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람을 보았다

201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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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유엔인권정책센터가 제작하고 있는 결혼이민자를 위한 현지사전교육 영상 촬영을 담당한 필름무다 최경우 실장의 기고이다.  


필자 소개  최경우 

80년대 끝자락, 격동의 시대에 ‘88 꿈나무’라 불리우는 학번으로 대학 입학.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것에 걸맞는 학점으로 겨우 졸업. 이후 공연기획사, IT 관련 업체, 프렌차이즈 업체를 거치며 일상적인 사회생활. 평소 영화를 꿈꾸며 살아 왔던 평화로운 일상에 영화사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으로 또다시 격동의 시간을 보내게 됨. 영화사 3년 근무. 어마 어마한 개인 부채 발생. 심기일전하여 2005년 영상프로덕션 ‘필름무다’ 설립. 이후 승승장구(?)... 까지는 아니고 ‘밥은 먹으며’ 살고 있슴. 와중 ‘이주여성 교육 자료’ 의뢰. 앞뒤 안가리고 덥썩 문 결과, 약 한달 반 동안 25여회차 촬영(거의 장편영화 수준).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도록 열심히 후반작업 중!


[기고]사람을 보았다

 

고백

몇해 전 전국 오지에 있는 분교에 촬영을 다닐 일이 있었습니다.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학생들에게 음악이나 연극, 국악 등과 같이 교육과 체험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이었지요. 작은 학교 주변으로 펼쳐져 있는 풍광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워 넋이 반쯤 빠져있을 때쯤, 놀라운 광경을 또 한 번 보게 됩니다. 20명도 채 되지 않는 학생들 중 많은 아이들이 다문화가족이라는 것. 그리고 저를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생김새의 다름’이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스스럼없이 뒤섞여 놀던 아이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넬 때 유독 다문화 아이들에게만 관심을 보였던 저였습니다. 그리곤 이런 생각을 했겠지요. ‘한국말을 참 잘하네...’ 참으로 저열하기 그지없던 바보 같은 저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끄러운 고백으로 글을 시작하려 합니다.

기억

사람들이 저에게 “무슨 일을 하십니까?” 물어오면 저는 늘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돌잔치, 결혼식, 고희연 빼고 모든 영상을 만듭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채로운 상황 속에 놓이게 되는 자리가 많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의 가짓수만큼이나 많은 추억들이 머리속 한켠에, 혹은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 있겠지요. 그러면 이번 ‘이주여성 교육 자료’ 작업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어느 외진 농촌에서 이주여성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든 생각이었습니다.


어린 신부의 고백에 묻어나던 수줍은 미소와 이내 불안함과 고통이 선연히 배어있던 눈물.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힘겨운 한국생활적응기와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까지. 단시간에, 그것도 40여명의 이주여성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그네들의 속내를 살짝이라도 엿볼 수 있는 자리가 또다시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겠지요. 때문에라도 그녀들이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아련함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 것도 아마 그때였을 겁니다.

 

증상

 

워낙 빠듯한 일정으로 진행되었던 촬영이라 매 순간 견디기 힘든 긴장감이 흘렀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만큼 아쉬움도 남는 작업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이 시간에도 편집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큰 짐은 내려놓았다는 안도감이 흐르기도 하는 요즘. 모니터로 다시 만나는 그녀들의 모습과 이야기는 불현듯 당혹스러운 사명감으로 불쑥 나타나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한결같았던 그녀들의 바램. 이주여성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전에 꼭 알아주었으면 했던, 꼭 준비해 주었으면 했던 절절한 그녀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라 그저 짐작하고 있는 정체모를 사명감. 비록 풍성한 내용은 담아내지 못했지만 한 사람의 삶의 여정에 조금이나마 이번 작업이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사명감으로 나타나나 봅니다. 이런 정체모를 사명감이 그녀들의 간절한 마음처럼 저도 이런 간절함을 이야기하게 하는군요.


‘이 글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저의 마음이 온전히 그녀들에게 닿아지기를... 그리고 이번 작업의 결과물이 보다 행복한 그녀들의 미래를 만들어 주기를...’

 

사람

 

이주여성을 며느리로 맞이한 어느 시어머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입니다. “지금은 내 사람이라 생각하니까. 한국사람이나 외국사람이나 사람은 똑같으니까... 별거 없어요. 며느리가 잘 하고 있으니까. 내 식구라고 생각하며 감싸나가는 거죠”


다른 내용보다 제 가슴으로 들어온 단어는 바로 ‘사람‘ 이었습니다. 한국말을 잘하던 못하던, 한국문화에 익숙하던 그렇지 못하던..., 모두 아끼고 감싸주어야 할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머리를 세게 맞아 가슴을 울렁이게 할 정도의 찰나였습니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생긴 것이 다른 사람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아이들을 떠올렸던 순간은. 그리고 다문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국말 잘한다’던 그때 철없던 저의 모습도 떠올렸겠지요.

 

이번 작업을 통해 얼마나 그네들과 소통하고 이해했는지는 사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요즘 어떻게 지냈냐’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이런 이야기는 들려 줄 수 있겠네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을 아주 많이 만났다’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아주 많이 보았다’고...

 

수줍은 고백으로 시작했던 이야기는 역시 부끄러운 질문으로 끝을 내야겠네요.“불혹이라 불리는 나이도 어느덧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저의 생각은 조금씩이나마 커져가고 있는 걸까요? 이제 드디어 철이 들고 있는 건가요?”

 

사족

이번 작업에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고 함께 땀흘려주신 모든 분들께 이렇게 허락된 지면을 통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모두 모두 알라뷰! 그리고 고생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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