즈 환자들은 건강과 관련된 문제로 낙인과 차별, 그리고 격리조치와 제한조치 등 인권적 영향을 받는다. 반대로 인권도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고문 피해라는 인권침해가 있었을 경우, 계속적으로 건강상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끝으로, 인권과 건강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이 얼마나 사회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지에 대해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 보고서는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으로 수입 및 사회적 수준, 교육수준, 물리적 환경, 취업 및 작업조건, 사회적지지 체계, 문화, 성별 등을 포함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와 인권
메르스 사태는 최종적으로 2015년 12월 23일 공식적으로 종식이 선언됐다. 이미 한국 사회는 한참 전에 잊어버렸지만, 이날까지 메르스를 앓고 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38명이 사망, 186명이 감염, 그리고 단 한번이라도 격리되었던 사람 수가 16,752명에 달했다.
관련하여 인권으로 이야기된 부분은 주로 시민·정치적 권리(자유권) 영역이었다. 가령, 감염 병원 등 메르스 관련 정보를 사람들이 SNS 메신저를 통해 공유하면서 정부가 ‘유언비어 유포로 처벌하겠다’고 발표하자, 일종의 표현의 자유 침해로 이야기되었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람들을 격리한 것은 일종의 구금 문제로 이야기되었다. 이후 병원명이 공표되면서 의료인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 나오지 말게 하라는 등의 학부모 탄원이 있었고, 이는 차별문제로 이야기되었다.
(출처: JTBC)
사실 자유권이 많이 얘기되었지만 그에 대한 인식도 아직 취약한 부분이 많다. 일례로 순천 장덕마을이 폐쇄되었을 때 ‘스스로 격리한 모범사례’로 이야기됐었다. 하지만 폐쇄로 인하여 병원을 이용하지 못해 끝내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생업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입은 손해에 대한 보상책은 전혀 이야기되지 않았다. 마을의 폐쇄는 실상 엄청난 인권침해다. 국제적으로는 자유를 제한할 때 지켜야 하는 인권원칙을 담은 시라큐사 원칙(Siracusa Principle)이 있다. 자유의 제한이 반드시 꼭 필요할 경우, 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실행해야 하고, 정당한 목표가 있어야 하며, 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되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원칙에 대한 고려없이 그냥 ‘위험하다’며 과학적 근거 없이 많은 조치가 이뤄졌다.
또한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감염 위험이 가장 높은데도 초기에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준다’며 마스크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이후 병원은 오로지 정규직들만 보호를 하고 비정규직은 보호를 하지 않았다. 보건의료종사자는 감염이 될 경우, 일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원래 감염율이 0%여야 함에도, 메르스 사태 당시 확진자 중 보건의료종사자가 무려 20%에 달했다. 에볼라 사태에 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심리적 괴로움, 낙인, 장시간 노동과 업무 과중, 보호구 사용에 따른 탈진과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져 의료인 감염이 높았다고 한다. 메르스 사태 때도 이러한 일이 발생됐던 것이다. 질병을 없앨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피할 수 있는 질병은 피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사회권이 열어주는 시야
사회권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기에 중요하다. 첫째,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구조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여성과 아동의 에이즈 유병률이 높은데, 이는 콘돔 사용을 둘러싼 권력관계,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 등 사회적 요인들과 관련이 깊다고 바라보고, 여성의 높은 비정규직 비율을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차지할 수 있는 위치에 영향을 미치는 차별적 구조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인종차별과 성차별과 같이 역사적으로 만들어져 일시적 조치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구조적 폭력에 의한 구조적 인권침해로 볼 수 있게 한다.
둘째, 누가 인권을 침해당하기 쉬운 조건에 놓여있나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메르스 사태 당시 모임과 집회 등이 전염 위험성을 이유로 많이 취소되었는데, 서울역에 몰려있는 홈리스들과 한 건물 안에 방이 수십 개 몰려있는 쪽방촌에 대한 보호는 잘 이뤄지지 않았다. 지역 아동센터들도 문을 닫았는데, 이 센터들은 주로 가난한 가정의 아동들이 이용하다보니 센터에 가지 않으면 밥을 차려줄 사람이 없어 문제가 되었고, 결국 교사들이 자신의 집으로 아동들을 데려가 밥을 먹이기도 했다.
셋째, 누가 인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나 가늠하게 한다. 메르스 사태로 인해 휴교했을 때, 정규직 교사는 휴교해도 월급이 보장되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는 학교에서 임금 지급을 하지 않기 위해 연차를 쓰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제기 하면 해고될 수 있으니 비정규직 교사들은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 한편, 당시 친척집에 다녀온 후 감기로 열이 났던 한 이주노동자에게 고용주는 나오지 말라고 했고, 작업장이 곧 집이기도 한 이주노동자가 갈 곳이 없어 항의하자, 고용주는 ‘근무지 이탈’로 고발했다. ‘근무지 이탈’은 곧 추방 사유가 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라는 지위 자체가 인권을 주장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권리보장을 이야기할 때 권한강화(empowerment)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권리의 주체들이 자신의 권리를 알고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넷째, 제대로 인권이 실현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해보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을 뒷받침할 물질적 조건이 필요한데, 현재의 복지제도는 개개인이 시장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알아서 구매하고, 그것이 안 될 경우 보조해주는 ‘잔여적’ 복지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는 개인에게 무력함을 증명하도록 함으로써 권리의 주체를 모욕하고 서비스의 객체로 만들기 쉽다. 가령 기초생활수급자는 부양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통장과 통화기록 등을 보여줘야 한다. 때문에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고 분배되는 구조의 대안, 사회적 공공성을 높이는 경제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