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Life
...........................................네가 사는 그 집
내가 사는 껀터에 있는 유일한 아파트, Tay Nguyen plaza. 베트남 소도시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18층짜리 고층 아파트인 데다가 외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다고. 그러면 말해 뭐해! 바로 계약이지. 첫 독립에 부푼 26살짜리 김지원 단원은 제법 멋진 외관과 넓은 집 내부에 홀딱 반해 덜컥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 집은 나에게 제법 큰 시련들을 안겨주게 되는데···
우당탕 와장창 쨍그랑 콸콸
삑- 이 소리는 평화로운 우리 집 안방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모처럼 친구랑 저녁 약속이 있어서 거울 앞에 앉아 열심히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요란한 소리가 화장실 너머에서 들려왔다. 놀란 마음에 가슴을 부여잡고 달려가 보니 내가 마주한 광경은 바로 이것!
화장실 위쪽에 붙어있던 보일러 기계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변기를 깨트리고 갈 곳을 잃은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콸콸콸 멈추지 않고 나오고 있었다. 친구는 1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물은 계속 나와서 혼란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저 변기에 앉아있었다면 정말 아찔했겠다 싶은 생각이 머리를 마구 스쳐 지나갔다. 급하게 부동산 직원에게 S.O.S를 요청했지만, 변기 수리만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아담한 부엌 또한 나에게 큰 시련을 여러 번 안겨줬었다. 자꾸만 고장 나는 냉장고 때문에 장본 식재료는 모두 상하기 일쑤, 출처도 모르겠는 쌀벌레까지 갑자기 나타나 부엌 전체를 장악했었다.
이것 말고도 창문 손잡이가 고장 나서 툭하면 창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세탁기 수도관에서는 정체 모를 벌레 소음이 1시간 넘게 지속되고···사실 열거하면 끝도 없을 것 같으니 여기서 그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무엇? 바로 내가 이 문제들을 잘 해결했다는 것! 사실상 나이만 먹었지 26년 가까이 부모님의 그늘 아래 편하게 살아왔기에 이런 시련이 더욱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첫 독립, 그것도 낯선 외국에서의 첫 독립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키워냈다.
말은 안 통해도 일단 부동산 직원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벌레를 극도로 싫어하던 내가 용기를 내 정리를 싹 해서 벌레를 퇴치하고 강하디강한 집착과 요구를 통해 결국 집주인으로부터 새 냉장고도 얻어내고! 내가 이렇게나 살림력과 용기가 강한 줄 처음 알았다. 사실 한국에서 쭉 살았다면,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 당연히 더 편하니 그 그늘에서만 안주했을 텐데 이렇게 해외에 혼자 나와서 살아보니 제대로 먹고는 살아야겠다 싶어서 생애 처음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집 청소도 하게 되네.
이제는 어느 곳보다 제일 편한 나의 공간이 된 우리 집, My sweet home! 오랫동안 비어 있어서 집 구실 못하던 공간을 나 혼자서 하나하나 고쳐나가며 따뜻한 쉼의 공간으로 만든 나에게 마구 칭찬을 해주고 싶다!
.................................................................5kg
베트남이 나에게 선물해준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바로 나의 살 5kg. 한국에서 소식가로 유명하던 내가 갑자기 5kg 나 찌다니요! 그건 전부 베트남 음식이 너무 맛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음식이라고는 쌀국수와 반쎄오가 전부인 줄 알았던 나, 세상에나 이렇게나 다양하고 맛있는 베트남 음식이 있다니!
베트남 사람들의 소울 푸드, Lầu
한국인들에게 후식이 볶음밥이라면, 베트남인들에게 후식은 바로 이 Lầu! 배가 부르더라도 이 러우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시큼한 국물이 베이스로 깔리고, 다양한 각종 채소와 메인 재료까지! 메인 재료는 돼지고기, 소고기, 해산물, 자라, 닭 등등 매우 다양하다. 처음에는 시큼한 맛과 향이 강한 채소 때문에 먹기 어려워했는데 이제 밥 다 먹고 이것 안 먹으면 너무 허전할 정도다.
우리 센터 근처 맛집 대표 메뉴, Bún riêu
토마토가 핵심인 매운 국수다. 안에는 뼈다귀뿐만 아니라 어묵, 소시지도 들어가 있다. 여기에 고추와 느억맘소스, 바나나잎과 숙주까지 넣으면 일품이다.
엄마가 해주는 밥반찬, 마른 생선
얼마 전, 우리 센터 자원봉사자 고향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님께서 내어주신 반찬인데 처음에는 우리나라 멸치랑 비슷한가? 싶었는데 그보단 크기가 훨씬 크고 모양도 다르다. 한 입 베어 물어보니 짭짤하고 부드러운 것이 흰 쌀밥과 김치를 절로 찾게 된다. 이곳에 살면서 식당 음식뿐만 아니라 현지인 집에서 반찬까지 얻어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운이던지!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를 위로해준 이곳의 음식들! 여기선 반쎄오 천원인데 한국 가서 만오천 원 주고 어떻게 사 먹지···
2. Growth
................................오늘의 MC는
때는 바야흐로 2017년 여름, 우즈베키스탄. 새내기 김지원은 생애 처음으로 단기 해외 봉사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있었는데···갑자기 단원 20명을 대상으로 게임을 진행하라는 선배의 당황스러운 지시. 어벙벙하고 소심하게 중얼거리다가 보다 못한 선배의 도움으로 게임을 얼레벌레 마쳐버렸다. 이 때 이후 잔뜩 소심해져서 나는 발표나 MC랑은 안맞나봐···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 2022년 베트남 껀터. 오늘 그리고 어제 그리고 내일의 MC는 바로 김지원! 의기소침하던 5년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쩌렁쩌렁 큰 목소리로 많은 사람 앞에서 여러 행사를 잘도 진행해낸다. 사실 베트남에 도착한 후 초반에는 행사 진행이 조금 부끄럽고 떨리기는 했다. 하지만, 수많은 연습과 경험은 결국 좋은 거름이 되어주었다. 행사가 많은 파견 기관의 특성상 대중 앞에서 말을 하는 기회가 많이 있었고, 이 덕분에 이전에 가지든 두려움을 조금씩 떨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베트남에서의 단원 활동이 나의 두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도움을 주었달까.
기관 자원봉사자 행사 진행 당시
단원 프로젝트 환경교육 진행 당시
.................................Cô 지원
선생님 칭찬 덕분에 열심히 해낼 수 있었고, 선생님 공감 덕분에 저는 더 자신감이 생겼고, 선생님의 사랑 덕분에 많이 행복해졌어요. 저도 커서 선생님처럼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마음이 예쁘고 착한 사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_ 우리 반 학생이 써준 편지 내용 中
전공이 아동심리학인 덕에 지난 4년간 매일같이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어린이집으로 봉사와 실습을 나갔을 때도, 보육원과 초등학교로 봉사를 갔을 때도, 영유아 과외를 할 때도. 그런데 그때는 ‘선생님’이 주는 무게가 이리 큰 줄은 모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 기관 한글 교실에 오는 한-베 자녀들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에 더하여 선생님과 나와 정체성이 같은 친구들과 소중한 마음을 나누러 온다. 태어나기는 분명히 한국인으로 태어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베트남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
저는요. 학교도 못가서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심심한데, 센터에 오면 기분이 좋아져요. 베트남에서 사는 것의 유일한 장점은 센터가 있다는 거예요.
_상담 내용 中
이곳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류 문제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 아이들에게 센터는 학교고 한글 강사는 담임 선생님이고 같은 반 학생들은 우리 반 급우이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어깨는 더욱더 무거워진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누구랑 사는지 요즘 고민은 없는지 등등 고민 상담가가 되어주기도 한다.
언어가 가진 힘이 있다. 그 힘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는 다르다. 이곳 껀터에서 마주한 아이들의 ‘선생님 Cô’이 되면서 나는 이제 이 힘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이 책임감과 사랑의 무게를 잊지 말고 더 멋지고 도움이 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종강식 서프라이즈 파티
헤어지던 날 아이들에게 준 선물
센터 아동의 선물
3. Relationship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베트남 생활이 힘들 때마다 나에게 힘이 되어준 존재들이 있다. 맛있는 음식과 예쁜 아이들도 큰 힘이 되어주었지만, 또 다른 힘은 바로 현지 친구들이다.
현지 친구들과 떠난 달랏 여행
외로움을 유독 많이 타는지라 파견 초반에는 주말마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우울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2년 전 껀터대학교와 교류 활동을 했던 한 친구가 내가 껀터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나에게 껀터 대학생 친구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인연! 친구들을 처음 만나 왜 베트남에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각자 소개를 시작으로 만나면 만날수록 집과 꿈 등 진지한 이야기도 시작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 덕분에 아! 내가 알던 베트남은 정말 전부가 아니구나! 를 느낄 수 있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미디어로만 베트남을 접했기에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는 했는데 와보니 그냥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더라. 부모님 때문에 전공 선택했는데 안 맞아서 전과할까 고민하고, 엄마가 부동산 투자한대서 돈 빌려줬는데 날려 먹고, 감성 카페 찾아서 열심히 카메라 셔터 누르고. 정말 그냥 내 친구들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 와중에 몇몇 내 한국인 친구들은 “베트남에 카페가 있어? 베트남 애들은 ___ 하지 않나?”라면서 지극히 차별적이고 무지한 질문들을 나에게 던지고는 했다. 그 와중에 하나하나 다 해명하는 내 자신이 웃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파견 전 교육에서 봉사단원인 우리가 ‘민간 외교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맞네, 내가 지금 민간 외교관으로서 각국을 연결해주고 있는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들이 무지한 질문을 한다고 해서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정말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은 서로 공유하고 알게 되는 것이 ‘지구는 둥글고, 우리는 하나’라는 국제 교류의 시작이 아닐까?
정말 정들었던 현지 친구들과 송별회를 몇 차례 하다 보니 말 그대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한국-베트남 비행깃값이 비쌀 뿐만 아니라 베트남 사람이 외국 여행 비자를 받는 것이 정말 어렵고 복잡하기에 다음 만남을 마냥 기약하는 것만이 어려웠던 것도 슬펐던 이유이다.
그래도 내 친구들은 나를 달래주며 “꼭 다시 만나자,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한국에 놀러 갈게. 꼭 너 결혼식에 초대해줘야 해.”해주고는 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참고 한 명씩 포옹하며 “응 꼭 놀러 와. 그때는 네가 나에게 해준 그것만큼 아니 그 이상 더 잘해줄게. 그리고 곧 다시 베트남에 놀러 올게.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라며 답하였다.
2022년 한 해 동안 외로운 외국인에게 한없이 잘해주고 무한한 인정과 사랑을 준 내 친구들을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정말 진심으로 꼭 다시 만나서 “그동안 잘 지냈어? 그때 나를 도와주고 소중한 추억을 많이 선물해줘서 고마워”하며 반가움의 포옹을 하고 싶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고 건강 잘 지켜야지.
센터 자원봉사자 선생님들과 떠난 안장 여행
든든한 친구가 되어준 센터 자원봉사자들
4. 마치며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 다시 만나자는 약속, 과거 두려움을 극복하는 계기, 혼자서도 잘 살아남는 적응력 그리고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얻게 해준 베트남 껀터에서의 생활이 진심으로 감사하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지나갈 것 같지 않던 시간은 어느 순간 눈 감았다가 뜨면 지나가 있고, 나는 성장해있다. 비록 이 과정에서 성장통이 있었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내가 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이 교훈을 꼭 간직해서 한국에 돌아가서도 열심히 살아보자. 이젠 ‘나의 집’이 되어버린 이곳을 떠나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야 다시 돌아올 마음이 생기는 법이니까.
1. Life
...........................................네가 사는 그 집
내가 사는 껀터에 있는 유일한 아파트, Tay Nguyen plaza. 베트남 소도시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18층짜리 고층 아파트인 데다가 외국인들도 많이 살고 있다고. 그러면 말해 뭐해! 바로 계약이지. 첫 독립에 부푼 26살짜리 김지원 단원은 제법 멋진 외관과 넓은 집 내부에 홀딱 반해 덜컥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 집은 나에게 제법 큰 시련들을 안겨주게 되는데···
우당탕 와장창 쨍그랑 콸콸
삑- 이 소리는 평화로운 우리 집 안방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모처럼 친구랑 저녁 약속이 있어서 거울 앞에 앉아 열심히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요란한 소리가 화장실 너머에서 들려왔다. 놀란 마음에 가슴을 부여잡고 달려가 보니 내가 마주한 광경은 바로 이것!
화장실 위쪽에 붙어있던 보일러 기계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변기를 깨트리고 갈 곳을 잃은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콸콸콸 멈추지 않고 나오고 있었다. 친구는 1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물은 계속 나와서 혼란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저 변기에 앉아있었다면 정말 아찔했겠다 싶은 생각이 머리를 마구 스쳐 지나갔다. 급하게 부동산 직원에게 S.O.S를 요청했지만, 변기 수리만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아담한 부엌 또한 나에게 큰 시련을 여러 번 안겨줬었다. 자꾸만 고장 나는 냉장고 때문에 장본 식재료는 모두 상하기 일쑤, 출처도 모르겠는 쌀벌레까지 갑자기 나타나 부엌 전체를 장악했었다.
이것 말고도 창문 손잡이가 고장 나서 툭하면 창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세탁기 수도관에서는 정체 모를 벌레 소음이 1시간 넘게 지속되고···사실 열거하면 끝도 없을 것 같으니 여기서 그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무엇? 바로 내가 이 문제들을 잘 해결했다는 것! 사실상 나이만 먹었지 26년 가까이 부모님의 그늘 아래 편하게 살아왔기에 이런 시련이 더욱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첫 독립, 그것도 낯선 외국에서의 첫 독립은 나를 더욱더 강하게 키워냈다.
말은 안 통해도 일단 부동산 직원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고, 벌레를 극도로 싫어하던 내가 용기를 내 정리를 싹 해서 벌레를 퇴치하고 강하디강한 집착과 요구를 통해 결국 집주인으로부터 새 냉장고도 얻어내고! 내가 이렇게나 살림력과 용기가 강한 줄 처음 알았다. 사실 한국에서 쭉 살았다면,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것이 당연히 더 편하니 그 그늘에서만 안주했을 텐데 이렇게 해외에 혼자 나와서 살아보니 제대로 먹고는 살아야겠다 싶어서 생애 처음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고, 집 청소도 하게 되네.
이제는 어느 곳보다 제일 편한 나의 공간이 된 우리 집, My sweet home! 오랫동안 비어 있어서 집 구실 못하던 공간을 나 혼자서 하나하나 고쳐나가며 따뜻한 쉼의 공간으로 만든 나에게 마구 칭찬을 해주고 싶다!
.................................................................5kg
베트남이 나에게 선물해준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바로 나의 살 5kg. 한국에서 소식가로 유명하던 내가 갑자기 5kg 나 찌다니요! 그건 전부 베트남 음식이 너무 맛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음식이라고는 쌀국수와 반쎄오가 전부인 줄 알았던 나, 세상에나 이렇게나 다양하고 맛있는 베트남 음식이 있다니!
베트남 사람들의 소울 푸드, Lầu
한국인들에게 후식이 볶음밥이라면, 베트남인들에게 후식은 바로 이 Lầu! 배가 부르더라도 이 러우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시큼한 국물이 베이스로 깔리고, 다양한 각종 채소와 메인 재료까지! 메인 재료는 돼지고기, 소고기, 해산물, 자라, 닭 등등 매우 다양하다. 처음에는 시큼한 맛과 향이 강한 채소 때문에 먹기 어려워했는데 이제 밥 다 먹고 이것 안 먹으면 너무 허전할 정도다.
우리 센터 근처 맛집 대표 메뉴, Bún riêu
토마토가 핵심인 매운 국수다. 안에는 뼈다귀뿐만 아니라 어묵, 소시지도 들어가 있다. 여기에 고추와 느억맘소스, 바나나잎과 숙주까지 넣으면 일품이다.
엄마가 해주는 밥반찬, 마른 생선
얼마 전, 우리 센터 자원봉사자 고향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님께서 내어주신 반찬인데 처음에는 우리나라 멸치랑 비슷한가? 싶었는데 그보단 크기가 훨씬 크고 모양도 다르다. 한 입 베어 물어보니 짭짤하고 부드러운 것이 흰 쌀밥과 김치를 절로 찾게 된다. 이곳에 살면서 식당 음식뿐만 아니라 현지인 집에서 반찬까지 얻어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운이던지!
베트남에서 생활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를 위로해준 이곳의 음식들! 여기선 반쎄오 천원인데 한국 가서 만오천 원 주고 어떻게 사 먹지···
2. Growth
................................오늘의 MC는
때는 바야흐로 2017년 여름, 우즈베키스탄. 새내기 김지원은 생애 처음으로 단기 해외 봉사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있었는데···갑자기 단원 20명을 대상으로 게임을 진행하라는 선배의 당황스러운 지시. 어벙벙하고 소심하게 중얼거리다가 보다 못한 선배의 도움으로 게임을 얼레벌레 마쳐버렸다. 이 때 이후 잔뜩 소심해져서 나는 발표나 MC랑은 안맞나봐···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 2022년 베트남 껀터. 오늘 그리고 어제 그리고 내일의 MC는 바로 김지원! 의기소침하던 5년 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쩌렁쩌렁 큰 목소리로 많은 사람 앞에서 여러 행사를 잘도 진행해낸다. 사실 베트남에 도착한 후 초반에는 행사 진행이 조금 부끄럽고 떨리기는 했다. 하지만, 수많은 연습과 경험은 결국 좋은 거름이 되어주었다. 행사가 많은 파견 기관의 특성상 대중 앞에서 말을 하는 기회가 많이 있었고, 이 덕분에 이전에 가지든 두려움을 조금씩 떨치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베트남에서의 단원 활동이 나의 두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도움을 주었달까.
기관 자원봉사자 행사 진행 당시
단원 프로젝트 환경교육 진행 당시
.................................Cô 지원
선생님 칭찬 덕분에 열심히 해낼 수 있었고, 선생님 공감 덕분에 저는 더 자신감이 생겼고, 선생님의 사랑 덕분에 많이 행복해졌어요. 저도 커서 선생님처럼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마음이 예쁘고 착한 사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_ 우리 반 학생이 써준 편지 내용 中
전공이 아동심리학인 덕에 지난 4년간 매일같이 ‘선생님’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어린이집으로 봉사와 실습을 나갔을 때도, 보육원과 초등학교로 봉사를 갔을 때도, 영유아 과외를 할 때도. 그런데 그때는 ‘선생님’이 주는 무게가 이리 큰 줄은 모르고 있었다.
이곳에서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우리 기관 한글 교실에 오는 한-베 자녀들은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에 더하여 선생님과 나와 정체성이 같은 친구들과 소중한 마음을 나누러 온다. 태어나기는 분명히 한국인으로 태어났는데 어느 날 갑자기 베트남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
저는요. 학교도 못가서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심심한데, 센터에 오면 기분이 좋아져요. 베트남에서 사는 것의 유일한 장점은 센터가 있다는 거예요.
_상담 내용 中
이곳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류 문제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 아이들에게 센터는 학교고 한글 강사는 담임 선생님이고 같은 반 학생들은 우리 반 급우이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어깨는 더욱더 무거워진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누구랑 사는지 요즘 고민은 없는지 등등 고민 상담가가 되어주기도 한다.
언어가 가진 힘이 있다. 그 힘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는 다르다. 이곳 껀터에서 마주한 아이들의 ‘선생님 Cô’이 되면서 나는 이제 이 힘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이 책임감과 사랑의 무게를 잊지 말고 더 멋지고 도움이 되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종강식 서프라이즈 파티
헤어지던 날 아이들에게 준 선물
센터 아동의 선물
3. Relationship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베트남 생활이 힘들 때마다 나에게 힘이 되어준 존재들이 있다. 맛있는 음식과 예쁜 아이들도 큰 힘이 되어주었지만, 또 다른 힘은 바로 현지 친구들이다.
현지 친구들과 떠난 달랏 여행
외로움을 유독 많이 타는지라 파견 초반에는 주말마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너무 우울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2년 전 껀터대학교와 교류 활동을 했던 한 친구가 내가 껀터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나에게 껀터 대학생 친구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인연! 친구들을 처음 만나 왜 베트남에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각자 소개를 시작으로 만나면 만날수록 집과 꿈 등 진지한 이야기도 시작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 덕분에 아! 내가 알던 베트남은 정말 전부가 아니구나! 를 느낄 수 있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미디어로만 베트남을 접했기에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는 했는데 와보니 그냥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더라. 부모님 때문에 전공 선택했는데 안 맞아서 전과할까 고민하고, 엄마가 부동산 투자한대서 돈 빌려줬는데 날려 먹고, 감성 카페 찾아서 열심히 카메라 셔터 누르고. 정말 그냥 내 친구들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 와중에 몇몇 내 한국인 친구들은 “베트남에 카페가 있어? 베트남 애들은 ___ 하지 않나?”라면서 지극히 차별적이고 무지한 질문들을 나에게 던지고는 했다. 그 와중에 하나하나 다 해명하는 내 자신이 웃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파견 전 교육에서 봉사단원인 우리가 ‘민간 외교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맞네, 내가 지금 민간 외교관으로서 각국을 연결해주고 있는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그들이 무지한 질문을 한다고 해서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정말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은 서로 공유하고 알게 되는 것이 ‘지구는 둥글고, 우리는 하나’라는 국제 교류의 시작이 아닐까?
정말 정들었던 현지 친구들과 송별회를 몇 차례 하다 보니 말 그대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한국-베트남 비행깃값이 비쌀 뿐만 아니라 베트남 사람이 외국 여행 비자를 받는 것이 정말 어렵고 복잡하기에 다음 만남을 마냥 기약하는 것만이 어려웠던 것도 슬펐던 이유이다.
그래도 내 친구들은 나를 달래주며 “꼭 다시 만나자,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한국에 놀러 갈게. 꼭 너 결혼식에 초대해줘야 해.”해주고는 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참고 한 명씩 포옹하며 “응 꼭 놀러 와. 그때는 네가 나에게 해준 그것만큼 아니 그 이상 더 잘해줄게. 그리고 곧 다시 베트남에 놀러 올게.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라며 답하였다.
2022년 한 해 동안 외로운 외국인에게 한없이 잘해주고 무한한 인정과 사랑을 준 내 친구들을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정말 진심으로 꼭 다시 만나서 “그동안 잘 지냈어? 그때 나를 도와주고 소중한 추억을 많이 선물해줘서 고마워”하며 반가움의 포옹을 하고 싶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고 건강 잘 지켜야지.
센터 자원봉사자 선생님들과 떠난 안장 여행
든든한 친구가 되어준 센터 자원봉사자들
4. 마치며
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 다시 만나자는 약속, 과거 두려움을 극복하는 계기, 혼자서도 잘 살아남는 적응력 그리고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얻게 해준 베트남 껀터에서의 생활이 진심으로 감사하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 같다. 지나갈 것 같지 않던 시간은 어느 순간 눈 감았다가 뜨면 지나가 있고, 나는 성장해있다. 비록 이 과정에서 성장통이 있었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내가 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이 교훈을 꼭 간직해서 한국에 돌아가서도 열심히 살아보자. 이젠 ‘나의 집’이 되어버린 이곳을 떠나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그래야 다시 돌아올 마음이 생기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