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자유,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할 수 없다

201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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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자유,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할 수 없다


 

유엔의 국제인권조약은 다루는 분야만큼이나 제정시기가 제각기 다르다. 1966년 제정된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자유권규약)과 가장 최근인 2006년에 제정된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CRPD, 장애인권리협약)은 그 격차가 40년으로, 가장 크다. 문제는 두 조약간 겹치는 내용(권리)에 있어서 그 해석이 갈리는 데서 비롯된다.

 

사실 각 조약의 모니터링 기구인 위원회 간 충돌은 계속적으로 논란이 되어왔다. 놀라울 수도 있으나 이는 비단 유엔의 인권조약기구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이를테면, 장애인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와 장애인권리위원회의 관점은 뿌리부터 다르다고 할 수 있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하는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무역기구(WTO) 또한 활동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의 여지가 많다.



▲ ''''안전''''을 이유로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만화.


문제가 불거진 것은 올해 자유권위원회가 자유권규약 제9조(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일반논평 제35호 초안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일반논평이란, 협약의 특정 조항에 대한 해석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협약 당사국(비준국)들이 해당 조항을 보다 잘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사실 제9조에 관하여 자유권위원회는 1982년에 이미 일반논평을 작성한 바 있는데, 현재의 상황에 보다 부합하도록 개선하려는 것이다.

 

시작은 좋다. ‘신체의 자유와 안전’은 세계인권선언(UDHR) 제3조에 명시되어 있는 권리로, 실질적인 권리로써는 가장 처음 언급된 점으로 미루어봤을 때, 해당 권리의 중요성이 반증된다고 강조한다(2항). 이어 ‘신체의 자유’는 신체의 감금으로부터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하며, 자유권규약 제9조에 의거하여 소년과 소녀, 군인, 장애인, 외국인, 난민 및 망명신청자,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자, 테러에 가담한 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포괄한다고 설명한다(3항).

 

또한 자유의 박탈이 자유권규약 제12조에 따른 이동의 자유에 대한 침해보다는 더 협소한 공간에서의 움직임에 대한 심각한 제한을 다룬다고 설명한다. 그 예로, 경찰서 구류와 미결구금(remand detention), 기소 후 구금, 자택구금, 행정구금, 비자의적 입원 등을 나열한다(5항). 이에 비자의적 입원이 포함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되는 문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사국은 자의적 구금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신보건 영역에서 구식의 법률과 관행들을 개정해야 한다. 어떠한 자유의 박탈도 해당 당사자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거나 타인에 대한 피해를 방지할 목적에 따라 반드시 필수적이고 비례적이어야 한다. 당사국은 덜 제한적인 대안을 고려해야 하며, 법률에 따른 적절한 절차적이고 실질적인 보호장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절차들은 환자의 의견에 대한 존중을 보장해야 하며, 모든 후견인 또는 대변인은 환자의 욕구와 이익(interest)을 진정으로 대표하고 대변해야 한다. 당사국은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에게 구금을 정당화하는 목적을 수행하도록 하는 치료 및 재활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자유의 박탈은 적절한 주기로 그 지속의 필요성이 재심사되어야 한다. 환자들이 구금의 위법성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정기적인 사법적 검토을 포함한 권리옹호와, 또한 협약과 부합하는 구금조건의 보장을 위한 효과적인 구제를 접근하는데 있어서 조력을 받아야 한다(19항).”

 


이에 맞서 지난 9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장애인권리협약 제14조에 의거, 특히 정신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들은 신체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못박으며, 동 위원회가 당사국들을 심의하기 시작한 2011년 4월 이래, 해당 권리를 올바르게 이행해야할 필요성을 강조해왔다고 덧붙인다.

 

특히 제14조가 다음의 4가지 사항을 지지한다고 덧붙인다.

1) 실질적인 또는 인지된(perceived) 장애를 기반으로 한 구금을 완전히 금지할 것

2)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위험 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장애인의 구금을 허용하는 것은 협약에 대한 위반에 해당

3) 재판 부적합 판정과 그에 따른 구금은 협약에 대한 위반에 해당

4) 범죄에 따른 징역선고를 받은 장애인은 합리적인 편의제공을 보장받을 것

 

장애에 관한 특별보고관(Special Rapporteur on Disability) 역시 제19항에 포함된 기준은 고문 또는 잔혹한,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에 해당하는 행위들을 합법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며, 교도소 내외의 정신보건시설로의 강제이송과 보호관찰 또는 가석방의 조건으로써 정신보건치료를 강제하는 것은 장애에 대한 합리적인 편의제공 조치로 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장애인권리협약은 특히 정신장애인을 포함하여 장애인을 ‘보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경계하며,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인권의 주체로 볼 것을 명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조약기구와는 달리, 어떠한 결정의 기준이 당사자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이 아닌, 당사자의 의지, 선호 및 필요라는 것을 강조해왔다. 일례로, 모든 사람들은 술과 담배가 몸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개인의 선호에 따라 자율적으로 선택할 권리가 있듯이, 장애인도 스스로의 의자와 선호에 따라 때로는 개인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 때문에 후견인과 대변인 역시 “환자의 욕구와 이익”을 대변하라고 명시한 것은 장애인권리협약과 부합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위험 가능성’ 여부는 늘 장애인의 발목을 잡았었다. 물론 장애인 역시 범죄를 저지른 경우, 경중여부를 떠나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그러한 경우 가해지는 신체의 자유 제한은 인권침해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저지르지도 않은 추상적인 ‘위험 가능성’을 두고 한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명확하게 장애에 대한 차별이며 인권침해에 속한다. 따라서 위원회는 굳이 한번더 강조한다. 이를테면 망상형 정신분열증 진단만을 이유로 감금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따라서 장애 특별보고관을 비롯한 수많은 장애인단체는 입을 모아 요구하고 있다. 

“자유권위원회는 장애인권리협약의 관점에 부합하도록 자유권규약을 해석해달라!”



[참고자료]

- 자유권위원회 일반논평 제35호 초안 및 기타 이해관계자 보고서:  http://www.ohchr.org/EN/HRBodies/CCPR/Pages/DGCArticle9.aspx

- 장애인권리위원회 성명서: http://www.ohchr.org/EN/NewsEvents/Pages/DisplayNews.aspx?NewsID=15183&Lang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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