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경란 이사

2016-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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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9일, 올해부터 코쿤 이사진에 합류하게 된 문경란 신임이사님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문경란 이사님이 그 동안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는 많이 알려졌지만, 인터뷰를 통해 어떤 인권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인권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어떤 것을 느껴쓴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간단한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최근 활동부터 말씀드리자면, 작년 11월 말까지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어요. 2008년부터 2010년까지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을 했고, 그 전에는 중앙일보에서 여성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일 했어요. 기자를 할 때 젠더 문제를 평생의 숙제라고 생각하고 언론사 내에서 젠더 이슈를 계속 제기하고 보도했지요.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국가인권위로 옮겨가게 되었어요.  


서울시 인권위원회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서울시 인권위원회는 서울시의 인권정책과 인권행정에 대해 자문, 심의, 권고하는 기관입니다. 인권정책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 프로그램 등을 수립하는데 깊이 관여했지요. 행정에 인권을 접목하는 일은 생소해서 공무원들만으로는 하기 힘든 일입니다. 서울시가 인권정책에 시동을 거는 과정에서 서울시 인권위원회가 제법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다고 거버넌스 차원에서 자문만 한 것은 아니고요. 120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이 성희롱 등 감정노동을 심하게 하고 있어 이에 대한 종합대책을 권고하는 등 서울시가 인권적 측면에서 잘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정책권고도 했습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제정하는 과정에서는 다수의 인권위원들이 참여해 헌장 제정을 주도하기도 하고, 서울시 인권위원회 주최 인권포럼을 통해 인권의제를 발굴하고 시민사회 및 타 시도 인권위원회와 네트워킹도 했고요.   


이사가 되기 전에 코쿤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코쿤에 대한 인상이 어땠나요?

2007년에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제네바 유엔인권연수 인턴십을 통해 학생들에게 국제인권에 관해서 교육하는 단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좋은 활동을 하는 단체라고 생각했어요. 2008년부터 국가인권위에서 근무해보니 인권활동은 유엔의 인권메커니즘과 국제인권규범을 모르고는 할 수 없더라고요. 반면 국내에서는 국제인권분야가 상당히 취약하지요. 코쿤이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조금 더 국내단체들과 네트워킹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코쿤의 이사가 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혜수 대표님이 처음에 제안을 했어요. 정진성 대표님과 송호근 이사장님을 비롯 이사들께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과 인간적인 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국제인권규범과 관련해서 많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최근까지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하셨는데, 이후에 어떤 인권 활동을 더 하고 싶으셨나요? 

시민인권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이 최근 몇 년간 인권과 민주주의 측면에서 후퇴했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책임이 크고 역할도 중요하겠지요. 동시에 시민 스스로도 인권과 민주주의 의식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평생 시민교육이 필요합니다. 서구는 근대시민혁명 이후 오랜 역사를 통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습니다. 반면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식민지를 경험하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치열하게 겪지 못했지요. 그런 문제를 지금이라도 곱씹고 성찰하면서 시민 의식을 각성하고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계몽 차원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임파워먼트(empowerment)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지식인과 전문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민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고, 관련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 일부로 민주국가의 시민이면 당연히 알고 실천해야 하는 국제인권규범의 내용도 교육하고 싶고요.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이  나의 문제라는 것에 공감하고 어떻게 실천하고 국가에게 요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하는 것이 제 관심거리예요.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이후 인권단체 사이에서 이사님의 인지도나 평판이 좋습니다. 강단 있는 모습으로 인권활동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는데요, 처음 인권분야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1979년에 대학에 들어가서 서클 활동을 하는데 독재, 권위주의 체재에 대한 비판은 많이 하면서도 성평등 의식은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대학 내에서 반독재운동을 하는 선배나 동료도 젠더 관점이 없어서 많이 부딪혔죠. 젠더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면서부터였어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여성학을 공부한 것이에요. 처음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해방구를 찾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고 무엇을 하더라도 젠더 문제가 나의 과제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여성이 인구의 절반이지만 힘에 있어서는 소수자잖아요? 

예전에 기자로 활동했던 중앙일보는 메이저(major) 신문사지만, 그 안에서 저는 가장 마이너(minor)였어요. 일단 여기자는 숫자가 적고요, 젠더 문제 자체가 주요 뉴스거리가 되질 못했거니와 취재해도 보도가 잘 안 되었지요. 마이너리티(minority) 경험을 하면서 소수자를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 관점으로 세상을 보니까 여성 외 다른 소수자 문제도 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다른 인권의 문제에 접근하는데 용이했던 것 같아요. 

국가인권위에서 본격적으로 인권활동을 할 때도 마이너한 문제를 많이 다뤘어요. 스포츠 인권, 즉 운동선수들의 인권문제를 들여다보니 정말 문제가 많았어요. 또 미혼모 학습권 문제도 주요하게 다뤘고요. 한 여고생이 임신을 하여 퇴학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해당 학생에게 최소한 학습권을 보장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임신한 여성 중에서도 소녀, 미혼 여고생이니까 얼마나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겠어요? 금기의 벽을 하나씩 넘어가면서 학습권 보장이라는 제도를 만들어냈어요. 


미혼모 학습권 보장을 제도화 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나요?

국가인권위가 당시에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는 경우가 제법 있었어요. 권고 당시 칭찬 받은 적은 크레파스 색 이름을 바꾼 것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까요. 국가인권위라는 곳이 현재의 인권감수성보다 조금 앞서가야 하다보니 결정을 내놓으면 비난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 경험으로 보면 2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권고대로 세상이 따라가더라고요.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여고생의 임신은 문화적 충격이 컸죠. 국가인권위가 임신한 학생이라도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게 하라고 권고 하면 자유로운 성관계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것이 예상됐지요. 저는 우리 사회에서 고등학교교육을 받을 권리는 기본적 권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국가인권위가 권고를 한다해도 강제력이 없어, 학교 측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 뻔했어요. 그래서 제가 학교를 찾아가겠다고 했지요. 그 때까지만 해도 권고를 하기 전에 상임위원이 당사자를 만나는 일은 없었어요. 보통 조사관이 가죠. 강지원 변호사, 애란원 한상순 원장하고 같이 학교로 찾아가 2시간 반 동안 설득을 했어요. 어떤 선생님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고 난리가 났어요. 국가인권위가 임신을 부추기는 것이냐고, 다른 여고생들도 임신하라는 소리냐고. 인권침해를 당한 것은 임신한 학생이 아닌 다른 아이들이라고 했어요. 선생님들이 다른 학생들 입시 교육을 해야 하는데 임신한 아이 때문에 교육에 신경을 못 썼다고까지 했어요. 설득하고 달래기를 반복했고 겨우 대안학교로 보내는 방법을 마련해서, 대안학교를 물색해서 학생을 받아달라고 교섭했죠. 그래도 나중에 학교 측에서 말을 바꿔 찬반투표를 해서 압도적으로 그 여학생이 학교를 다니게 하면 안 된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요. 


누가 투표를 했나요?

선생님들,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가 투표를 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교육감도 만나고 교육청을 설득해 결국 학교가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이게 되었죠. 그 학생은 열심히 공부해서 4년 장학금을 받고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고요. 


힘은 들었지만 결과가 좋았네요.

개별사안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제도화를 해야 했기 때문에 교육청, 교육부, 국회 등 정책 결정권을 가진 담당자들과 여러차례 정책협의회도 가졌어요. 긴 설득과 토론의 과정을 거쳐 교육부와 교육청,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등에 권고도 했어요.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결국 권고가 받아들여져서 지금은 미혼시설 안에 대안학교가 마련되었어요. 그 안에서 학생들이 개별학습 수준의 수업을 받고 있고요. 이전에는 당연히 학교에서 쫓아냈다면, 지금은 어떤 식으로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여전히 쫓아내는 학교는 있지만 예전처럼 함부로 할 수는 없고요. 

권고와 함께 실제로 현장을 바꾸는 행동이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인권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어렵지만, 차분하게 설득하고 어떤 논리를 펼칠지 잘 고민하면 안 되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반인권적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조금씩이라도 생각을 바꿔놓는 것이 중요하죠. 


현장도 자주 방문하셨나요?

저는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시 인권위원장 시절, 120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하라는 권고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성희롱예방대책 만으로 상담사들의 감정노동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고용형태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론만으로는 확신이 안 서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현장을 찾아 하루종일 상담사들의 일하는 근로환경과 문제들을 꼼꼼히 관찰하고 파악했지요. 그때서야 서울시가 직접고용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심이 서더라고요.

어려운 권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을 방문했던 덕분이에요. 그 때 만났던 상담사들과는 카톡도 보내고 고민도 나누면서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요. 인권위원장 그만둘 때 상담사들이 감사패도 줬어요. 코쿤 활동가들도 현장에 많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첫째는 현장, 두 번째는 이론이에요. 우선 현장을 가면 힘이 생기고, 공부를 하면 활동을 지탱해줄 수 있는 철학과 비전이 생겨요. 현장과 이론이 있어야 활동이 지속될 수 있어요. 


코쿤에게 기대하는 것이나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첫째, 코쿤의 활동을 더 열심히 알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코쿤 활동이 일반 시민 운동보다는 전문가나 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보다 전문적인 내용을 시민사회에 제공하고 주도하는 것이 단체의 성격 상 맞을 것 같아요. 국제인권규범이나 유엔에서의 인권의제를 한국사회에 어떻게 더 잘 알릴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야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혐오표현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준비하면서 국제인권규범과 유럽인권재판소의 사례를 검토했어요. 그럴 때 국제인권규범 관련 사항이 나오면 코쿤에 가서 물어보면 된다는 말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이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활동을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진되지 않고, 전문성을 축적하고 발전하면서 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단체가 고민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활동이 지속되기 힘들어요. 코쿤에 공부모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유가 있으면 같이 공부해도 좋을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꼭 같이 하면 좋겠네요. 좋은 말씀 많이 나눠주시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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