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과 민주주의, 그 밀당의 최소기준
김기원(KOCUN 활동가)
이 세상에는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모르겠는 것들이 너무 많다. 예컨대 내가 쓰고 있는 이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번호만 몇 개 누르면 어떻게 전세계 어디든 즉각적으로 연결이 되는 건지 등. 나 혼자 무식한 놈이 아니길 바라며, 그런 것들 중 보편적으로 가장 흔히 애용하면서도 가장 많이 모르는 것 중 하나가 전기나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마 보다 정확한 표현은 ‘궁금하려 하지 않은’일 수 있겠다.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껄끄러운 얘기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은 드나 실체를 알아도 난 모르는 척 계속 쓸 수밖에 없으니 그냥 모르고 마음 편히 쓰자, 하며.
그런데 좀 알 필요가 있다. 대강의 인터넷 검색 결과를 종합하면, 우리(서울시민)가 쓰고 있는 막대한 양의 전기 중 97%는 (대부분 먼) 타지에서 만들어져 흘러 들어오고,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원 1위가 석탄(40% 이상), 2위가 원자력(30% 내외)이다. 전국의 원자력 발전소 23대 중 서울에 있는 것은? 0개.
(출처: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이쯤에서 어쭙잖은 얘기는 접고 본론인즉, 나는 최근 강원도 삼척에 주민들의 반대투표에도 불구하고 원전(원자력발전소)이 생겨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좌절감이 들었더랬다. 님비현상이고 아니고를 떠나, 아주 기본적으로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고 ’다수의 필요’를 앞세워 발전소 건설을 진행하는 것은 횡포와 폭력이나 다름없다. 안전과 환경의 이슈이기 이전에, 아주 기본적인 민주주의 쇠퇴와 국민주권 및 참여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2011년 5월 31일, 독성의 및 유해한 물질과 폐기물의 이동 및 폐기가 인권향유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he adverse effects of the movement and dumping of toxic and hazardous products and wastes on the enjoyment of human rights)인 칼린 게오르게스쿠(Calin Georgescu)는 폴란드 방문 이후, 원전 건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끝으로, 현재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제안과 관련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 중인 논의에 대해 몇 마디만 하겠다. (중략) 나는 또한 원자력이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논란이 되는 주제일 것이라는 점과 원자력의 사용과 안전에 관하여 현재 진행 중인 논쟁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인지한다. (중략)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에 관한 그 어떠한 결정도 국가적 차원의 광범위한 협의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에 관한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 대중의 유의미한 참여를 보장하기 위하여, 당국은 대중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정보는 미래의 원자력발전소의 위치와 건설 추진계획에 한정되어서는 안되며, 우라늄 조달과 원자력 사용과 관련된 예상가능한 위험, 발전소에 의해 생성된 원자폐기물의 안전한 보관 및 환경적으로 무해한 폐기 등에 관한 가장 최신의 정보 및 과학적 자료를 포함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제안된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에 관한 그 어떠한 결정에 있어서, 대중들의 고지된(informed), 투명한, 그리고 공정한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들을 취할 것을 권장한다. 문제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나는 의회와 대통령에게 이 문제에 관한 국가적 차원의 국민투표를 고려할 것을 권장한다.”
▲ 칼린 게오르게스쿠(Calin Georgescu) 유해물질 특별보고관
“주민에게 정보제공”과 “주민과의 협의”가 필요없다고 감히 주장하는 이는 분명 없을 터. 그러나 어떤 정보가 어떻게 제공되고, 주민과의 협의 역시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어 누구의 참여 속에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가 핵심이다. 지겹도록 얘기되는 의지와 진정성의 문제다.
생각해보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9일 진행된 주민투표에서 삼척 원전 건설을 반대한 주민 수는 무려 2만명이 넘는다. 한 가구가 4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는 5,000가구이며, 한 아파트에 50가구가 산다고 했을 때, 이는 아파트 100채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아 반대를 했는데도 국가는 꿈쩍도 안한다는 것은, ‘나’라는 한 사람의 목소리는 얼마나 힘없이, 무참히 씹힐 수 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한다, 우리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시 돌아가서, 칼린 게오르게스쿠 특별보고관은 분명 “국가적 차원의 광범위한 협의”와 “국가적 차원의 국민투표”를 강조했다. 그리고 다시 상기시키면, 서울에서 쓰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타지에서 흘러 들어온다. 그렇기 때문에 현존하는, 그리고 새로 짓는 모든 원전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지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고, 또 결정해야 하는 문제다. 그 과정에서는 물론, 위에 언급된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것이 (3년 전에 제시된) 최소한의 국제적 기준이라 할 수 있겠다.
▲ 1998년, 16년 동안의 원전반대 싸움 끝에 삼척시 원전부지 예정고시가 해제됨을 기념하여
1992년, 8.29공원에 세워진 ‘원전백지화기념탑’
원전과 민주주의, 그 밀당의 최소기준
김기원(KOCUN 활동가)
이 세상에는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모르겠는 것들이 너무 많다. 예컨대 내가 쓰고 있는 이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되는지, 번호만 몇 개 누르면 어떻게 전세계 어디든 즉각적으로 연결이 되는 건지 등. 나 혼자 무식한 놈이 아니길 바라며, 그런 것들 중 보편적으로 가장 흔히 애용하면서도 가장 많이 모르는 것 중 하나가 전기나 에너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마 보다 정확한 표현은 ‘궁금하려 하지 않은’일 수 있겠다.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껄끄러운 얘기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은 드나 실체를 알아도 난 모르는 척 계속 쓸 수밖에 없으니 그냥 모르고 마음 편히 쓰자, 하며.
그런데 좀 알 필요가 있다. 대강의 인터넷 검색 결과를 종합하면, 우리(서울시민)가 쓰고 있는 막대한 양의 전기 중 97%는 (대부분 먼) 타지에서 만들어져 흘러 들어오고, 우리나라 에너지 공급원 1위가 석탄(40% 이상), 2위가 원자력(30% 내외)이다. 전국의 원자력 발전소 23대 중 서울에 있는 것은? 0개.
(출처: 한국원자력산업회의)
이쯤에서 어쭙잖은 얘기는 접고 본론인즉, 나는 최근 강원도 삼척에 주민들의 반대투표에도 불구하고 원전(원자력발전소)이 생겨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좌절감이 들었더랬다. 님비현상이고 아니고를 떠나, 아주 기본적으로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고 ’다수의 필요’를 앞세워 발전소 건설을 진행하는 것은 횡포와 폭력이나 다름없다. 안전과 환경의 이슈이기 이전에, 아주 기본적인 민주주의 쇠퇴와 국민주권 및 참여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2011년 5월 31일, 독성의 및 유해한 물질과 폐기물의 이동 및 폐기가 인권향유에 미치는 악영향에 관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the adverse effects of the movement and dumping of toxic and hazardous products and wastes on the enjoyment of human rights)인 칼린 게오르게스쿠(Calin Georgescu)는 폴란드 방문 이후, 원전 건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칼린 게오르게스쿠(Calin Georgescu) 유해물질 특별보고관
“주민에게 정보제공”과 “주민과의 협의”가 필요없다고 감히 주장하는 이는 분명 없을 터. 그러나 어떤 정보가 어떻게 제공되고, 주민과의 협의 역시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어 누구의 참여 속에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가 핵심이다. 지겹도록 얘기되는 의지와 진정성의 문제다.
생각해보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9일 진행된 주민투표에서 삼척 원전 건설을 반대한 주민 수는 무려 2만명이 넘는다. 한 가구가 4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이는 5,000가구이며, 한 아파트에 50가구가 산다고 했을 때, 이는 아파트 100채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아 반대를 했는데도 국가는 꿈쩍도 안한다는 것은, ‘나’라는 한 사람의 목소리는 얼마나 힘없이, 무참히 씹힐 수 있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한다, 우리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시 돌아가서, 칼린 게오르게스쿠 특별보고관은 분명 “국가적 차원의 광범위한 협의”와 “국가적 차원의 국민투표”를 강조했다. 그리고 다시 상기시키면, 서울에서 쓰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타지에서 흘러 들어온다. 그렇기 때문에 현존하는, 그리고 새로 짓는 모든 원전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삶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지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함께 논의하고, 고민하고, 또 결정해야 하는 문제다. 그 과정에서는 물론, 위에 언급된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것이 (3년 전에 제시된) 최소한의 국제적 기준이라 할 수 있겠다.
▲ 1998년, 16년 동안의 원전반대 싸움 끝에 삼척시 원전부지 예정고시가 해제됨을 기념하여
1992년, 8.29공원에 세워진 ‘원전백지화기념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