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권규약 심의 참관 후기

201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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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권규약 심의 참관 후기

홍승기


한국정부가 9년 만에 받았던,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이 1년 넘게 준비해왔던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하 자유권규약) 이행에 관한 한국정부 심의가 최근에 끝났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갈 줄 몰랐고 실감이 나질 않는다. 조약기구 심의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준비과정부터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지나간 느낌이다.

마지막 심의가 2006년에 있었기에 함께 대응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조약기구 심의 무경험자였다. 다른 유엔인권메커니즘은 많이 활용해봤어도 조약기구 심의 대응은 모두에게 낯설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심의 대응에 참여했던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조언도 얻고 함께 논의하면서 대응 전략을 세웠다. 자유권 심의 대응 사무국을 담당했던 단체들은 인권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을 조직하여 한국의 자유권 실태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NGO 보고서를 공동으로 작성하여 제출했다.

 

▲ Pax Romana 사무실에서 로비 자료를 준비하는 모습


제네바 현지에서도 바쁜 일정이 이어졌다. 제네바에 파견된 한국 NGO 참가단은 심의 전까지 주어진 시간 동안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여 심의를 돕기 위해 힘썼다. 자유권위원들과 접촉하고 추가 자료를 전달하는 등 작은 부분이라도 놓치지 않도록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또 우리 NGO 참가단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한국 NGO들도 와있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슈를 다루는 사람들이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위원들이 과연 한국의 자유권 실태를 잘 파악하고 있을지에 대한 우려와는 달리, 막상 심의가 시작되고 나니 위원들이 한국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는 질문들을 했다. 우리가 그 동안 들였던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사회가 제기했던 많은 이슈들은 위원들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국가보안법, 사형제 폐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군대 내 인권, 고문 및 구금, 소수자 인권 등등 수많은 이슈가 언급되었다.

반면 한국정부의 답변은 상당 부분이 기존에 제출했던 정부보고서와 질의목록(List of Issues)에 대한 답변을 반복하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심의 둘째 날에는 한 위원이 이미 심의 전에 제출한 내용은 알고 있으니 이를 반복하는 것은 시간의 효율적인 사용이 아니라는 지적까지 했다. 그럼에도 답변의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 심의에서 한국정부는 이전 다른 조약기구 심의나 기타 메커니즘을 통해 밝힌 바와 마찬가지로 언급된 이슈에 대해 연구와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혹은 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 사형제 폐지, 국가보안법,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성소수자 등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했다. 앞서 정부답변에 대해 지적을 했던 위원은 또 다시 발언을 했다. 그는 정부가 계속 국민적 합의를 이유로 들지만, 실제로 민감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국민적 합의가 완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인권은 여론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모니터링을 위해 들어갔던 그리스의 심의였던 것 같다. 피곤해서 잠깐 동안 심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NGO의 발언으로 들리는 듯한 것이 있어서 다시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리스 정부의 발언이었다. 브리핑이 아닌 심의 중에는 NGO 발언권이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지만 한국정부의 태도와는 상반된 것이어서 놀랐다. 인권보호체계가 잘 갖춰져 있어서 문제가 없다는 태도가 아니라, 문제가 분명히 있고 노력을 했으나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했다. 답변은 그렇게 했을지라도 실제로 해당 정부가 얼마나 개선의 의지를 가지고 있고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문제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자유권위원회는 물론 국가인권기구 및 시민사회 등의 이해관계자들과의 협력의 길을 열어두지 않았나 싶다.

 

▲ 10월 19일 공식 브리핑

 

한국은 최근 선거를 통해 유엔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재임하게 되었다. 한국의 인권상황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국제인권기준 이행이 더욱 절실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심의에서 그런 의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실제로 이번 이사국 선거에서의 한국정부의 자발적 공약도 실체적인 내용이 없었다. 미비준 조약 관련해서 팔레르모 의정서를 비준하겠다는 것 외에는 전부 비준을 ''고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국내 인권 관련해서 기존 조치의 강화, 타 국가들과 협력, 인권이사회와의 지속적인 협력 등 일반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내용뿐이었다.

오는 5(제네바 시간), 자유권위원회의 최종견해 및 권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의 최종견해와 권고 이행 촉구를 위해서 시민사회가 역할을 하겠지만, 분명 이행의 주체는 정부이며 정부가 이행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최종견해와 권고가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고 시민사회가 활발하게 활동을 해도 정부가 직접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이행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한국이 전쟁을 딛고 짧은 시간 안에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는 이야기는 어느 국제회의에 가도 쉽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심의 모두발언에서도 정부대표단은 ''한강의 기적''을 언급하며 높은 수준의 인권에 이르렀다고 했다. 하지만 인권의 수준은 아직까지 경제적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 듯이 보인다. 심의 동안에 보여줬던, 한국에서 인권이 대체적으로 잘 보장되고 있다는 정부대표단의 태도와 답변 때문이었는지, 심의가 끝날 무렵 어느 위원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심의에서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다.


'한국이 많은 국가들 보다 (인권)상황이 낫다는 것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이미 또 다른 수준에 도달해 있다(in a league of its own).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 심의에 참관한 한국 NGO 대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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