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단상, '보편적인 고백'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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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CUN 유엔인권연수 참가자

아무


5월 17일 새벽, 한 사람이 죽었다. 내가 누군가의 죽음보다 먼저 접한 것은, 자신의 삶이 그이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는 글들이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고백은 SNS에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그리고 서울을 넘어서 이어졌다. 너와 나는 다르지만 같은 삶을 살았다는 수많은 고백의 중첩은, 손쉽게 범죄의 대상이 되는 여성으로서의 삶이 우연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일면임을 의미한다. 나는 오늘 그 보편적인 고백, 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대학이 들어가면서, 이전과는 달리 성적 경험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대학에서의 무수히 만났다 무수히 깨진 연인들은 성별 간 다르게 소비되고, 연애를 하고 싶을 때의 나는 괜스레 치마를 입고 조신해졌고, 술자리에서 내가 남자선배처럼 분위기를 주도하는 일은 어색하며, 새내기 앞에서 여성인 선배가 포르노 이야기를 하는 것이 대단히 용기 있는 일이 되는 것을 보았다. 만약 인간이 성적 존재이고, 성은 사랑과 쾌락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확장되기보다는 고정되어 갔다.

특정한 성별 정체성에 특정한 틀을 부여하며, 특히 여성에게는 보다 부정적인 속성을 입히기에 한국 사회의 많은 담론들은 성역할을 여성혐오(misogyny)의 단면으로 분석한다. 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단적으로 말하건대 이런 것이다. 혐오라는 사회적 감정을 통해 개념 범주가 정해지는 삶. 매일 밤 그 틀에 맞추어 자기혐오를 반복하도록 하는 삶. 가족의 유지를 위해 노력해온 엄마의 삶을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부정하고, 커리어를 착실히 쌓으며 자신의 목표를 멋지게 해내는 언니의 삶을 김치녀로 배제하고, 성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탓을 자기에게 돌리는 분열적인 삶.


여성혐오는 그 자체로도 성차별적이며 타파해야할 사회문화이지만 그 정치적 영향을 마주하면 더욱 심란해진다.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이 모 언론사 칼럼에서 지적했듯 “성역할, 이성애, 결혼제도, 성/인신매매, 성폭력, 살인”은 연속선에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혐오는 흔히 표현의 자유로 옹호되는, 개인적 차원의 감정 상태로 끝나지 않고 무수한 강남역 사건을 양산해낸다. 여성혐오를 비롯한 혐오범죄를 볼 때, 사회의 불균등한 권력 구도와 그 구도가 각각 무엇에 근거하여 구성되어 있는지 직시해야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자기고백적인 추모의 열기가 점차 사회적 현상이 되어가면서 누군가의 삶을 자극하는지 “(강남역 여성살해범죄는) 여성혐오까지는 아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범죄”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는 여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반응과 다르지 않다. 원인인 젠더 불평등을 똑바로 마주하지 않고, 여성폭력의 심각성을 희미하게 한다. 유사하게는 “그것은 성폭력까지는 아니고 성희롱이었다.”고 변용될 수 있는데, 이 또한 언어성폭력 사건, 성기 결합이 없는 신체적 성폭력 사건에서 쉬이 발견되는 태도이다. 단어를 바꿔 씀으로써 폭력 사실을 축소하면서 피해자의 경험을 부정한다. 발화자는 여성으로서의 폭력을 겪지 않아도 되는 비당사자이기에 언어 선택만으로 현실을 회피할 수 있다. 말이 지나고 나면, 당사자만 남는다. ‘내가 겪은 것이 그렇게까지는 큰 아픔은 아닌가보다’는 말은 어떤 위안도 주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 때 겪는 것보다 피하기가 더 힘든, 폭력을 경험하는 일은 피해자/생존자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인식 뿐 아니라 사회시스템 때문에 더욱 가혹해진다. 한계와 문제가 많다고 꾸준히 지적되고 있는 현행법상에서도 사법 처리되는 성폭력 사건의 재범률은 2014년 기준 7%나 될 정도다. 그러나 한국 현행법에서의 성폭력은 ''피해자가 누구나 인정할 만한 저항을 열심히 했고'' ''객관적으로 보기에 심각한 물리적 침해를 입혔으며'' ''사건의 맥락이 사회적으로 성폭력이 되기에 온당할'' 때나 성폭력 사건으로 인정된다. 낮은 기소율이 의아하지 않을 정도다. 

이토록 여성폭력과 혐오로부터 사회구성원을 보호할 안전망이 부재하는 곳에서 이번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을 정신질환의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은 낯설지 않다.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가해자는 일탈적인 ‘비정상인’, 우리 사회의 적절하지 못한 구성원 취급을 받는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겪은 일들은 그저 우연한, 운이 나빴을 뿐인 해프닝이 된다. 그래서 논의되는 것은 비도덕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를 한 가해자의 처벌, 교육, 사회와의 격리, 재사회화 등뿐이다. 여기서 생략되는 것은 피해자와 그/녀의 생존과,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시민 일원으로서의 역할이다. 상담 기간마저 끝나고 일상으로 회복하는 것이 온전히 피해자 혼자의 몫일 때, 직·간접적 가해로부터 자유로운 반성폭력 공동체를 기획하여 그/녀의 생존을 우리 모두의 몫으로 함께하는 것.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나는 잠재적 가해자입니다.”라는 구호는 그렇기에 반갑다. 내가 단지 여성당사자이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만연하는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을 고민하고 싶지는 않다. 인종차별을 ‘흑인’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듯, 성차별이 여성만의 문제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어떤 일이 내게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무 일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지낸 무지가 부끄럽다. 그리하여 그 수많은 가해자들을 공동체로 수용해내고 재생산했을 폭력성이 죄송스럽다. 결국에 생존하고, 또 다른 피해자 없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홀로 견디지 않을 수도 있었을 순간들에 진심으로 미안함과 존경을 보내고 싶다. 여성인권을 보편적 인권의 문제, 인간존엄의 문제로써 우리 모두가 필사적으로 사유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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