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의무는대단히 중요하다. 과거가 우리를 사로잡으며 그 상처로 우리를 한층 더 잔인하게 할퀴기 때문이며 불행하게도찢어서 없애버릴 수도 없는 페이지들은 가능한 빨리 넘겨버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인류의명예를 더럽힌 모든 비열한 행동과 생각에 대한 우리의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거부를 천명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미래에는 인간의 무의식 속에 여전히 깃들여 있을지 모르는 야비한 짐승에게 다시금 생명을 불어 넣으려는어떠한 시도도 저지하기 위해 기억은 소중하다.
과거의 망령을쫓아내고 현재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직접적인 손실과 피해자들이 입은 또는 가해자들에 의해서 강요된 것들이 갖는 지속적인 결과를 원한에 사로잡혀감정적으로 처리한다거나 지나친 단순화의 유혹에 빠지는 일 없이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희생자들을위해 묵상하고 그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 희생자 모두는 인간이 인간을 비인간화 하고 인간의 지성을말살시킴으로써 다른 인간을 물신화하려고 했던 일탈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중략)
과거에 자행된 불의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이와 더불어 강한 자들은 끝없이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약한자들은 끝없이 점점 더 불행해지는 관계 체제가 낳은 애곡과 불균형에수정을 가해야 한다.
– 200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세계 반 인종차별주의 회의’에서 Abdleaziz Boutteflika(압델 부테플리카), 알제리대통령 연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번 난민선 전복 사고에 대해 “이번 인명 피해가 사실로밝혀지면 지중해에서 벌어진 최악의 참사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열악한 환경에 떠밀려 해양무덤과도 다름없는 지중해를 건너려는 난민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사이 지난해만 약 3400여명의 난민이 익사했다. 지난 20일 유엔인권 최고 대표 자이드 (Zeid) 및 유엔 전문가들은유럽 연합에 이 이슈에 대한 대담한 조치와 정책실현을 요구했다. 또한 비정규 이민자들에 대한 한시적인억제와 같은 해결책보다 혁신적이고 사회적으로 유동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유럽국가들간의 동맹을 견고히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하였다. 인종차별, 인접 국가 주민에 대한 인도적인 책임들이 외면 되는 사이, 인권에 대한 의식 부재로 잃지 않아도 되었을 소중한 목숨들을 잃었다.

▲ 2008년 이탈리아 람페두사에 접근하고 있는 이민선 (출처: The Independent)
이처럼 최근들어 지중해에선 난민선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국제 사회가 집중하고 있는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선의이야기는 해양 인명 재난 사건 같아 보이지만 깊은 이면에는 침몰하는 인권에 대한 이야기이다. 난민자들의증언에 따르면 승객을 인종에 따라 갈라 아프리카인, 소말리아와 같은 최빈국 국적자는 갑판 아래, 중동국가 출신은 갑판 위에 태운다. 밀매업자들은 인간의 존엄을 자기들만의잣대로 피부색과 종교, 국적에 따라 나누었고, 갑판 아래승객은 햇빛은 물론 물도 마실 수 없으며 나올 경우 총살의 위협을 받았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의상당수는 아프리카 인이 중동 및 아시아 국적의 승객들에 비해 차별을 받으며 실제로 이번 리비아 침몰 시 생존한28명은 갑판 위에 있었다. 때문에 사망한 대다수가 아프리카 빈민 국 출신이었다.
1963년 제 18차 국제연합 총회 본회의에서 인종차별을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평화와 안전을 교란하는 것으로 규정, 인종차별을 목적으로 하는 그 모든 종류의 폭력을 비난함과 동시에 법률상의 적극적인 조치를 권고하는 내용인 ‘인종차별철폐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ion)''''이 채택된 바 있다. 국제협약과각 국가정책으로 인종차별을 금지함에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인종 차별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는 다문화가존재하는 비단 유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이미 한국 내에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은 높아졌고, 결혼 이민자들과 그로 인한 다문화 가정이 늘어났다. 피부색과 언어, 문화가 다른 이웃들은 우리 사회에 가까이에 자리 잡았다. 영어권흔히 말하는 백인권 국가에게 아시아인들의 인종차별 당하는 사례를 들을 수 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2015년 아시아, 대한민국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우리의 이웃을차별하고 있다. 2009년 국내에서 후세인 교수의 인종 차별 사례가 발생한 뒤로 6-7년 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지난 3월, 청담동 어학원에서는 강사 모집 공고 시 “백인만 지원해라” 라는 인종차별 공고를 내었고, ‘이웃집 찰스’라는 프로그램에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외국인이 하루동안 겪는 흑인 비하가 방송되기도 했다. 외국인 노동자 및 중국 국적 출신의 범죄자들의 단편만을 보고나라와 인종에 대한 편견도 갖기 십상이다. 이외에도 부끄러운 ‘인종차별’ 이라는 일은 한국사회에서 자주 벌어지며, 우리의 깊은 의식 속 외국인에대한 자신만의 편견이 생겨버렸다.


▲ '이웃집 찰스' 스크린 캡쳐.
피부색과 종교를 두고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
리비아의난민선, 그리고 타국에서 온 ‘이웃집 찰스’ 에게 가하는 모든 차별과 시선들의 해결책은 국제조약도 국내보호정책도 아닌 우리의 의식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절대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 인간은 없으며, 우리 모두 존엄하다는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에게 가치 혹은 ‘더’ 존귀함이라는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인종, 국가 별로 위계를 매기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조약과 법적 장치는 해결과 보상 혹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촉구할 뿐 사회 곳곳, 우리의 깊은 곳까지 미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리비아 난파선사건이나 우리 사회 모두 안전한 법제 장치가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편견들로부터 이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게 된다.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도 소중하다는 인권과 인간의 존엄에 깊은 공감과 이해를 필요로 하다. 지금도 우리 사회 어디선가 리비아의 난파선처럼 인종차별이라는 침몰하는 배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우리의이웃이 있을 수 있다. 미처 몰라서 혹은 너무나도 당연히 자리 잡고 있던 편견을 버리고 ‘나만큼 남도 가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사회 안의 배들이 난파 되기 전,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의식을깨워 보호하고 예방해야 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번 난민선 전복 사고에 대해 “이번 인명 피해가 사실로밝혀지면 지중해에서 벌어진 최악의 참사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열악한 환경에 떠밀려 해양무덤과도 다름없는 지중해를 건너려는 난민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사이 지난해만 약 3400여명의 난민이 익사했다. 지난 20일 유엔인권 최고 대표 자이드 (Zeid) 및 유엔 전문가들은유럽 연합에 이 이슈에 대한 대담한 조치와 정책실현을 요구했다. 또한 비정규 이민자들에 대한 한시적인억제와 같은 해결책보다 혁신적이고 사회적으로 유동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유럽국가들간의 동맹을 견고히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하였다. 인종차별, 인접 국가 주민에 대한 인도적인 책임들이 외면 되는 사이, 인권에 대한 의식 부재로 잃지 않아도 되었을 소중한 목숨들을 잃었다.
▲ 2008년 이탈리아 람페두사에 접근하고 있는 이민선 (출처: The Independent)
이처럼 최근들어 지중해에선 난민선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국제 사회가 집중하고 있는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선의이야기는 해양 인명 재난 사건 같아 보이지만 깊은 이면에는 침몰하는 인권에 대한 이야기이다. 난민자들의증언에 따르면 승객을 인종에 따라 갈라 아프리카인, 소말리아와 같은 최빈국 국적자는 갑판 아래, 중동국가 출신은 갑판 위에 태운다. 밀매업자들은 인간의 존엄을 자기들만의잣대로 피부색과 종교, 국적에 따라 나누었고, 갑판 아래승객은 햇빛은 물론 물도 마실 수 없으며 나올 경우 총살의 위협을 받았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의상당수는 아프리카 인이 중동 및 아시아 국적의 승객들에 비해 차별을 받으며 실제로 이번 리비아 침몰 시 생존한28명은 갑판 위에 있었다. 때문에 사망한 대다수가 아프리카 빈민 국 출신이었다.
1963년 제 18차 국제연합 총회 본회의에서 인종차별을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고 평화와 안전을 교란하는 것으로 규정, 인종차별을 목적으로 하는 그 모든 종류의 폭력을 비난함과 동시에 법률상의 적극적인 조치를 권고하는 내용인 ‘인종차별철폐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the Eliminationof All Forms of Racial Discrimination)''''이 채택된 바 있다. 국제협약과각 국가정책으로 인종차별을 금지함에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인종 차별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는 다문화가존재하는 비단 유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이미 한국 내에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은 높아졌고, 결혼 이민자들과 그로 인한 다문화 가정이 늘어났다. 피부색과 언어, 문화가 다른 이웃들은 우리 사회에 가까이에 자리 잡았다. 영어권흔히 말하는 백인권 국가에게 아시아인들의 인종차별 당하는 사례를 들을 수 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2015년 아시아, 대한민국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우리의 이웃을차별하고 있다. 2009년 국내에서 후세인 교수의 인종 차별 사례가 발생한 뒤로 6-7년 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지난 3월, 청담동 어학원에서는 강사 모집 공고 시 “백인만 지원해라” 라는 인종차별 공고를 내었고, ‘이웃집 찰스’라는 프로그램에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외국인이 하루동안 겪는 흑인 비하가 방송되기도 했다. 외국인 노동자 및 중국 국적 출신의 범죄자들의 단편만을 보고나라와 인종에 대한 편견도 갖기 십상이다. 이외에도 부끄러운 ‘인종차별’ 이라는 일은 한국사회에서 자주 벌어지며, 우리의 깊은 의식 속 외국인에대한 자신만의 편견이 생겨버렸다.
▲ '이웃집 찰스' 스크린 캡쳐.
피부색과 종교를 두고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치 않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
리비아의난민선, 그리고 타국에서 온 ‘이웃집 찰스’ 에게 가하는 모든 차별과 시선들의 해결책은 국제조약도 국내보호정책도 아닌 우리의 의식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절대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 인간은 없으며, 우리 모두 존엄하다는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가치를 매길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에게 가치 혹은 ‘더’ 존귀함이라는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인종, 국가 별로 위계를 매기는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조약과 법적 장치는 해결과 보상 혹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촉구할 뿐 사회 곳곳, 우리의 깊은 곳까지 미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리비아 난파선사건이나 우리 사회 모두 안전한 법제 장치가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편견들로부터 이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게 된다.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상대방도 소중하다는 인권과 인간의 존엄에 깊은 공감과 이해를 필요로 하다. 지금도 우리 사회 어디선가 리비아의 난파선처럼 인종차별이라는 침몰하는 배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우리의이웃이 있을 수 있다. 미처 몰라서 혹은 너무나도 당연히 자리 잡고 있던 편견을 버리고 ‘나만큼 남도 가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사회 안의 배들이 난파 되기 전,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의식을깨워 보호하고 예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