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아카데미] 4강 - 국제인권기준 x 기업과 인권

201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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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4강 : 국제인권기준 x 기업과 인권

- 강은지, 국제민주연대

 

 

‘Business and human rights’는 주로 ‘기업인권’으로 번역되는데, 기업과 인권이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인권이 군대, 경찰, 공권력 등 국가만의 문제처럼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새 기업의 힘이 굉장히 세며 국가의 경계를 넘기도 한다. 기업이 인권침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는 일이 늘어나면서 ‘business and human rights’가 대두되게 되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어디까지인가?

 

기업인권과 관련하여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이다. 대게 CSR이라고 하면 직원들의 자원활동, 성금 모으기 등을 떠올리는데, 사실 이는 CSR의 극히 작은 부분이다.

 

 

가장 밑에 있는 ‘경제적 책임’은 기업의 이윤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말이며, 지극히 당연하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이다. 그 바로 위의 ‘법적 책임’은 국제법을 포함하여 법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수준을 일컫는다. 그 위 단계인 ‘윤리적 책임’은 윤리적, 양심적, 그리고 건전한 기업이라면 해야하는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즉, 옳고 정당한 것을 해야할 의무가 있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제일 높은 단계는 ‘좋은 기업시민이 되는 것(be a good corporate citizen)’인데, 기업도 세계를 구성하는 시민으로써 가져야할 바람직한 태도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사회공헌을 넘어 기업이 미치는 인권침해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시대가 오면서 ‘CSR는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안적으로 기업의 책임을 기업의 ‘영향권(sphere of influence)’을 통해 판단할 수 있다. 제일 직접적인 범위는 기업 내의 직원들, 관리자들, 계약자들이 있다. 나아가 비즈니스 파트너, 즉 서비스 제공업체, 하청업체, 보안 인력, 중개업자 등도 이 영향권 안에 포함된다. 그 다음에는 지역사회(community)가 있으며, 여기에는 특히 취약계층과 선주민 등 소수자가 포함된다. 기업이 어느 지역에서 활동하면, 그 지역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지역도 이 영향권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고용관계 혹은 계약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기업 활동으로 인해 환경 등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영향권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향은 결국 책임의 개념과 똑같다고 볼 수 있다. 가까울수록 영향력이 크고 멀수록 영향력이 적은데, 이는 기업의 책임이 큰지 작은지와 비례 관계에 있다. 이를테면 직원들이 겪는 노사분쟁, 임금 및 복지 문제 등은 기업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기업의 책임이 100%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하청관계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계약과 소위 ‘가격 후려치기’ 등에 있어서도 결국 대기업이 미친 영향만큼의 책임이 있다.

 

왜 유엔은 기업과 인권 원칙을 채택하게 되었는가?

 

기업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는 동인도 주식회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사는 제국주의 시절, 영국의 식민지에서 물건과 노예 등 무역업무를 했던 곳인데, 어떻게 보면 이 회사가 초국적 기업의 시조다. 기업이 인권과 관련해서 처음 재판을 받은 것은 폭스바겐이었다. 나치와 협력했다는 이유로 전범재판소는 폭스바겐을 전범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인물은 1970년대 칠레에서 민주선거를 통해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전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 이후 가장 먼저 석유와 건설 등 사업을 국유화했는데, 기존에는 군부독재 하에서 미국의 다국적 회사들이 이러한 분야에서 많은 이득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면서 미국의 다국적 회사들은 반대세력에게 자금을 지원하여 쿠데타를 일으켰고, 다시 군부정권을 세웠다.

 

다국적 기업이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정치 지형을 심각하게 바꿔 놓았는데도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 미국 회사들의 소행이었지만 칠레에서 벌인 일이라 미국에서 다룰 수도 없었다. 이 때문에 다국적 기업이 한 나라의 국민들의 인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그를 규제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세계화와 민영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유엔 내에서 합의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 유엔의 회원도 아닌 기업을 어떻게 다뤄야할까. 유엔이나 국가 간의 조약들은 이행할 의무가 계약 당사자, 즉 국가에게 있으며,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에게 얘기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은 사적 주체기 때문에 형사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무엇인가를 강제하고 처벌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논리가 생겨났다. 그 결과 한 측에서는 구속력이 있는 조약을 만들어 국가들이 의무적으로 기업을 통제 및 규제하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한편, 다른 측에서는 이는 불가능하므로 타협안으로써 기준을 만들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지키게 하자고 주장했다. 이렇듯 논의가 엇갈리면서 90년대 시작된 논의가 20년간 결과 없이 계속 이어졌다.

 

이런 와중에 다른 국제기구에서 다국적 기업을 규제하는 지침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OECD의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이다. 1976년 생겨났는데, 당시에는 단순한 선언의 형태였으며 인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5번의 개정을 통해 2011년에서야 인권이 언급되었고 34개 OECD 회원국과 자발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겠다고 선언한 12개 나라를 포함하여 총 46개 국가가 지키도록 기대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연락사무소(National Contact point, NCP)’다. OECD 가이드라인을 지키겠다고 한 46개 국가는 모두 NCP를 둬야 하는데, 그 역할은 크게 2가지다. 첫 번째는 가이드라인을 알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가이드라인 위반에 대해 진정을 제기할 수 있는 메커니즘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모든 가이드라인 위반에 대해 진정을 제기할 수 있지만, NCP 규정은 국내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안들에 집중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선 국내/현지 법체계를 통해 해결을 모색하고, 해결이 되지 않으면 NCP를 통해 진정을 제기할 수 있으며, NCP는 기업과 피해자 측을 중재하거나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가이드라인 위반 여부를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NCP가 기업에 권고를 내릴 수도 있다.

 

이후 기준을 만들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지키게 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 ‘유엔글로벌콤팩트(Global Compact)’다. 전 세계 1,000여개 기업들이 회원으로 가입해있고, 10가지 원칙을 두고 있다. 그러나 당연한 원칙을 내세우고 있음에도 가입하지 않은 기업들이 있으며, 자발적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았을 때 대응할 수도 없다. 때문에 기업의 자발성에만 맡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 생겨 2005년, 유엔 사무총장은 존 러기(John Ruggie)를 특별대표로 임명하고, 기업이 인권과 관련해 움직이도록 할 틀을 만들 것을 주문했다.

 

유엔의 보호·존중·구제 프레임워크와 이행원칙

 

2008년, 존 러기 특별대표는 몇 년 간의 연구를 토대로 보호·존중·구제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여기서 인권을 보호(protect)할 의무는 국가에게, 인권을 존중(respect)할 의무는 기업에게 있으며, 그럼에도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에는 구제(remedy) 보장돼야 한다는 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프레임워크만으로는 부족했기에, 그의 구체적 이행을 위하여 2011년,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 UNGP)‘이 인권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이를 ’이행지침‘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떻게 보아도 이는 원칙이다.

 

 

UNGP의 기본적 구조도 보호·존중·구제이다. 국가는 직접적인 것뿐 아니라 기업을 포함한 제3자에 의한 인권침해로부터 사회구성원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기업은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는데, 국가와는 달리 유엔이 기업에 대해 의무를 명시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중요한 키워드는 ‘due diligence’인데, 정확히 번역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법학에서는 ‘인권실사’라고 주로 번역하고 있으며, 기업이 투자하거나 사업을 할 때,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는지 혹은 부정적 영향이 발생하지는 않을지 조사하고, 우려 사항이 있으면 예방을 위한 조치를 다 취하고난 뒤에 기업 활동을 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제는 모두에게 요구되는 사항이다.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에게 효과적인 구제책을 제공하거나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만장일치로 통과된 원칙이긴 하지만, 어떻게 이행해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에 인권이사회 특별절차로써 워킹그룹을 만들게 되었다. 이 워킹그룹은 대륙별 안배를 고려한 5명의 위원들로 구성되는데, 주요하게는 UNGP를 알리는 것과 각국이 잘 이행하고 있는지 국가를 방문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한국도 방문했었는데, 이렇게 국가방문 이후에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인권이사회에 보고한다. 한국 방문 보고서는 내년(2017년) 6월에 발표될 예정이다.

 

국내 사례에의 적용

 

국내 시민사회도 기업과 인권 워킹그룹에게 3건의 진정을 제출했다. 하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3차 협력업체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에탄올이 아닌 메탄올을 사용하여 5명이 실명하는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또 하나는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3차 하청업체인 유성기업에서 원청기업과 함께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과 관련됐었다. 세 번째 건은 현대중공업의 울산조선소와 관련된다. 이 조선소는 전체 노동자의 80%가 하청업체 직원이다. 이를 사내하청이라고 부르는데, 외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개념이다. 현대에서 업무지시를 하지만, 올해 들어서만 7건이나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직접 계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산재 발생률이 높은 어렵고 위험한 작업은 하청업체에게 줌으로써 모든 위험부담은 하청업체가 지도록 하는 것을 ‘위험의 외주화’라고 표현한다. 이러다 보면 하청업체도 산재보험료 인상을 막고 원청기업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부상사고가 일어났을 때 산재로 등록하지 않고 숨기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국내법에 따르면 기업들은 책임이 없다. 직접고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UNGP에 따라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의 인권존중 책임이 직접적 비즈니스에 한정되지 않고 공급망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3차 협력업체에서 발생한 사고에 책임을 져야 하고, 현대자동차는 유성기업 노조파괴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현대중공업 역시 현대의 작업장에서 발생한 일이므로 책임이 있다. 기업과 인권 워킹그룹 역시 ‘the complexity of supply chains is no excuse for inaction(공급망의 복잡성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이 날, 미얀마의 노동인권단체 Action Labor Rights의 활동가도 깜짝 손님으로 오셔서 미얀마 내 한국 의류공장의 인권상황에 관한 보고서 ‘Under Pressure’의 내용을 소개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다음은 그 내용입니다.)


 

미얀마는 한국에서의 투자 증가를 환영한다. 그런데 미얀마 내에서 한국 투자자들이 노동권 침해 문제에 직접 연루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미얀마 법 자체에 허점이 있기도 하고 해외기업이 현지법을 100% 준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보고서(Under Pressure)가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미얀마 의류산업에서 한국 투자자 비율이 높고, 한국이 OECD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OECD 회원국 기업은 중국이나 미얀마 현지 기업보다 높은 수준의 인권기준을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미얀마 사회에서는 ‘한국이 중국 다음으로 나쁘다’는 인식이 있다. 막상 한국에 와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 친절하고 좋았는데, 미얀마에 있는 공장들과 투자자들의 태도 때문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고 있다. 가령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지 않고 한국식 인사를 강요하거나 미얀마에선 정말 무례한 행동임에도 손이 아닌 발로 물건을 가리켜 옮기라고 하기도 한다. 또한 의료공장은 특성상 여성 노동자들이 대부분인데, 조사 결과 여성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출산휴가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 아는 경우에도 사용하려면 무급이고, 휴가가 끝나고 업무에 복귀하면 임금과 지위 등에 있어 신입사원과 똑같은 처우를 받는다. 근무는 아침 8시에 시작하고 심할 때는 다음날 새벽 2-3시까지 일을 해야 한다. 토요일에도 그렇게 근무를 많이 시키는데, ‘일요일에 하루 종일 쉴 수 있다’는 논리다. 만약 야간근로 다음날 지각을 하면 바로 임금에서 차감한다. 새벽에 퇴근할 경우 공단 지역에 가로등이 없어 안전문제도 있고, 성매매 여성으로 오해받아 경찰에 잡혀가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조사 과정에서 미성년자 고용도 만연한 상태라고 들었다. 성인과 근무시간이 똑같이 적용되는데, 너무나도 피곤한 상태에서 계속 근무를 한다는 것은 안전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이러한 문제가 결국 한국과 미얀마 사이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조사는 한국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이뤄졌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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