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에 대한 제50차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환영하며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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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 만연한 위안부 혐오발언

- 일본 정부에 대한 제50차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권고를 환영하며

 

지난 5월 17일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제50차 회기 중 열린 일본에 대한 심의에서 전시 성노예 피해자 보상에 관한 권고를 내렸다. 사회권위원회는 일본의 종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현재까지 겪고 있는 고통을 알리고, 위안부 피해자들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이번 권고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위원회가 ‘일본은 혐오 발언과 혐오를 선동하는 다른 행위들을 방지하기 위해 위안부 관련 역사교육을 대중에게 실시하라’고 한 부분이다. 이 같은 권고는 지난 2월 일본의 혐한파 밴드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독하는 내용의 CD를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에 발송했던 사건을 고려하여 나온 것이다. 유엔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모독 행위를 ‘혐오발언(hate speech)’으로 규정하고 제재하는 권고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고가 나온 지 며칠 만에 이번에는 일본의 정치인 및 관료들이 종군 위안부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이들의 주장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위안부의 강제성을 입증할만한 자료가 없다거나 당시에는 합법적인 제도였다는 식의 합리화, 나아가 지난 3월 나카야마 나리아키 유신회 의원의 발언처럼 아예 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역사적 사실 부정’에 해당되는 발언도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대륙 전체가 공통으로 겪었던 유럽과 독립 후 내전으로 인종 간 집단 학살을 경험한 아프리카에서는 혐오발언을 제노사이드를 부추기는 행위로 보고, 일찍이 혐오발언 및 혐오선동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어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에서 혐오발언 개념은 아직 생소하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약한 편이다. 혐오발언 규제는 표현의 자유권과 부딪치는 지점이 있기에 국내에서 관련 법안을 정착시키려면 아직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한 민족이나 인종, 문화에 대한 혐오 감정을 넘어서 과거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던 역사적 인권침해를 부정하는 행위는 그 시도만으로 위험하다 하겠다. 그것이 비단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민감한 사안이어서가 아니라, 다시는 발생해서는 안 될 ‘인류에 반한 범죄’ 범주에 포함되는 극악한 범죄를 경계해야 할 필요성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은 아직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사죄와 공적인 보상 의지를 표현한 적도 없다.

 

역사적 인권침해 사실의 부정은 단순한 사실 왜곡이 아니다

국제사회는 특정 인종, 종교, 민족을 대상으로 발생한 학살을 부정하는 발언 또한 혐오발언으로 판단해 이를 규제한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011년과 2012년, 혐오발언 규제와 표현의 자유권 존중 사이의 균형을 잡는 작업으로서 일련의 워크숍들을 개최한 바 있다. 이중 2011년 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워크숍 결과 보고서는 “역사적 인권침해 사실을 부정하는 발화들은 단지 허위사실인 것이 아니라 혐오를 선동할 수 있는 발언”이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밝힌다. 이러한 역사 수정주의, 또는 역사적 사실의 부정은 피해자들이 속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이며 본질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사회적으로 부추기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분명한 역사의식을 공유한 유럽에서도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들이 논란이 되어왔다. 이에 유럽 각국은 홀로코스트 부정을 일종의 패턴화된 행위로 보고 관련법을 입법화했다. 지금까지 12개 국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행위를 불법화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전범국가인 독일은 1994년 ‘홀로코스트 역사 수정주의(Holocaust revisionism)’를 형법상 위법적 행위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 주목할 것은 독일 헌법재판소가 표현의 자유권이 “아우슈비츠는 거짓말”이라고 선전 선동하는 집단들의 방어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한 것이다.

 

나치 강제수용소의 아동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전시회 (UN)

 

또, 프랑스는 그보다 이른 1990년 ‘게소법(Gayssot law)’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2차 세계대전 중 발생한 제노사이드를 부정하는 어떤 공적인 표현에도 무거운 벌금형 혹은 징역형을 부과한다. 이 법은 홀로코스트의 존재를 부정하는 글을 신문에 여러 차례 실었던 교수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내용의 책을 쓴 유명 철학자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데 적용됐다. 당시 이들은 무거운 벌금을 낸 후에도 교수직을 박탈당하거나 논란이 된 출판물이 발행 금지되는 등 엄격한 조치를 받았다. 또한 영국의 한 역사학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내용의 강의를 열었다가 오스트리아 연방법에 따라 3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이밖에 홀로코스트 부정을 불법화하는 나라들로는 벨기에, 체코, 리히텐슈타인, 리투아니아, 폴란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스위스 등이 있다. 이들 나라는 유대인 및 소수인종에 대한 명예훼손, 혐오선동을 금지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법을 보유하고 있다.

역사적 인권침해에 관한 혐오발언을 이렇듯 엄격히 규제하는 유럽이지만 홀로코스트 부정과 관련된 소송 및 판례들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보편적인 합의와 인권기준, 제법 탄탄한 법이 있어도 과거 비극이 발생했던 원인인 극단적인 배타성과 증오 감정은 언제든 타오를 불씨처럼 남아 있다.

 

혐오발언에 대항하는 더 많은 발언과 교육이 필요하다

국제사회에서 홀로코스트 부정을 혐오발언의 한 형태로 인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본질적으로 유대인이라는 타자에 대한 혐오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공적, 사적 영역에서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발언은 현재 전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유엔에서도 혐오발언에 대한 연구와 혐오발언과 표현의 자유권을 함께 고려하는 회의들을 몇 년 동안 중요하게 다뤘다. 이들 논의에서 도출된 공통된 결론은 ‘단지 법적인 제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혐오발언을 반대하는 더 많은 발언과 대중에 대한 교육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라는 것이다.

인권 피해자들의 상처를 조롱하는 노래를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직접 보낼 정도의 혐오감은 일부 소수 집단의 광기로 보이지만, 극단적인 행위 뒤에는 오래 전부터 꽤 체계적으로 형성된 담론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사회에서는 종전 후 공인의 과거사 부정 발언들이 꾸준히 있어왔지만 단지 망언이라는 비판만 받았을 뿐 한 번도 이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운 적이 없었다. 일부 정치인에 국한된 것 같아도 공적인 자리에서의 부정 발언이 몇 십 년 이상 지속돼 왔다는 점, 그것이 일본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

사회권위원회가 일본에 권고 실천의 방법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담론의 영향력을 의도한 것이다. 역사교육은 공적 영역에서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이에 대한 합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전에도 자유권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로부터 비슷한 권고들을 받은 바 있다. 일본 정부는 협약 비준국으로서 이 같은 권고를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혐한파 문화집단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혐오물을 발송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로, 극단적인 테러 행위의 배경을 일본 정부는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것이다. 공인에 의한 역사부정과 혐오발언에 대응하는 자성 있는 일본 시민사회의 역할도 소망해 본다.

 

유럽 인권재판소 판결사례들에 대하여 - 재판소가 가장 극심한 인종 학살의 하나였던 국가사회주의 체제에서 벌어진 인류에 반한 범죄, 유대인에 대한 혐오 선동, 그리고 이러한 인류에 반한 범죄를 부정하는 행위, 신나치주의 정책의 정당화는 유럽인권협약 제10조 표현의 자유권을 옹호한다는 명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을 상기한다.

역사적 유산을 보존하는 방법은 과거를 늘 경계하며 기억하고 인종주의, 인종혐오, 반유대주의 및 불관용에 관한 어떤 시위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조직적인 살해를 당한 홀로코스트 희생자뿐만 아니라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인종주의적 정책에 의해 희생된 다른 피해자들에 조의를 표한다.

최근 유럽 각국에서 반유대주의가 창궐함을 주목하며 이런 현상이 반유대주의 시위들로 형성된 것임을 강조한다. 이 같은 현상들은 유럽 각국에서 다양한 공동체 대표들, 종교 지도자들, 시민사회, 주요 기관 등 모든 관련자들의 집중된 노력을 통해서만 극복 가능하다고 믿는다.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영역에서 형법은 다음과 같은 행위들이 의도를 갖고 자행됐을 때 처벌해야 함을 확인한다.

-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거나 유대인으로 추정된다는 이유로 유대인을 공적으로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 홀로코스트를 공적으로 부정하거나 백안시하는 행위, 정당화하거나 묵과하는 행위

-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 교육을 도모하고 발전시키며, 교사들이 학생들을 현재까지 이어지는 홀로코스트의 위험성과 이 같은 비극을 어떻게 방지할지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르치도록 교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 정치가를 비롯한 오피니언리더들이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공적 입장을 분명히 취하도록 하고 모든 형태의 반유대주의 행사에 반대하는 발언을 꾸준히 하며, 반유대주의는 관용될 수 없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 인종주의와 불관용에 반대하는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 against Racism and Intolerance: ECRI)가 2004년 발표한 ‘반유대주의에 관한 일반 정책 권고 9’ 중에서

 

*참고 자료

HOLOCAUST DENIAL IS A FORM OF HATE SPEECH (Raphael Cohen-Almagor/Amsterdam Law forum)

http://www.ohchr.org/Documents/Issues/Religion/CRP3Joint_SRSubmission_for_Vienna.pdf

http://www.coe.int/t/dghl/monitoring/ecri/activities/GPR/EN/Recommendation_N9/Recommendation_9_en.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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