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신혜수의 사회권위원회 이야기 (11)

2012-11-02
조회수 802

무허가 빈민촌 강제철거와 주거권

 

네팔에서 아태지역 여성들 40여명이 모여 회의를 하고 난 후 네팔 여성들을 위한 추가 연대활동으로 빈민촌 철거지역을 10월 22일 돌아보았다. 카트만두 시내를 흐르는 바그마티 강변을 따라 몇 군데의 빈민촌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지난 5월 새벽 5시에 갑자기 그중 한 지역에 무장경찰들이 공무원들과 함께 들이닥쳐 6~7년간 살아왔던 257가구의 집을 부수고 내쫒았었다. 944명 철거민 중에는 어린아이들이 401명이었는데,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철거당일 치르게 되어 있던 평가고사를 보지 못했고, 7명의 임산부가 유산했다고 한다. 모기에다 뱀까지 나오는 곳에서 빗속에 노숙하던 철거민들이 갈 곳이 없어 다시 같은 지역에 텐트를 치고 움막 같은 곳에서 지금 4개월째 살고 있다.

 

5월에 나는 마침 제네바에서 정기 사회권위원회 회의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네팔에서 여성과 어린애들이 잠자다 새벽에 강제철거를 당하고 떨고 있고 경찰에 끌려갔는데 어떻게 좀 도와줄 수 없느냐는 호소에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로 연락하여 주거권문제 특별보고관실과 네팔 주재 유엔사무소로 연락하도록 했었다. 유엔의 개입으로 지금까지 더 이상의 강제철거는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실제 가서 본 광경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악취가 코를 찌르고 동물도 살 수 없는 환경에서 움막을 치고 한 곳에서 5~6명까지 생활하고 있었다. 가장 문제는 화장실이 없어 강변에 가서 볼 일을 보고, 마실 물은 NGO가 마련해준 물탱크 2개가 있었는데, 수도꼭지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멀리 떨어진 이웃 빈민촌으로 물을 길러 가고 있었다. 바로 옆에 새로 지은 경찰서가 있고, 세차장에서는 세차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거기서는 물을 안준다고 했다.

 

바그바티 강변의 빈민촌 모습

 

카트만두에는 모두 65군데의 빈민촌에서 250만 내지 4백만 명의 빈민이 산다고 한다. 바그마티 강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오염된 상태였고, 강변에는 쓰레기가 도처에 널려있었다. 아이러니는 카트만두 시 당국의 철거이유가 강변에 유엔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유엔과는 아무 관련이 없이 정부당국이 일방적으로 붙인 이름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유엔이 소유하는 것으로 믿고 있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1995년에 유엔 설립 50주년을 기념하여 네팔 당국이 강변에 유엔공원을 조성하기로 하였는데, 불안정한 정치와 행정력의 결핍으로 2011년 말에야 철거예고를 처음 내보낸 뒤 3번의 예고 때마다 아무 일도 없다가 5월에는 갑자기 전혀 예고도 없이 철거를 폭력적으로 행한 것이다. 더구나 대중과 같이 호흡한다는 것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마오이스트 정당의 집권 하에서 일어난 일이라서 더욱 아이러니다.

 

네팔은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제외하고 7개의 핵심 국제인권협약을 모두 가입하였다. 사회권규약은 1991년에 가입했는데, 마침 3차보고서를 작년에 제출하고 앞으로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사회권규약은 제11조에서 모든 사람이 “적당한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하여 자기 자신과 가정을 위한 적당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국가가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사회권위원회는 일반논평 제7호 “적절한 주거에의 권리: 강제철거”(1997)에서 모든 철거는 “해당주민들과의 협의를 거쳐 모든 가능한 대안을 강구하도록(all feasible alternatives are explored in consultation with affected persons)”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강제로 집행하는 것은 최대한 하지 말도록 하고, 강제철거를 금지하는 법을 제정할 것도 당사국에 요구하고 있다. 지역을 둘러본 다음날 기자회견을 갖고, 철거민대표들과 같이 공무원들과 회의도 했는데, 여성, 아동, 복지부의 공무원과 평화부의 공무원이 서로 자기 부처의 일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쉽게 해결될 수는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유약한 정부와 정쟁으로 대하는 정치권이 문제라고 네팔 NGO가 귀띔을 해 주었다.

 

사회권위원회의 2013년 11월 사전심의에 네팔이 올라있고, 정식 심의는 아마도 2014년에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사회권위원회에서 네팔 정부대표들에게 질문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절박한 문제라서 주거권 특별보고관, 교육권 특별보고관, 건강권 특별보고관, 여성폭력 특별보고관, 그리고 안전한 식수와 위생 특별보고관들에게 개인진정을 제출하라고 네팔 NGO들에게 조언하였다.

 

 

  • (04542) 서울시 중구 청계천로 100, 서관 10층 1058호(수표동, 시그니처타워)  
  • Tel. 02)6287-1210  
  • E-mail. kocun@kocun.org

  •  
  • 사무실 운영시간: 월-금 9:00 ~ 17:00 / 휴무. 토,일,공휴일  

  •  

(사)유엔인권정책센터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UN ECOSOC) 특별협의 지위를 획득한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KOCU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