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축약해서 말할 때 ‘사회권’이라 합니다. 정부나 시민단체가 사회권을 언급할 때는 주로 경제적 권리나 사회적 권리에 해당될 때가 많아 사회권 하면 복지와 관련된 권리이거나 노사 갈등에서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의 권리를 주로 떠올립니다. 본래 사회권 규약의 정식 명칭에 포함되면서도 상대적으로 언급되는 기회가 적은 문화적 권리. 언뜻 문화적 권리는 인간의 생계나 복지와 관련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권리들이 해결된 이후에 그 향유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문화적 권리는 그 명칭처럼 단순히 조금 더 기본권에 가까운 사회적 권리들이 보장된 이후 양질의 삶을 위해 요구할 수 있는 문화적 여가나 기회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한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조건들에 대한 권리입니다. 교육, 언어, 전통, 다양성의 보장 등이 그 예일 것입니다.
▲ 파리다 샤히드(Farida Shaheed) 유엔 문화적 권리 영역에 대한 특별보고관
파리다 샤히드(Farida Shaheed) 유엔 문화적 권리 영역에 대한 특별보고관(the Special Rapporteur in the field of cultural rights, 이하 ‘특보’)은 2013년 8월 제68차 유엔 총회에 역사교육을 문화적 권리의 관점에서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특히 문화적 권리로서의 역사교육에서 역사 교과서가 갖춰야 할 요건과 방향을 제시한 점이 눈에 띕니다.
먼저 특보는 역사교육이 정치적 헤게모니 다툼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여러 국가의 사례를 통해 분석합니다. 특보는 국가를 포함한 공동체는 형성 과정에서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들, 신화, 전설들로 이뤄진 ‘서사’(narrative)를 사용하기 마련인데, 특히 내분을 겪어 공동체가 와해된 후 구성원들 사이에 정체성을 비롯한 정신적 가치를 세울 필요성이 있는 사회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그러면서 ‘집단 기억의 형성’과 ‘역사 교육’은 그 목적과 성격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무수한 개인과 집단의 개별적이고도 다양한 기억이 모여 역사를 이루는 것이라면, “역사 교육은 개개인의 기억이 하듯이 과거를 단지 기념하기만 해서는 안 되며 과거가 기념되는 방식을 사유해야” 하고, 따라서 “역사를 서술하고 교육하는 행위는 선택적이며 자의적인 기억의 속성을 들춰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정의합니다. 인간은 모두 객관적이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해당 사건에서 얼마간의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둘 수 있는 현재 시점에서는 사건에 얽혀있는 집단과 개인들의 기억을 사료로서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러한 기억 방식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역사 교육의 방향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억들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사료들을 해석하고 관점을 도입하는 과정, 즉 학술적이고 사회적인 토론을 거쳐야 합니다.
이 보고서는 역사교육 방식이나 역사 교과서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역사에 관한 모든 해석이 곧 역사교육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기존의 국제 기준들을 근거로 들며 강조합니다. '유럽 각료회의의 21세기 역사교육에 관한 권고 제15'(Recommendation Rec 15 of the Committee of Ministers on history teaching in twenty-first-century Europe)’는 역사교육이 이념 주입, 선전과 선동, 불관용과 극단적 국가주의, 인종 혐오,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같은 관념들을 추동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역사적 사실 관계에 관한 기준도 있는데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이 잘못된 근거, 조작된 통계, 거짓 이미지, 다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사실 수정작업, 선전을 목적으로 한 과거사 왜곡, '우리'와 '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위한 극단적인 국가주의, 역사적 기록의 오용,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정이나 제외 등의 활용”을 경계합니다. 국제 기준에 등장하는 역사교육의 공통점이 있다면, 국제 기준들이 주로 인권협약이기 때문이겠으나, 역사교육이 관용, 상호 이해, 인권, 민주주의 같은 근본적 가치들의 증진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입니다. 이러한 가치들이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통해 탄생하고 받아들여진 개념이라면, 그 과정에서의 갈등에 대한 사실 인정을 하지 않고서는 역사교육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함양하는 장이 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역사교육이 문화적 권리인 것은 역사에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교육에 대한 권리의 의미도 있습니다. 특보는 역사교육을 많은 부분을 할애해 아동의 교육권과 연결시킵니다. 사회권규약뿐 아니라 세계인권선언, 아동권리협약 등 많은 국제 인권협약은 교육을 통해 비판적 능력을 기를 권리, 평화와 관용의 정신을 지닌 윤리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권리를 이야기합니다. 역사만큼 자신이 서 있는 토양의 맥락을 이해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을 성찰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이란 없을 것입니다.
▲ 2013년 한 교과서의 역사왜곡 논란에 대한 사학계 원로교수들의 기자회견 모습 (사진출처: 뉴시스)
다음으로, 역사 교과서가 지향해야 할 바를 말하는 부분에서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교과서의 존재를 인정하되, 교과서가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오류나 잘못된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는 경우를 비판합니다. 특히 국가 주도의 단일한 교과서, 국정 교과서는 역사교육이 특정한 이념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기 위한 도구가 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현재 전문가 집단이 교과서를 기술하되 후에 검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는 제도를 택하고 있습니다. 특보는 역사 교과서의 집필을 민간의 자율에 두지만 교과서를 기술하는 과정에서부터 사료들의 타당성, 용어의 중립성, 해석의 윤리성을 담보할 것을 권고합니다. 역사학자들은 교과서에 실릴 내용은 우선 학계의 검증을 거친 것이라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특보가 이 보고서에서 “역사 교육 커리큘럼의 개정과 역사교육 기준 형성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전문가들의 작업과 전문가 집단의 견해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문화 콘텐츠의 하나로 즐기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화 콘텐츠조차 역사에 관한 아주 다양한 해석을 담고 있으며, 특정 시기라면 상상도 못했을 관점으로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도 가능해졌습니다. 학술적 입장에서는 다소 수용하기 어려운 해석을 담고 있더라도 대부분은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공교육이나 국가 검증을 거치는 교과서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학계와 교육계뿐만 아니라 정치 집단들이 논쟁에 가세하기도 하는 이유는, 역사에 대한 해석이 특정 집단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하는 등 정치적 헤게모니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보의 이번 보고서는 역사교육의 민감한 속성에도 불구하고 우선 인권적인 관점으로 역사교육에 접근할 것을 제안합니다. 추상적이고 편파적인 정의보다는 인권이 다양한 견해를 포함해야 하는 역사교육에 더 적합한 기준일 것입니다.
참고자료
문화적 권리 특별보고관 보고서 원문 : http://daccess-dds-ny.un.org/doc/UNDOC/GEN/N13/422/91/PDF/N1342291.pdf?OpenElement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축약해서 말할 때 ‘사회권’이라 합니다. 정부나 시민단체가 사회권을 언급할 때는 주로 경제적 권리나 사회적 권리에 해당될 때가 많아 사회권 하면 복지와 관련된 권리이거나 노사 갈등에서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의 권리를 주로 떠올립니다. 본래 사회권 규약의 정식 명칭에 포함되면서도 상대적으로 언급되는 기회가 적은 문화적 권리. 언뜻 문화적 권리는 인간의 생계나 복지와 관련된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권리들이 해결된 이후에 그 향유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문화적 권리는 그 명칭처럼 단순히 조금 더 기본권에 가까운 사회적 권리들이 보장된 이후 양질의 삶을 위해 요구할 수 있는 문화적 여가나 기회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한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조건들에 대한 권리입니다. 교육, 언어, 전통, 다양성의 보장 등이 그 예일 것입니다.
▲ 파리다 샤히드(Farida Shaheed) 유엔 문화적 권리 영역에 대한 특별보고관
파리다 샤히드(Farida Shaheed) 유엔 문화적 권리 영역에 대한 특별보고관(the Special Rapporteur in the field of cultural rights, 이하 ‘특보’)은 2013년 8월 제68차 유엔 총회에 역사교육을 문화적 권리의 관점에서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특히 문화적 권리로서의 역사교육에서 역사 교과서가 갖춰야 할 요건과 방향을 제시한 점이 눈에 띕니다.
먼저 특보는 역사교육이 정치적 헤게모니 다툼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여러 국가의 사례를 통해 분석합니다. 특보는 국가를 포함한 공동체는 형성 과정에서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들, 신화, 전설들로 이뤄진 ‘서사’(narrative)를 사용하기 마련인데, 특히 내분을 겪어 공동체가 와해된 후 구성원들 사이에 정체성을 비롯한 정신적 가치를 세울 필요성이 있는 사회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관찰했습니다. 그러면서 ‘집단 기억의 형성’과 ‘역사 교육’은 그 목적과 성격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무수한 개인과 집단의 개별적이고도 다양한 기억이 모여 역사를 이루는 것이라면, “역사 교육은 개개인의 기억이 하듯이 과거를 단지 기념하기만 해서는 안 되며 과거가 기념되는 방식을 사유해야” 하고, 따라서 “역사를 서술하고 교육하는 행위는 선택적이며 자의적인 기억의 속성을 들춰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정의합니다. 인간은 모두 객관적이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해당 사건에서 얼마간의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둘 수 있는 현재 시점에서는 사건에 얽혀있는 집단과 개인들의 기억을 사료로서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러한 기억 방식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역사 교육의 방향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기억들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사료들을 해석하고 관점을 도입하는 과정, 즉 학술적이고 사회적인 토론을 거쳐야 합니다.
이 보고서는 역사교육 방식이나 역사 교과서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역사에 관한 모든 해석이 곧 역사교육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기존의 국제 기준들을 근거로 들며 강조합니다. '유럽 각료회의의 21세기 역사교육에 관한 권고 제15'(Recommendation Rec 15 of the Committee of Ministers on history teaching in twenty-first-century Europe)’는 역사교육이 이념 주입, 선전과 선동, 불관용과 극단적 국가주의, 인종 혐오,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같은 관념들을 추동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역사적 사실 관계에 관한 기준도 있는데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이 잘못된 근거, 조작된 통계, 거짓 이미지, 다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사실 수정작업, 선전을 목적으로 한 과거사 왜곡, '우리'와 '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 위한 극단적인 국가주의, 역사적 기록의 오용,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정이나 제외 등의 활용”을 경계합니다. 국제 기준에 등장하는 역사교육의 공통점이 있다면, 국제 기준들이 주로 인권협약이기 때문이겠으나, 역사교육이 관용, 상호 이해, 인권, 민주주의 같은 근본적 가치들의 증진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입니다. 이러한 가치들이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많은 갈등을 통해 탄생하고 받아들여진 개념이라면, 그 과정에서의 갈등에 대한 사실 인정을 하지 않고서는 역사교육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함양하는 장이 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역사교육이 문화적 권리인 것은 역사에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교육에 대한 권리의 의미도 있습니다. 특보는 역사교육을 많은 부분을 할애해 아동의 교육권과 연결시킵니다. 사회권규약뿐 아니라 세계인권선언, 아동권리협약 등 많은 국제 인권협약은 교육을 통해 비판적 능력을 기를 권리, 평화와 관용의 정신을 지닌 윤리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권리를 이야기합니다. 역사만큼 자신이 서 있는 토양의 맥락을 이해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을 성찰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이란 없을 것입니다.
▲ 2013년 한 교과서의 역사왜곡 논란에 대한 사학계 원로교수들의 기자회견 모습 (사진출처: 뉴시스)
다음으로, 역사 교과서가 지향해야 할 바를 말하는 부분에서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교과서의 존재를 인정하되, 교과서가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사실관계에 대한 오류나 잘못된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는 경우를 비판합니다. 특히 국가 주도의 단일한 교과서, 국정 교과서는 역사교육이 특정한 이념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기 위한 도구가 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현재 전문가 집단이 교과서를 기술하되 후에 검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는 제도를 택하고 있습니다. 특보는 역사 교과서의 집필을 민간의 자율에 두지만 교과서를 기술하는 과정에서부터 사료들의 타당성, 용어의 중립성, 해석의 윤리성을 담보할 것을 권고합니다. 역사학자들은 교과서에 실릴 내용은 우선 학계의 검증을 거친 것이라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특보가 이 보고서에서 “역사 교육 커리큘럼의 개정과 역사교육 기준 형성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전문가들의 작업과 전문가 집단의 견해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과 일맥상통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문화 콘텐츠의 하나로 즐기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화 콘텐츠조차 역사에 관한 아주 다양한 해석을 담고 있으며, 특정 시기라면 상상도 못했을 관점으로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도 가능해졌습니다. 학술적 입장에서는 다소 수용하기 어려운 해석을 담고 있더라도 대부분은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공교육이나 국가 검증을 거치는 교과서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학계와 교육계뿐만 아니라 정치 집단들이 논쟁에 가세하기도 하는 이유는, 역사에 대한 해석이 특정 집단의 정통성을 공고히 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하는 등 정치적 헤게모니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보의 이번 보고서는 역사교육의 민감한 속성에도 불구하고 우선 인권적인 관점으로 역사교육에 접근할 것을 제안합니다. 추상적이고 편파적인 정의보다는 인권이 다양한 견해를 포함해야 하는 역사교육에 더 적합한 기준일 것입니다.
참고자료
문화적 권리 특별보고관 보고서 원문 : http://daccess-dds-ny.un.org/doc/UNDOC/GEN/N13/422/91/PDF/N1342291.pdf?OpenEl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