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억의 의미, 세계여성폭력추방 주간을 맞으며

2016-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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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의미, 세계여성폭력추방 주간을 맞으며


                                                                                                                              유현


전화 너머로 친구의 숨소리가 살짝 불규칙해지기 시작했다. 구두소리는다급했다. 전화 멀리서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낮게 웅웅거렸지만, 친구는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오히려 담담하게 말했다.


“왜 그런 걸 저한테 물어보세요? 제가 대답 안해도 될 것 같네요.


그 남성은 자신의 손보다 큰 돌덩이를 들고, 박근혜에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가씨가 대답하라고 했다고 한다. 12 4일 밤, 그러니까세계여성폭력 추방 주간 중 일어난 어느 일상의 모습이다.

 

지난 11 25일은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이었다. 1981년 남미의 운동가들이 제정한 이 날은, 1961년 도미니카공화국의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살해당한 ‘미라벨’ 세 자매를 추모하기 위해서다. 1999년 유엔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이 날을 ‘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로 제정하고, 12 10일 세계인권선언일까지 여성폭력 추방 주간으로 정해서 세계각국에서 여성폭력 실태를 알리고 근절을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기간으로서 이 주간을 기억한다고 한다.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도대체기억한다는 것은 작금의 한국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가. 어떤 날, 사람들, 사건을 계속해서 기억하려는 행위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혐오와 차별, 살해의 희생자를 기리며, 다시는 똑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모두 일상적으로 애쓰자는 것일 게다. 그러기에 기억을 한다는 것은, 모든이들의 일상을 이전과는 다른 일상으로 만들고자는 적극적인 노력의 행위다.



 

여성 폭력과 살해에 관한 담화들은 작년부터 유난히 많이 이슈가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슈는 이제 수면 위로 막 나온 것일 뿐, 사실 여성들이늘 겪어왔던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메갈리안의 등장부터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문화예술계 내 성추행, 교내 성희롱과 성폭력 사건, 낙태죄 폐지 운동 그리고 박근혜와 연결된 여성 혐오발언까지, ‘혐오-폭력과 차별-살해’로 이어지는 구도는 ‘타인의 특별한 이슈가 아니다. ‘우리의 일상’인 것이다. 그러기에 여성학자 정희진은 여성 혐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바로‘지금 우리가 있는 여기’ 자체가 문제라 했다. 일상이 문제라는 뜻이다.

 

이 일상을 바꾸는 노력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최근 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정부의 무능과 부패와 관련한 일련의 사태들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그 어떤 언어나 행동으로도 제대로 분출되지 않는 분노의 여러 모습들은, 이정권과 더불어 권력을 쥔 이들에게 마땅히 향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분노가 여성, 장애인, 노인, 이주민, 성소수자, 어린이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빗대어 표현 되었을 때시작된다. 분노의 표현은 종종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향한 혐오의 발언으로 시작되기 일쑤다. 그러기에 박근혜와 최순실을 향한 분노가 여성과 장애인 혐오발언으로 치환되는 것도, 여성과 장애인을 타자화 시키고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나와 타인을 분리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권을 말하는 시위 현장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성차별발언이나 성추행의 형태로 여성 혐오의 일상들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집회에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자 여성들은거리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안전하게 있으라는 말까지 나왔다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레파토리 아닌가



 

2012년도 유엔 여성폭력 특별보고관의 연례 보고서의 주제는 여성에대한 젠더 살해였다. 보고서가 나온 지 4년 후인 지난 32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여성폭력특별보고관은 여성에 대한 살해를 감시하는 기구인 페미사이드 와치(femicide watch)를 설립할 것을 요청하고, 여성 살해를예방하는 차원에서 희생자의 나이, 민족, 가해자의 성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등을 세부적으로 분류한 통계 수치를 발간하여 가해자 기소와 처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것을 유엔인권이사회 회원국들에게 요청했다. 2년 후인 2018, 여성폭력 특별보고관은 한국을 심의할 예정이다. 과연 그 때 경험하게될 한국 사회는 어떠한 일상의 변화를 일구고 있을 것이며, 시민들이 그날까지 화병나지 않고 꺼지지 않을횃불로 마주할 정부의 얼굴 또한 어떠할 것인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 곳, 일상을전환하는 노력이다. 시선, 행동, 언어, 생각까지 모두 되짚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일상을 새로빚는 예민한 애씀말이다. 세계여성폭력추방의 기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이기간을 평생 기억하고 추모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소리가 파도가 되어 조금씩더 크게 일렁이는 지금, 언젠가는 우리의 일상이 누구에게나 밤 골목도 안전한, 돌을 든 남성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평범한 날들로 기억되길 간절히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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