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불관용 철폐를 위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때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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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불관용 철폐를 위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때


코쿤 가원


'우리 모두가 인권의 모든 범주를 누릴 수 있고, 동등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타인의 안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아닌 이상, 단지 존재 이유만으로 혹은 특정 성적지향 혹은 성정체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권리를 박탈하거나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만약 그러한 경우, 많은 사람들을 국제법의 보호로부터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되고 이는 곧 인권과 반차별의 원칙을 모욕하는 것이다.'

 

지난 2010유엔인권최고대표였던 네비 필래이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한 발언의 일부다. 같은 자리에서 인권최고대표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불관용을 철폐하기 위해 국가차원의 정치적 리더십과 유엔과 같은 정부간 기구 차원의 논의를 발전시킬 것을 요구했다.



사진 1 전 유엔인권최고대표 네비필레이 발언

 

최근 서울시 인권헌장제정이 무산되면서 이 원칙적이고 당위적인 요구를 한국 역시 당면하고 있다. 기실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근거한 차별금지와 폭력 근절에 대한 국제사회가 논의를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지정학적 종교적 성향에 따라 성소수자 권리옹호에 대한 국가들의 입장은 첨예하다. 그럼에도 모든 인간은 폭압과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자유와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는 공통의 믿음을 가시화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진행 중이다.

 

그 노력은 국가들의 연대 성명이나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안 채택 등의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야말로 국제정치의 장인 인권이사회에서 협의를 거쳐 문서가 채택되면 비로소 문서는 도덕적인 힘을 얻게 된다. 또한 그렇게 힘을 얻은 논의의 결과물들은 차후 국제인권규범이 되어 국가차원의 법과 제도의 변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우리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결의안을 몇 줄 듣기 좋은 말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인권이사회 의제는 어느날 문득 혜성처럼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시민사회 그리고 UN기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지난한 공론화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해진다. 지난 2011년 최초의 성적지향 및 성정체성에 근거한 차별금지에 대한 결의안 채택 역시 다년간의 논쟁과 토론을 거쳤음은 두말 할 것 없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2005년 유엔인권이사회의 전신인 인권위원회 제 61차 회기에서 32개국이 공동 성명서를 통해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근거로 한 차별을 강도 높게 비판했고 그 이듬해인 2006년 제 3차 인권이사회에서 54개국은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관한 인권이사회 차원의 논의를 진행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2008년 유엔 총회에서는 그 보다 더 많은 66개국이 성적지향 혹은 성정체성에 근거한 기본적 자유와 인권의 침해를 강력히 비난하며 성소수자에 가해지는 차별과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입법적 및 행정적 장치를 충분히 마련할 것을 유엔회원국에게 촉구했다. 그리고 2011, 85개국이라는 기록적인 지지를 통해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에 근거한 폭력, 형사처벌로 인한 인권침해를 철폐하고 이를 위한 인권이사회 및 기타 이해관계기관들의 노력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편 한국정부는 당시 군대내 동성간 성관계 위헌심판 제청건과 양심적 병역거부 등을 의식한 듯 공동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사진2. 서울시 인권헌장제정 무산에 항의하는 인권단체 서울시청 농성장 모습

 

그리고 2011년 6, 17차 인권이사회에서 성소수자 차별금지에 관한 최초의 결의안이 찬성 23 반대 17 기권3의 표결 채택되었다.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기반한 차별적 법률과 관행 그리고 폭력행위 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국제인권법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할 것을 유엔인권최고대표에게 주문했는데, 같은 해 유엔인권최고대표는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권고했다 (1) 성적지향 및 성정체성에 근거한 폭력과 차별의 사건들을 명확하게 다루고 가해자에 대한 기소 및 처벌을 가능하게 한다(2) 성적지향 및 성정체성의 근거한 차별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성전환자들의 성별 및 이름을 법적으로 인정하도록 한다(3) 위와 동일한 인식을 법률을 집행하는 다양한 관계자와 관료들 및 대중들에게 심어줄 수 있는 교육 및 캠페인을 진행한다.

 

최초의 결의안이 채택된 이후 3년이 지난 올해 9, 27 인권이사회에서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관한 두 번째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결의안은 개별 국가의 국내적 및 지역적 특수성과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은 감안하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제도와 상관없이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보호하고 촉진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근거로 하는 차별 금지에 대한 인권이사회의 태도는 보다 강경해지고 보편적 인권으로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한층 높아지고 있다.

 

한국 역시 지난 9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부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불관용을 철폐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의사를 나타낸지 석달도 되지 않아 서울시는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근거한 차별금지 조항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권헌장을 폐기했다. 단순히 지방정부가 만들어낸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만연하고 이는 수 년 동안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포함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고 있는 사실이 증명한다.



사진3. 서울시 인권헌장제정 무산에 항의하는 인권단체 서울시청 농성장 모습

 

국가의 외교 인권정책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유엔차원의 논의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지 그리고 이를 얼마나 국내 인권정책에 반영하는지가 관건이다. 한국이 시간차를 두고 국가 안팎에서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르니 그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권헌장이 무산된 것에 대해 정치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서울시장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어떤 정치적 환경에 있든 인권의 대원칙인 차별금지의 원칙을 지켜내지 못한 결정은 합리적인 행위로 정당화 할 수 없다. 정치적 부담보다는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할 정치적 의지를 가지는 기회로 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끝으로 한국은 보편적 인권으로서 성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입장을 국제사회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지난 9월 결의안에 지지표명이 그저 외교정책상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더군다나 '인권증진 및 보호의 가장 높은 기준을 준수할 것'이라고 스스로 공약을 내건 유엔인권이사국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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