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의 인권]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관람 후기

201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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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또 하나의 약속' 관람 후기

- 고예린(KOCUN 인턴활동가)


  얼마 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뜨겁게 달군 영화가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투자, 제작두레로 만들어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었다. 제작두레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시사회에 다녀온 사람들이 앞다투어 페이스북에 ‘엄청 많이 울었다’며 꼭 보아야 하는 영화라는 평을 남겼고,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 그리고 역시나, 많이 울었다.

  실제로 삼성 반도체공장을 다니다 백혈병을 얻어 숨진 고 황유미씨의 이야기를 담아낸 ‘또 하나의 약속’은, 그러나 단순히 감동적인 영화에서 끝나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또 하나의 약속’은 불편한 영화이기도 하다. 내가 지금 당장 쓰고 있는 갤럭시 휴대폰과 삼성 전자제품들이 그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을 맞바꾸며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의 편리함이 비상식적인 노동환경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 삼성이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브랜드의 그림자가 생각보다 어두우며, 지금까지 그것을 모르고 지내왔다는 사실이 눈앞에 드러났기 때문에 더욱 슬펐던 것은 아닐까, 하고 영화관을 나서며 생각했다.

 

‘진성’뿐만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

 

  하지만 감독이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 폭로 영화’가 아니다. 감독은 이 영화가 사회 시스템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을 덧붙였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단순히 삼성이라는 기업 혼자 ‘나쁜 놈’이어서가 아니라 근로복지공단과 함께 얽혀 있는 구조 자체의 문제이듯이.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노동환경으로 인해 병을 얻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입증책임’이 노동자에게 있고, 사업장 측에는 ‘영업비밀’이라며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렇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입증을 하라는 모순적인 공단의 요구와 함께, 근로복지공단뿐만 아니라 기업, 정부, 언론, 법조계 등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사회가 반도체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거절하는 모습을 ‘또 하나의 약속’은 담담하게, 그러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이런 구조에 속해 있는 모두의 노동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는 않아도 우리는 대부분 노동자이거나, 혹은 앞으로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일하고 있는 작업장의 노동환경에 대해 알 권리,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동할 권리, 노동을 통해 내 삶을 만들어갈 권리는 모두에게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이다. 하지만 노동환경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거나,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더라도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를 모른다거나, 일을 하다가 다쳐도 ‘내 잘못’으로 돌리는 일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반드시 지켜져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쉽게 노동권이 무시되는 현실은, 단순히 영화 속의 ‘한윤미’와 ‘진성’뿐만 아니라 노동자인 나, 혹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또 하나의 약속’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까지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지난 주말 기준으로 44만명을 넘어섰고, 상징적인 의미에서 100만명을 목표로 장기상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께서 활동가들과 함께 만드신 단체인 ‘반도체노동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은 지금도 산재 인정을 위해 싸우고 있다. 올 3월 6일,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 고 황유미씨의 기일에 맞추어 삼성 반도체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도 개봉한다. 삼성과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 ‘사람냄새’와 ‘먼지 없는 방’ 역시 근처 도서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한 걸음만 더 나아간다면, 더 많은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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