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OO
1. 참여동기 및 기대
인터넷에서 뉴욕 인권연수 참가자 모집 공고를 보고 내 가슴은 두근두근 설다. 마침 한 학기 동안 국제관계사와 국제정치 수업을 들으면서 유엔의 설립 과정과 역할, 한계에 대해서 지겹도록 배우고 토론하고 난 후였다. 사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구경하러 왔던 유엔 본부는 나에게는 마냥 동경의 대상이었다. 당시 어린 마음에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과 세계 평화라는 거창한 단어에 끌려서 나중에 크면 꼭 여기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점점 머리가 크고, 국제법과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맞닥뜨린 유엔은 마냥 화려한 곳도, 이상적인 곳도 아니었다. 오히려 강대국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법적 구속력 하나 갖지 못하는 결의안을 내놓는 무력한 곳처럼 보인 적도 많았다. 마음 한 구석 어린 시절부터의 동경과 공부를 하고 진지하게 직업을 고민하면서 마주한 현실이 내 머릿속에서 항상 시끄러운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발 더 가까이 유엔이라는 곳에 대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였으니 설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참여 과정이 마냥 순탄치는 않았지만 덕분에 나는 사무국에서 인턴을 하면서 NGO단체와 인권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연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번 연수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직접 유엔에서 국제적 차원의 회의를 경험하고 인권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보고 싶다는 마음, 또 하나는 생각만 복잡하고 명확히 잡히지 않는 진로 방향을 결정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2. 인상 깊었던 기관 및 활동
연수는 크게 기관 방문과 CEDAW 참관 두 가지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한국 대표부, UNICEF, UN Women 등의 기관 방문이 시작되었다.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이었지만, 특히 내가 사전 조사를 맡았던 기관이자 연수 전에 가장 기대를 가지고 갔던 곳인 UNICEF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는 평소에 인권과 제3세계 개발 문제에 있어서 아동이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UNICEF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아이들은 성인보다 약한 입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빈곤의 고리를 끊고 인권이 보호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들부터 확실하게 의식을 심어주어야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내가 UNICEF를 기억에 남는 기관으로 꼽는 이유는 UNICEF 방문이 특별히 다른 곳보다 좋았다거나, 대단한 것을 배웠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아쉬움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2시간 가량의 방문 동안 UNICEF에서 8년간 근무하신 강민휘 씨께서 아동 폭력에 대한 브리핑을해주시고 Q&A 시간을 가졌다. Q&A 때는 인권 협약 중 가장 많은 비준국을 가진 아동권리협약을 미국이 비준하지 않는 현실의 정치성 문제나, 아동과 아동폭력의 정확한 개념, 아동 노동 착취 등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나도 평소에 궁금했던 점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정확히 내가 묻고자 했던 점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해서 못내 아쉬웠다. 또 UNICEF에 방문했는데 왠지 UNICEF라는 기관 자체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한 것 같다는 허무함도 느꼈다.
UNICEF에 다녀와서 그렇게 알 수 없는 허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다같이 모여서 가진 정리 시간이 그러한 기분을 해소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되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활동가분들과 KOCUN 분들이 제각기 UNICEF에 다녀와서 느낀 생각을 나누었는데 UNICEF에 대한 비판이나 아쉬운 점도 거리낌 없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여러 각도에서 UNICEF를 비롯한 국제기구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 UNICEF 자체에 대해서는 후에 UNICEF에서 JPO로 일하시는 분과 같이 숙소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몇 가지 여쭤볼 수 있었다.) 이렇게 첫 일정은 다소 어수룩하게 지나갔지만, 연수 기간이 지날수록 여러 기관들을 자연스레 비교해보게 되면서 후에 방문한 곳들에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CEDAW 회의를 참관하고 여러 단체를 방문한 후에 UN Women 등의 유엔기관을 방문했다면 더 느끼는 점이 많지 않았을까, 궁금했던 점들을 더 물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했다. 역시 사람은 준비된 만큼 배우고 자랄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기관 사전 조사나 질문을 뽑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첫 주의 주요 활동은 CEDAW 한국 심의를 대비하여 런치 브리핑과 NGO&NI Consultation을 준비 및 참관하고 위원들에게 로비를 하는 등 한국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 정부 심의 자체도 인상 깊었지만, 그보다는 보다 직접적으로 활동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런치 브리핑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런치 브리핑은 정부 심의 전 NGO 단체들이 위원들을 초대해서 공식 회의 시간에 하지 못하는 설명을 자세히 할 수 있는 시간인데, 참석 여부는 온전히 위원들의 재량에 달려 있다. 이 시간에 한국 정부가 제대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 한국 여성 인권 상황의 문제점에 대해 위원들에게 인식시키고, 심의 때 한국 정부에게 이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최종 권고 때 문제되는 내용을 집어넣을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다. 처음 런치 브리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위원들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이런 곳에 오려나 걱정스럽기도 하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위원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런치 브리핑에 오고, 열심히 질문을 던지는 위원들을 보면서 놀랐다. 그 동안 유엔에서 인권 논의가 형식적이고 구색만 맞추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의 의심을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실제로 사무국에서 인턴 일을 하면서 준비했던 발표 자료의 내용이 실제로 진행되는 것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CEDAW 위원회의 Concluding observation을 읽는데 런치 브리핑과 심의 도중 나왔던 문제들이 문서로 작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왠지 모를 신기함과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중요한 이벤트였던 CEDAW 한국 심의가 끝나자 학생들도 이가원 선생님도 한 숨 돌리고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관 방문을 준비할 수 있었다. 기관들마다 우리를 환영해주었지만 그 방식들은 천차만별이었다. 식사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데려가 주기도 하고, 사실 각기 다른 단체들의 사무실만 구경해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기관 방문 중 가장 흥미로웠던 날을 꼽으라면 연수가 끝나기 직전, Equality Now와 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 Center for Anti-Violence Education을 방문한 날일 것이다. 컬럼비아 서클부터 월스트리트, 브루클린까지 가느라 바빴지만 무척 인상 깊은 날이었다. 연수 기간이 끝났다는 아쉬움도 한 몫 했지만 기관 자체도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마지막 Center for Anti-Violence Education은 self-defense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직접 배워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사실 이 센터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호신술을 가르치는 재미있는 단체이기는 하지만 인권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잘 맥을 잡지 못했었다. 왜 self-defense에 꼭 신체적 연습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이러한 연습이 실제로 위기 시에 도움이 될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불쾌한 상황을 가정하고 큰 소리로 벗어나는 연습을 하면서 자기 표현에도 분명 이렇게 연습이 필요하다는 점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낯선 사람의 팔을 뿌리치고 자신을 보호하기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세상의 많은 인권 침해 현장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당연히 잘못된 것이고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걸 의도하신 건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3. 앞으로의 방향
스스로 인권 문제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짧은 인턴 활동과 사전 교육, 그리고 이번 연수를 통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관심''''''''''''''''이 얼마나 안이한 것이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인권은 고귀한 것이지만 현실에서 인권에 관심을 갖는다는 일은 무척이나 불편한 일이다. 당연하게, 심지어는 아름답게 여기면서 넘어갔던 세상의 많은 일들이 부당하고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동안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이러한 불편함을 외면하고 세상을 행복하게만 바라보는 데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또 내가 이번 연수에서 얻은 또 다른 수확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유엔과 NGO 단체에서 인권을 위해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보고 이야기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롤모델에 목말라 했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앞서 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만난 분들 모두가 자신의 꿈과 목표하는 바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계신데도, 그 중에서도 유난히 더 매력적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매력이 인간적인 매력에서 나오는 것인지 자신의 일을 유난히 사랑해서 나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나도 저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 내 스스로가 법학을 전공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CEDAW 위원들이나 유엔 기관들, NGO 단체들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유난히 법 공부를 했거나 변호사인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번 연수가 끝나고 당장 이거야! 하면서 나의 길을 찾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분명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에는 2주간 함께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정든 사람들도 절대로 빼놓을 수 없다. 나보다 어린데도 훨씬 생각이 깊은 사랑스러운 동생들과 이미 멋지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언니들과 친구들, 이번 연수에서 일하시랴 학생들 챙기시랴 바쁘셨을 이가원 선생님, 신혜수 대표님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OO
1. 참여동기 및 기대
인터넷에서 뉴욕 인권연수 참가자 모집 공고를 보고 내 가슴은 두근두근 설다. 마침 한 학기 동안 국제관계사와 국제정치 수업을 들으면서 유엔의 설립 과정과 역할, 한계에 대해서 지겹도록 배우고 토론하고 난 후였다. 사실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구경하러 왔던 유엔 본부는 나에게는 마냥 동경의 대상이었다. 당시 어린 마음에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과 세계 평화라는 거창한 단어에 끌려서 나중에 크면 꼭 여기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점점 머리가 크고, 국제법과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맞닥뜨린 유엔은 마냥 화려한 곳도, 이상적인 곳도 아니었다. 오히려 강대국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법적 구속력 하나 갖지 못하는 결의안을 내놓는 무력한 곳처럼 보인 적도 많았다. 마음 한 구석 어린 시절부터의 동경과 공부를 하고 진지하게 직업을 고민하면서 마주한 현실이 내 머릿속에서 항상 시끄러운 충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발 더 가까이 유엔이라는 곳에 대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하였으니 설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참여 과정이 마냥 순탄치는 않았지만 덕분에 나는 사무국에서 인턴을 하면서 NGO단체와 인권에 대한 많은 생각을 가지고 연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번 연수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직접 유엔에서 국제적 차원의 회의를 경험하고 인권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보고 싶다는 마음, 또 하나는 생각만 복잡하고 명확히 잡히지 않는 진로 방향을 결정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2. 인상 깊었던 기관 및 활동
연수는 크게 기관 방문과 CEDAW 참관 두 가지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한국 대표부, UNICEF, UN Women 등의 기관 방문이 시작되었다.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이었지만, 특히 내가 사전 조사를 맡았던 기관이자 연수 전에 가장 기대를 가지고 갔던 곳인 UNICEF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는 평소에 인권과 제3세계 개발 문제에 있어서 아동이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UNICEF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아이들은 성인보다 약한 입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특별히 보호받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빈곤의 고리를 끊고 인권이 보호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들부터 확실하게 의식을 심어주어야 미래가 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내가 UNICEF를 기억에 남는 기관으로 꼽는 이유는 UNICEF 방문이 특별히 다른 곳보다 좋았다거나, 대단한 것을 배웠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아쉬움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2시간 가량의 방문 동안 UNICEF에서 8년간 근무하신 강민휘 씨께서 아동 폭력에 대한 브리핑을해주시고 Q&A 시간을 가졌다. Q&A 때는 인권 협약 중 가장 많은 비준국을 가진 아동권리협약을 미국이 비준하지 않는 현실의 정치성 문제나, 아동과 아동폭력의 정확한 개념, 아동 노동 착취 등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나도 평소에 궁금했던 점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정확히 내가 묻고자 했던 점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해서 못내 아쉬웠다. 또 UNICEF에 방문했는데 왠지 UNICEF라는 기관 자체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한 것 같다는 허무함도 느꼈다.
UNICEF에 다녀와서 그렇게 알 수 없는 허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다같이 모여서 가진 정리 시간이 그러한 기분을 해소하는 데 조금 도움이 되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활동가분들과 KOCUN 분들이 제각기 UNICEF에 다녀와서 느낀 생각을 나누었는데 UNICEF에 대한 비판이나 아쉬운 점도 거리낌 없이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여러 각도에서 UNICEF를 비롯한 국제기구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 UNICEF 자체에 대해서는 후에 UNICEF에서 JPO로 일하시는 분과 같이 숙소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몇 가지 여쭤볼 수 있었다.) 이렇게 첫 일정은 다소 어수룩하게 지나갔지만, 연수 기간이 지날수록 여러 기관들을 자연스레 비교해보게 되면서 후에 방문한 곳들에서 더욱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CEDAW 회의를 참관하고 여러 단체를 방문한 후에 UN Women 등의 유엔기관을 방문했다면 더 느끼는 점이 많지 않았을까, 궁금했던 점들을 더 물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했다. 역시 사람은 준비된 만큼 배우고 자랄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기관 사전 조사나 질문을 뽑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첫 주의 주요 활동은 CEDAW 한국 심의를 대비하여 런치 브리핑과 NGO&NI Consultation을 준비 및 참관하고 위원들에게 로비를 하는 등 한국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다. 물론 한국 정부 심의 자체도 인상 깊었지만, 그보다는 보다 직접적으로 활동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런치 브리핑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런치 브리핑은 정부 심의 전 NGO 단체들이 위원들을 초대해서 공식 회의 시간에 하지 못하는 설명을 자세히 할 수 있는 시간인데, 참석 여부는 온전히 위원들의 재량에 달려 있다. 이 시간에 한국 정부가 제대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 한국 여성 인권 상황의 문제점에 대해 위원들에게 인식시키고, 심의 때 한국 정부에게 이에 대한 질문을 하거나 최종 권고 때 문제되는 내용을 집어넣을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다. 처음 런치 브리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위원들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이런 곳에 오려나 걱정스럽기도 하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위원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 런치 브리핑에 오고, 열심히 질문을 던지는 위원들을 보면서 놀랐다. 그 동안 유엔에서 인권 논의가 형식적이고 구색만 맞추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의 의심을 어느 정도 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실제로 사무국에서 인턴 일을 하면서 준비했던 발표 자료의 내용이 실제로 진행되는 것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CEDAW 위원회의 Concluding observation을 읽는데 런치 브리핑과 심의 도중 나왔던 문제들이 문서로 작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왠지 모를 신기함과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중요한 이벤트였던 CEDAW 한국 심의가 끝나자 학생들도 이가원 선생님도 한 숨 돌리고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관 방문을 준비할 수 있었다. 기관들마다 우리를 환영해주었지만 그 방식들은 천차만별이었다. 식사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데려가 주기도 하고, 사실 각기 다른 단체들의 사무실만 구경해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기관 방문 중 가장 흥미로웠던 날을 꼽으라면 연수가 끝나기 직전, Equality Now와 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 Center for Anti-Violence Education을 방문한 날일 것이다. 컬럼비아 서클부터 월스트리트, 브루클린까지 가느라 바빴지만 무척 인상 깊은 날이었다. 연수 기간이 끝났다는 아쉬움도 한 몫 했지만 기관 자체도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마지막 Center for Anti-Violence Education은 self-defense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직접 배워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사실 이 센터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호신술을 가르치는 재미있는 단체이기는 하지만 인권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잘 맥을 잡지 못했었다. 왜 self-defense에 꼭 신체적 연습이 필요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 이러한 연습이 실제로 위기 시에 도움이 될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불쾌한 상황을 가정하고 큰 소리로 벗어나는 연습을 하면서 자기 표현에도 분명 이렇게 연습이 필요하다는 점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도 낯선 사람의 팔을 뿌리치고 자신을 보호하기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세상의 많은 인권 침해 현장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당연히 잘못된 것이고 스스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걸 의도하신 건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3. 앞으로의 방향
스스로 인권 문제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짧은 인턴 활동과 사전 교육, 그리고 이번 연수를 통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관심''''''''''''''''이 얼마나 안이한 것이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인권은 고귀한 것이지만 현실에서 인권에 관심을 갖는다는 일은 무척이나 불편한 일이다. 당연하게, 심지어는 아름답게 여기면서 넘어갔던 세상의 많은 일들이 부당하고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동안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이러한 불편함을 외면하고 세상을 행복하게만 바라보는 데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또 내가 이번 연수에서 얻은 또 다른 수확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유엔과 NGO 단체에서 인권을 위해 일하는 많은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보고 이야기해볼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롤모델에 목말라 했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앞서 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서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지를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만난 분들 모두가 자신의 꿈과 목표하는 바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계신데도, 그 중에서도 유난히 더 매력적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매력이 인간적인 매력에서 나오는 것인지 자신의 일을 유난히 사랑해서 나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나도 저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또 내 스스로가 법학을 전공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CEDAW 위원들이나 유엔 기관들, NGO 단체들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 유난히 법 공부를 했거나 변호사인 사람이 많은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번 연수가 끝나고 당장 이거야! 하면서 나의 길을 찾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분명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에는 2주간 함께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정든 사람들도 절대로 빼놓을 수 없다. 나보다 어린데도 훨씬 생각이 깊은 사랑스러운 동생들과 이미 멋지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언니들과 친구들, 이번 연수에서 일하시랴 학생들 챙기시랴 바쁘셨을 이가원 선생님, 신혜수 대표님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