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당신이 베트남에서 태어났다면" - 2024 KOICA NGO 봉사단원 활동 이야기

202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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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국제결혼하러 온 베트남 여자들 이혼율이 그렇게 높다던대? 베트남에 있는 남자 초대해서 같이 한국에서 산다더라.’ 베트남에 귀환여성과 한베자녀를 위한 봉사를 하러 간다고 얘기했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한창 언론에서 도망간 베트남 여성들을 조명하고 있을 때였다. 무시할 수 없는 속성 국제결혼의 민낯이었고,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베트남 여성들을 손쉽게 비난했다. 나는 그건 일부 사례에 불과하며, 그 사실이 매매혼을 자행한 한국 남성이 저지른 인권 침해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즉시 반박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나 역시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에 자신이 없었고,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혼란한 마음으로 베트남에 왔다.

 

한국인이 베트남에 처음 와서 가장 크게 변화를 체감하는 것은 단연 물가 차이다. 한국에서의 빠듯한 생활비에서 벗어나 펑펑 돈을 쓰는 재미에 베트남 여행을 택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메뉴판 안 보고 음식을 시키고, 다리 아프면 하루에도 몇 번씩 카페에 들어가고, 대중교통 대신 택시를 즐겨 타고, 마사지와 쇼핑도 신나게 한다. 다만 이 기분은 여행자일 때만 유효하다. 생활자로서 이곳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점차 씁쓸해진다. 같은 내용물의 쌀국수를 먹어도, 서울과 껀터에서 내는 음식값은 10배 차이까지 난다. 이 물가는 그 나라의 소득과 소비 수준을 정확히 반영한다. 그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최초의 격차 앞에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긴다. 대체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나.

 

먹는 것에 익숙해지면 다른 것들이 점차 눈에 들어온다. 어느 날은 백신 접종을 위해 채혈을 하는데, 의사가 별다른 소독 절차 없이 바늘을 혈관에 꽂았다. 병원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위생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셈이었다. 또 다른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장사하고 있는 엄마 옆에서 하루 종일 핸드폰을 보며 누워 있는 아이를 보았다. 그는 최소한의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어른이 될 수도 있다. 도로에는 갓난 아이를 품에 안고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뒤에 탄 아이들은 헬멧도 쓰지 않은 채 위태롭게 중심을 잡고 있다. 바닥에는 내장이 터진 쥐가 죽어 있다. 명을 다한 후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죽어서 아스팔트에 납작하게 새겨진다. 집 앞 신호등은 이제 막 생겼고, 인도는 아직이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렇다고 이 차이가 어떤 합리적인 이유 때문에 벌어진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차원에서야 그 원인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결국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는가에 따라 삶이 결정된다. 내가 베트남에 태어났다면 능력과 상관없이 한참 낮은 임금을 받았을 것이다. 그중에서 더 운이 나쁘다면 도로에서 사고를 당하고 치료 받지 못하거나, 대학에 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잘 알지 못하는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고려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태어난 사람들은 결혼을 할지 말지 고민하지, 속성 국제결혼을 할지 말지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업체를 통해 만난 외국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한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다. 다시 그런 얘기를 듣는다면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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