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웹진에 기고한 글의 편집본 임을 밝힙니다
성소수자 노동권팀과의 조우
준태
행동하는성소수자 인권연대 (이하 “행성인”)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단체이다. 국내에서 차별적인 양성평등이아닌 진정한 의미의 성평등을 이루는데 보탬이 되고자 코쿤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먼저 방문 한 곳이기 때문이다. 행성인 안에 있는 성소수자 노동권팀에 특히 더 관심을 가지고 회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내겐 평소에 낯설어서거리감이 있던 노동권 관련 활동을 심도 있게 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2012년부터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 (이하 “일성모”)를주최해 성소수자 노동자로서의 고충, 직장 내에서의 괴롭힘 및 차별 등에 대해 논의해보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지난 10월29일, 올해 일성모의세 번째 모임인 “전태일 평전을 읽는 밤”이 까페 ‘우리동네 나무그늘’에서 개최 되었다.내가 처음으로 전태일 열사를 접한 것은 중학생 때 부모님과 함께 보게 된 영화 “아름다운청년 전태일”을 통해서 였다. 당시 나는 매우 큰 충격을받았다. 전태일 열사는 당시의 나와 비슷한 나이에 하루에 15시간씩피복공장에서 일을 하며, 동료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노동 조합을 만들기 시작했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가장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 중 하나인 분신을 택했다. 그는 마치 나와 동 떨어진 세계에 사는 듯한 인물 같았다. 청소년기에전태일 열사와의 첫 조우 이후로 약 20년만에 읽은 전태일 평전은 나에게 ‘노동자로서의 나’, ‘활동가로서의 나’, ‘사회구성원의로서의 나’ 등 나의 다양한 정체성과 내 삶의 모든전반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자로서의인식
행사에참여한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님은 한진 중공업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던 시절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그녀는절대적으로 남성 근로자가 많은 조선소에서 일했던 당시 “노동자”라는단어는 음담패설이나 일삼으며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하는 비하적 어감이 강한 말이라고 느꼈다. 자신에게“노동자”라는 말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야학에등록할 때 직업란에 노동자가 아닌 용접자라고 썼던 기억을 회상했다. 나 역시 그녀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약 10년 동안의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내가 노동자라는 인식은전혀 없었다. 회사에서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좋은 평가에 뿌듯함을 느낄 때면 스스로 전문직 종사자로느꼈고 일이 없어 잘 안 풀릴 때면 일의 수급이나 수입이 불안정한 프리랜서로만 생각했다. 노동자가 단순히생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생각, 그런 사람들이 여기까지 세상을 만들었다고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힘내자고 말한 김진숙님의 끝맺음은 내게 노동이 가지는 다양한 사회적 의미를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연대와존재감
한진중공업 파업이 한창 이었을 당시 고공에 있던 당시 김 지도위원님은 2차 희망버스 때 퀴어버스를 꾸려타고 온 성소수자들을 호명했다. 그 동안 성소수자들은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왔지만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다. 고공에 있던 김진숙님이 이들을 호명함으로써 노동운영진영이 평소 가지고 있던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름을불러주는 것과 동시에 존재감이 생긴 것이다. 성소수자들은 그렇게 생긴 존재감으로 각종 사회 문제와 인권침해에 저항하는 연대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힘든 순간들을 함께 해오고 있다. 당장 나의 일상이 평온해도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하고 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고 삶이 부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그런 연대를 지속한다면 만연한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느리게 나마 바뀌지 않을까?
마찬가지로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연대할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그것 자체가 운동이고,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열악한노동환경 속에서 피어난 전태일 정신
자신의몸 조차 온전히 건사하기 힘든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전태일 열사를 움직이게 했던 힘은 무엇일까? 나는그 힘이 솔직함으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한다. 전태일은 노동자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에 솔직하게 반응하고행동했다. 또한 기존에 정립되어있는 질서를 핑계 삼아 노동환경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부당함을 안쓰러운 감정 그 자체로 남겨두지 않았다. 끼니조차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공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에 전태일은 직접 자신의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 빵을 사주었고 힘이 들어 화장실에서 눈물을흘리는 여공들의 마음을 헤아려 일을 나눠서 분담했다. 그리고 기존 질서에 저항하여 문제의 본질에 솔직하게접근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 노동조합의 형성이란 대안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고용주의 방해와노동자들의 인식 부재 등 수많은 걸림돌들이 있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대안이 없었을때 그는 한 치에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몸을 근로기준법 책과 함께 불에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그는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크게 외쳤다.
“내죽음을 헛되어 하지 말라!”
일하는성소수자 모임 세번째 시간 “전태일 평전을 읽는 밤”을 통해나는 단순히 직장인이나,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로서 거듭난 것 같다.노동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동료 노동자와 함께 세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노동자 말이다. 참석자들은다시 한번 전태일 평전을 읽은 이번 모임을 통해서 마음 한 구석에 있던 전태일 정신의 불씨가 지펴졌을 지도 모른다.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고 그 마음에 솔직했으면 좋겠다.
** 본 글은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 웹진에 기고한 글의 편집본 임을 밝힙니다
성소수자 노동권팀과의 조우
준태
행동하는성소수자 인권연대 (이하 “행성인”)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단체이다. 국내에서 차별적인 양성평등이아닌 진정한 의미의 성평등을 이루는데 보탬이 되고자 코쿤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먼저 방문 한 곳이기 때문이다. 행성인 안에 있는 성소수자 노동권팀에 특히 더 관심을 가지고 회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내겐 평소에 낯설어서거리감이 있던 노동권 관련 활동을 심도 있게 했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2012년부터 “일하는 성소수자 모임” (이하 “일성모”)를주최해 성소수자 노동자로서의 고충, 직장 내에서의 괴롭힘 및 차별 등에 대해 논의해보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지난 10월29일, 올해 일성모의세 번째 모임인 “전태일 평전을 읽는 밤”이 까페 ‘우리동네 나무그늘’에서 개최 되었다.내가 처음으로 전태일 열사를 접한 것은 중학생 때 부모님과 함께 보게 된 영화 “아름다운청년 전태일”을 통해서 였다. 당시 나는 매우 큰 충격을받았다. 전태일 열사는 당시의 나와 비슷한 나이에 하루에 15시간씩피복공장에서 일을 하며, 동료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통해 노동 조합을 만들기 시작했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가장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 중 하나인 분신을 택했다. 그는 마치 나와 동 떨어진 세계에 사는 듯한 인물 같았다. 청소년기에전태일 열사와의 첫 조우 이후로 약 20년만에 읽은 전태일 평전은 나에게 ‘노동자로서의 나’, ‘활동가로서의 나’, ‘사회구성원의로서의 나’ 등 나의 다양한 정체성과 내 삶의 모든전반을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자로서의인식
행사에참여한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님은 한진 중공업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던 시절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그녀는절대적으로 남성 근로자가 많은 조선소에서 일했던 당시 “노동자”라는단어는 음담패설이나 일삼으며 육체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지칭하는 비하적 어감이 강한 말이라고 느꼈다. 자신에게“노동자”라는 말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야학에등록할 때 직업란에 노동자가 아닌 용접자라고 썼던 기억을 회상했다. 나 역시 그녀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약 10년 동안의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내가 노동자라는 인식은전혀 없었다. 회사에서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좋은 평가에 뿌듯함을 느낄 때면 스스로 전문직 종사자로느꼈고 일이 없어 잘 안 풀릴 때면 일의 수급이나 수입이 불안정한 프리랜서로만 생각했다. 노동자가 단순히생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생각, 그런 사람들이 여기까지 세상을 만들었다고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힘내자고 말한 김진숙님의 끝맺음은 내게 노동이 가지는 다양한 사회적 의미를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연대와존재감
한진중공업 파업이 한창 이었을 당시 고공에 있던 당시 김 지도위원님은 2차 희망버스 때 퀴어버스를 꾸려타고 온 성소수자들을 호명했다. 그 동안 성소수자들은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왔지만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다. 고공에 있던 김진숙님이 이들을 호명함으로써 노동운영진영이 평소 가지고 있던성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름을불러주는 것과 동시에 존재감이 생긴 것이다. 성소수자들은 그렇게 생긴 존재감으로 각종 사회 문제와 인권침해에 저항하는 연대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힘든 순간들을 함께 해오고 있다. 당장 나의 일상이 평온해도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하고 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고 삶이 부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그런 연대를 지속한다면 만연한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느리게 나마 바뀌지 않을까?
마찬가지로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연대할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그것 자체가 운동이고,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열악한노동환경 속에서 피어난 전태일 정신
자신의몸 조차 온전히 건사하기 힘든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전태일 열사를 움직이게 했던 힘은 무엇일까? 나는그 힘이 솔직함으로부터 나왔다고 생각한다. 전태일은 노동자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념에 솔직하게 반응하고행동했다. 또한 기존에 정립되어있는 질서를 핑계 삼아 노동환경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부당함을 안쓰러운 감정 그 자체로 남겨두지 않았다. 끼니조차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공들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에 전태일은 직접 자신의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 빵을 사주었고 힘이 들어 화장실에서 눈물을흘리는 여공들의 마음을 헤아려 일을 나눠서 분담했다. 그리고 기존 질서에 저항하여 문제의 본질에 솔직하게접근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은 결과 노동조합의 형성이란 대안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고용주의 방해와노동자들의 인식 부재 등 수많은 걸림돌들이 있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대안이 없었을때 그는 한 치에 망설임 없이 자신의 몸을 근로기준법 책과 함께 불에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그는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크게 외쳤다.
“내죽음을 헛되어 하지 말라!”
일하는성소수자 모임 세번째 시간 “전태일 평전을 읽는 밤”을 통해나는 단순히 직장인이나, 프리랜서가 아닌 노동자로서 거듭난 것 같다.노동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동료 노동자와 함께 세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노동자 말이다. 참석자들은다시 한번 전태일 평전을 읽은 이번 모임을 통해서 마음 한 구석에 있던 전태일 정신의 불씨가 지펴졌을 지도 모른다.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고 그 마음에 솔직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