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5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4강: 유해물질
‘편리’한 삶에 대하여
아샤, 다산인권센터
‘편리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의 삶은 생활을 좀 더 ‘편리’하게 해주는 수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다. 은행 업무부터 길찾기까지 현대인들이 대부분의 일상을 의존하고 있는 스마트폰에서부터 개념 있는 사람이라면 꼭 들고 다녀야 한다는 텀블러 그리고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준다는 썬크림까지. 일일이 열거조차 하기 힘든 수많은 제품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더 ‘편리한’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제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새로운 제품의 탄생은 새로운 물질의 발명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에 있던 제품을 더 작고, 가볍고 더 효율적으로 만들거나 이전에 없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신소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바스쿳 툰작(Baskut Tuncak) UN 유해물질 및 폐기물에 관한 특별보고관이 UN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82년부터 전세계적으로 대략 15,000가지에서 24,000가지가 넘는 신물질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신물질을 가지고 기업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쓰이는 수천, 수만 가지의 제품들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러한 제품들이 앞세우는 ‘편리성’ 뒤에 어떠한 이면들이 숨겨져 있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에는 보통 이 물건이 얼마나 편리하고, 스마트하고, 간편한 것인지에 대한 내용만이 가득할 뿐, 이 제품을 만드는데 어떤 물질들이 쓰였는지, 그 물질들이 제조 혹은 사용 과정에서 (노동자와 소비자를 모두 포함하여) 인간 또는 지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 역시 굳이 그런 정보를 확인해보려 애를 쓰지 않는다. 귀찮기도 하고,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얻어야 할지도 모르며, 어렵고 복잡해서 봐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와 관련된 사건이 터지고 내가 그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물질들로 인한 사고의 결과가 너무나도 참혹하다는 점이다. 20세기 세계 3대 환경참사의 하나로 뽑히는 인도 보팔참사를 예로 들어보자. 인도 보팔참사는 1986년 12월 3일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주의 인구 100만 도시인 보팔시에 위치한 미국의 농약회사 유니언카바이드 공장에서 맹독성 농약원료인 메틸이소시아네이트(MIC) 40톤이 누출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이로 인해 보팔시 인구 절반인 50만 명이 맹독성 물질에 노출되어 사고발생 3일 만에 3,500명이 1994년까지 2만5천여 명이 사망했다.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피해자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욱 어마어마하다. 그 수가 15만여 명에 이르고, 직접 노출된 세대를 넘어 그들의 자녀인 2세대에까지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니 그 피해의 규모와 정도를 가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멀리 인도의 사례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람들의 수가 4천 명을 넘어섰다. 여기에는 919명의 사망자 수도 포함된다. “나라에서 팔아도 된다고 허가를 내준, 그리고 대형마트에서 판매한 옥시 가습기살균제로 우리 아이 인생이 망가졌다. ···내 손으로 내 가족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사람들만 남아 있다”는 한 피해자 가족의 말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해 싸워온 반올림의 경우는 어떠한가? 반도체·LCD 공장(특히 삼성)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이나 각종 암에 걸린 사람들의 수가 반올림에 제보된 것만 220명을 넘어섰고, 그 중 76명은 이미 사망했다. 20,30대에 중병에 걸려 투병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 중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피해자는 11명에 불과하다. 회사가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반도체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이나 작업 환경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암의 잠복기가 10년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직업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10년 전 작업환경 속에서 어떤 유해 물질에 노출되어 병에 걸렸는지를 노동자 스스로가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악용하여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병에 대해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제품을 제조하는 노동자들에게 유해한 제품이 그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에게 무해할리가 만무하다.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든 ‘나은 방향으로’, 그러니까 더 편리하게, 더 청결하게, 더 간편하게 만들어준다는 이 모든 제품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몸을, 우리의 지구를 심각하게 병들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만든 그리고 자신들이 승인해준 제품들이 이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기업과 정부는 과연 알고 있었을까?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물증은 없는 상황이 여기저기에서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유해물질과 관련된 문제에서 정보 접근권과 알 권리가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전문가가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다는 류은숙 선생님의 주장이 매우 인상 깊었다. 즉, 우리가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이나 기술적 문제의 입증 책임은 ‘전문가’들에게 있음을 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지식이기 보다는 사실관계에 대해서 추궁하고, 합리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과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대한 보다 엄격한 자세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접근법이 통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고, 조금 더 크게는 파이를 키우는 ‘성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을 깨는 것 역시 필요할 것이다.
글을 마치며 다시 ‘편리한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누리는 ‘편리’가 다른 누군가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면서 생산된 것은 아닌지, 다음 세대 역시 동등하게 누려야 할 지구 환경을 담보로 소비되어지는 것은 아닌지, 윤리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기업의 배를 불려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누리고 있는 ‘편리’가 그런 편리라면 나는 기꺼이 덜 편리한, 어쩌면 조금은 불편한 삶을 살 의향이 있다. ‘편리’한 삶 속에 감춰진 칼날이 지금 당장 나를 향하지 않더라도 그게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 모두의 목을 겨눌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유해물질인지 아무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삶의 방식은 어쩌면 이 유해물질들이 가져다주는 ‘편리’ 밑에 감춰진 내용들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는 것, 그 편리로부터 스스로를 조금씩 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후기] 제5회 유엔인권정책아카데미 4강: 유해물질
‘편리’한 삶에 대하여
아샤, 다산인권센터
‘편리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우리의 삶은 생활을 좀 더 ‘편리’하게 해주는 수많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다. 은행 업무부터 길찾기까지 현대인들이 대부분의 일상을 의존하고 있는 스마트폰에서부터 개념 있는 사람이라면 꼭 들고 다녀야 한다는 텀블러 그리고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준다는 썬크림까지. 일일이 열거조차 하기 힘든 수많은 제품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더 ‘편리한’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제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새로운 제품의 탄생은 새로운 물질의 발명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에 있던 제품을 더 작고, 가볍고 더 효율적으로 만들거나 이전에 없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신소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바스쿳 툰작(Baskut Tuncak) UN 유해물질 및 폐기물에 관한 특별보고관이 UN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82년부터 전세계적으로 대략 15,000가지에서 24,000가지가 넘는 신물질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신물질을 가지고 기업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쓰이는 수천, 수만 가지의 제품들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러한 제품들이 앞세우는 ‘편리성’ 뒤에 어떠한 이면들이 숨겨져 있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에는 보통 이 물건이 얼마나 편리하고, 스마트하고, 간편한 것인지에 대한 내용만이 가득할 뿐, 이 제품을 만드는데 어떤 물질들이 쓰였는지, 그 물질들이 제조 혹은 사용 과정에서 (노동자와 소비자를 모두 포함하여) 인간 또는 지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람들 역시 굳이 그런 정보를 확인해보려 애를 쓰지 않는다. 귀찮기도 하고,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얻어야 할지도 모르며, 어렵고 복잡해서 봐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와 관련된 사건이 터지고 내가 그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물질들로 인한 사고의 결과가 너무나도 참혹하다는 점이다. 20세기 세계 3대 환경참사의 하나로 뽑히는 인도 보팔참사를 예로 들어보자. 인도 보팔참사는 1986년 12월 3일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주의 인구 100만 도시인 보팔시에 위치한 미국의 농약회사 유니언카바이드 공장에서 맹독성 농약원료인 메틸이소시아네이트(MIC) 40톤이 누출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이로 인해 보팔시 인구 절반인 50만 명이 맹독성 물질에 노출되어 사고발생 3일 만에 3,500명이 1994년까지 2만5천여 명이 사망했다.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피해자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욱 어마어마하다. 그 수가 15만여 명에 이르고, 직접 노출된 세대를 넘어 그들의 자녀인 2세대에까지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니 그 피해의 규모와 정도를 가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굳이 멀리 인도의 사례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지난 5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한 사람들의 수가 4천 명을 넘어섰다. 여기에는 919명의 사망자 수도 포함된다. “나라에서 팔아도 된다고 허가를 내준, 그리고 대형마트에서 판매한 옥시 가습기살균제로 우리 아이 인생이 망가졌다. ···내 손으로 내 가족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사람들만 남아 있다”는 한 피해자 가족의 말은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위해 싸워온 반올림의 경우는 어떠한가? 반도체·LCD 공장(특히 삼성)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이나 각종 암에 걸린 사람들의 수가 반올림에 제보된 것만 220명을 넘어섰고, 그 중 76명은 이미 사망했다. 20,30대에 중병에 걸려 투병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이 중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피해자는 11명에 불과하다. 회사가 영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반도체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이나 작업 환경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산재로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암의 잠복기가 10년이라는 것을 고려해보면, 직업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10년 전 작업환경 속에서 어떤 유해 물질에 노출되어 병에 걸렸는지를 노동자 스스로가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악용하여 삼성을 비롯한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병에 대해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제품을 제조하는 노동자들에게 유해한 제품이 그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에게 무해할리가 만무하다.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든 ‘나은 방향으로’, 그러니까 더 편리하게, 더 청결하게, 더 간편하게 만들어준다는 이 모든 제품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몸을, 우리의 지구를 심각하게 병들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만든 그리고 자신들이 승인해준 제품들이 이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기업과 정부는 과연 알고 있었을까? 심증은 있지만 확실한 물증은 없는 상황이 여기저기에서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유해물질과 관련된 문제에서 정보 접근권과 알 권리가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전문가가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다는 류은숙 선생님의 주장이 매우 인상 깊었다. 즉, 우리가 전문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이나 기술적 문제의 입증 책임은 ‘전문가’들에게 있음을 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지식이기 보다는 사실관계에 대해서 추궁하고, 합리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과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대한 보다 엄격한 자세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접근법이 통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고, 조금 더 크게는 파이를 키우는 ‘성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환상을 깨는 것 역시 필요할 것이다.
글을 마치며 다시 ‘편리한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누리는 ‘편리’가 다른 누군가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면서 생산된 것은 아닌지, 다음 세대 역시 동등하게 누려야 할 지구 환경을 담보로 소비되어지는 것은 아닌지, 윤리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기업의 배를 불려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누리고 있는 ‘편리’가 그런 편리라면 나는 기꺼이 덜 편리한, 어쩌면 조금은 불편한 삶을 살 의향이 있다. ‘편리’한 삶 속에 감춰진 칼날이 지금 당장 나를 향하지 않더라도 그게 언제 어떤 형태로 우리 모두의 목을 겨눌지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유해물질인지 아무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삶의 방식은 어쩌면 이 유해물질들이 가져다주는 ‘편리’ 밑에 감춰진 내용들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는 것, 그 편리로부터 스스로를 조금씩 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