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5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1강: 자의적 구금
조문선, 17기 제네바 유엔인권연수 참가자
어느 날 평범한 학생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무리들에 의해 잡혀간다. 가족들도 그가 왜, 어디로 끌려갔는지,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경찰에 물으면 그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그렇게 그는 안개처럼 사라졌고, 몇 달이 지난 후에야 그의 죽음을 알리는 종이 한 장만이 유가족들에게 전달된다.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를 볼 때면, 위와 같은 장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자의적 구금 및 고문을 당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도층에 대한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소리 소문 없이 끌려가 수일동안 폭행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를 직접 겪은 우리네 부모님 세대 어른들은 종종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며 고개를 내젓곤 하고, 피해자들의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갓 20살을 넘긴 나에게 자의적 구금은 옛날 일 혹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로만 느껴졌고, 사실 자의적 구금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 익숙하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 강의를 통해 자의적 구금에 대해 더욱 깊게 이해하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본 글에서는 강의 내용의 간략한 요약과 더불어 내가 했던 고민들을 함께 다루어보고자 한다.
자의적 구금은 말 그대로 자의적인 체포 혹은 억류를 말한다. 자의적 구금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이 강의를 듣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의적 구금에 대해 떠올리자면 “요새 어떤 경찰이 사람들을 마음대로 잡아가? 그럼 난리 나지 않나?”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북한에서는 아직까지 외국인들을 납치하거나 강제 억류한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민주주의로의 과도기에 있는 등 정치체계가 불안정하거나 법체계가 부실한 나라들에서만이 이런 구금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강의를 통해 자의적 구금이 실패국가, 무능한 국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두 발을 딛고 서있는 이 땅, 한국에서도 자의적 구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던 것이다.
내가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이 강의를 들으며 가장 먼저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입원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보건법에 따라 정신장애인 혹은 “정신질환으로 자신 또는 타인을 해할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자”에 대해 보호의무자 2인, 지방자치단체의 장(시장, 군수, 구청장), 혹은 경찰관의 동의와 의사 한 명의 진단만으로 비자발적인 입원을 강행할 수 있다. 또한, 입원 시에는 전기충격요법 등의 특수치료, 통신 및 면회 등을 금지하는 행동제한, 격리시키거나 묶는 등의 신체적 제한이 부분적으로 허용된다. 영화 「날 보러와요」에서 꼬집고 있듯,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약을 안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강박하여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등의 안타까운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다. 아무리 치안유지라는 명목을 내세워보아도 이는 분명 자의적 구금에 해당하며, 해결이 시급한 문제이다. 다른 장애인 관련법들과는 달리 유독 정신장애인 관련법만이 무척 더디게 발전하고 있는데,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서 낙인찍기보다 그들 역시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고, 보호하려는 사회적 합의가 더욱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또 다른 예시를 들자면, 강연자의 이야기들 중 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월호 관련 추모 및 시위가 한창일 즈음, 나 역시 광화문 일대를 지나며 수십 대의 경찰 버스들과 사람만한 방패를 들고 거리를 통제하는 경찰관, 그 중심에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집회 해산을 촉구하는 방송이 계속해서 울려댔고, 심지어 시민들의 접근까지 통제하고 나섰었는데, 강연자로부터 전해들은 당시의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참담했다. 유가족들은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이른바 “고착”되어 옴짝달싹 못하였고, 주변 지인들이 가려준 모포 혹은 라면 박스 속에서 볼일을 봐야만 했다고 한다.
이렇듯 자의적 구금은 경찰서나 실내의 특수한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길거리, 심지어 내 집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고, 신체의 자유·이동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더 큰 인권침해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에 이 권리의 보호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위의 사례들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자의적인 것인가? 강연자는 “자의성이 적법성, 적절성, 정의, 예측가능성, 정당절차, 합리성, 필요성, 비례성에 의해 판단되고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건강상의 이유 등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병역법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수감은 현행법상 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위원회는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즉, 자의성이 단지 법에 반한다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의적 구금 논의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침해할 수 없으며, 성소수자, 외국인, 난민, 무국적자 등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인권의 특성상 누구나 동등하게 이를 향유할 수 있다는 말에 “당연한 거 아니야?”하고 되묻는 이들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 국가안보 혹은 재범 방지를 위해 범죄자, 테러리스트들의 형이 끝난 후에도 별도의 시설에서 이들을 구금·관리·감독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약 십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죄를 범한 자 중 재범의 우려가 있는 경우, 형이 끝난 후 출소시키지 않고 보호감호소로 이송해 교육 및 치료를 명분으로 사회와 격리시키는 이른바 사회보호법이 있었다. 보호감호 기간도 정해져있는 것이 아닌 법무부 장관의 심사 하에 7년까지 연장될 수 있기 때문에 이중처벌 논란과 더불어 보호감호소 내부의 여러 인권침해 문제가 부각되어 2005년 결국 폐지되었지만, 조두순이 형을 마치고 나오는 2020년이 다가오고, 이른바 ‘묻지마 범죄’ 등 흉악범죄가 계속될수록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늘어나 언제든 부활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무리 전과가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법원에서 판결 받은 형을 모두 마친 후에는 자의적으로 구금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신체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우리의 필요나 인식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 관련 자료들을 검색해 보며 예나 지금이나 안보 및 치안 유지가 자의적 구금의 정당화를 위한 주된 근거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경우,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언제나 거론되고 있고, 인천공항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150여명의 입국거부자 문제에 대해서는 IS 등 테러의 위험이 있다며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 역시 아직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얻지는 못했지만, A를 가지려면 꼭 B를 버려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보다 A, B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기] 5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1강: 자의적 구금
조문선, 17기 제네바 유엔인권연수 참가자
어느 날 평범한 학생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무리들에 의해 잡혀간다. 가족들도 그가 왜, 어디로 끌려갔는지,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경찰에 물으면 그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그렇게 그는 안개처럼 사라졌고, 몇 달이 지난 후에야 그의 죽음을 알리는 종이 한 장만이 유가족들에게 전달된다.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를 볼 때면, 위와 같은 장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자의적 구금 및 고문을 당했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도층에 대한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소리 소문 없이 끌려가 수일동안 폭행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를 직접 겪은 우리네 부모님 세대 어른들은 종종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며 고개를 내젓곤 하고, 피해자들의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갓 20살을 넘긴 나에게 자의적 구금은 옛날 일 혹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일로만 느껴졌고, 사실 자의적 구금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 익숙하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 강의를 통해 자의적 구금에 대해 더욱 깊게 이해하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는데, 본 글에서는 강의 내용의 간략한 요약과 더불어 내가 했던 고민들을 함께 다루어보고자 한다.
자의적 구금은 말 그대로 자의적인 체포 혹은 억류를 말한다. 자의적 구금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이 강의를 듣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의적 구금에 대해 떠올리자면 “요새 어떤 경찰이 사람들을 마음대로 잡아가? 그럼 난리 나지 않나?”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웠다. 북한에서는 아직까지 외국인들을 납치하거나 강제 억류한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민주주의로의 과도기에 있는 등 정치체계가 불안정하거나 법체계가 부실한 나라들에서만이 이런 구금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강의를 통해 자의적 구금이 실패국가, 무능한 국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두 발을 딛고 서있는 이 땅, 한국에서도 자의적 구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던 것이다.
내가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이 강의를 들으며 가장 먼저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입원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보건법에 따라 정신장애인 혹은 “정신질환으로 자신 또는 타인을 해할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자”에 대해 보호의무자 2인, 지방자치단체의 장(시장, 군수, 구청장), 혹은 경찰관의 동의와 의사 한 명의 진단만으로 비자발적인 입원을 강행할 수 있다. 또한, 입원 시에는 전기충격요법 등의 특수치료, 통신 및 면회 등을 금지하는 행동제한, 격리시키거나 묶는 등의 신체적 제한이 부분적으로 허용된다. 영화 「날 보러와요」에서 꼬집고 있듯,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약을 안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강박하여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등의 안타까운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다. 아무리 치안유지라는 명목을 내세워보아도 이는 분명 자의적 구금에 해당하며, 해결이 시급한 문제이다. 다른 장애인 관련법들과는 달리 유독 정신장애인 관련법만이 무척 더디게 발전하고 있는데,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서 낙인찍기보다 그들 역시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바라보고, 보호하려는 사회적 합의가 더욱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또 다른 예시를 들자면, 강연자의 이야기들 중 나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월호 관련 추모 및 시위가 한창일 즈음, 나 역시 광화문 일대를 지나며 수십 대의 경찰 버스들과 사람만한 방패를 들고 거리를 통제하는 경찰관, 그 중심에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집회 해산을 촉구하는 방송이 계속해서 울려댔고, 심지어 시민들의 접근까지 통제하고 나섰었는데, 강연자로부터 전해들은 당시의 상황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참담했다. 유가족들은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이른바 “고착”되어 옴짝달싹 못하였고, 주변 지인들이 가려준 모포 혹은 라면 박스 속에서 볼일을 봐야만 했다고 한다.
이렇듯 자의적 구금은 경찰서나 실내의 특수한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길거리, 심지어 내 집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고, 신체의 자유·이동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더 큰 인권침해의 시발점이 될 수 있기에 이 권리의 보호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위의 사례들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자의적인 것인가? 강연자는 “자의성이 적법성, 적절성, 정의, 예측가능성, 정당절차, 합리성, 필요성, 비례성에 의해 판단되고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건강상의 이유 등 정당한 사유 없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병역법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수감은 현행법상 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위원회는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자의적 구금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즉, 자의성이 단지 법에 반한다는 의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의적 구금 논의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침해할 수 없으며, 성소수자, 외국인, 난민, 무국적자 등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인권의 특성상 누구나 동등하게 이를 향유할 수 있다는 말에 “당연한 거 아니야?”하고 되묻는 이들이 많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자. 국가안보 혹은 재범 방지를 위해 범죄자, 테러리스트들의 형이 끝난 후에도 별도의 시설에서 이들을 구금·관리·감독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약 십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죄를 범한 자 중 재범의 우려가 있는 경우, 형이 끝난 후 출소시키지 않고 보호감호소로 이송해 교육 및 치료를 명분으로 사회와 격리시키는 이른바 사회보호법이 있었다. 보호감호 기간도 정해져있는 것이 아닌 법무부 장관의 심사 하에 7년까지 연장될 수 있기 때문에 이중처벌 논란과 더불어 보호감호소 내부의 여러 인권침해 문제가 부각되어 2005년 결국 폐지되었지만, 조두순이 형을 마치고 나오는 2020년이 다가오고, 이른바 ‘묻지마 범죄’ 등 흉악범죄가 계속될수록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늘어나 언제든 부활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무리 전과가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법원에서 판결 받은 형을 모두 마친 후에는 자의적으로 구금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신체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우리의 필요나 인식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강의를 듣고 집에 와서 관련 자료들을 검색해 보며 예나 지금이나 안보 및 치안 유지가 자의적 구금의 정당화를 위한 주된 근거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경우,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언제나 거론되고 있고, 인천공항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150여명의 입국거부자 문제에 대해서는 IS 등 테러의 위험이 있다며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 역시 아직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얻지는 못했지만, A를 가지려면 꼭 B를 버려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보다 A, B 모두를 지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