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신혜수의 사회권위원회 이야기 (13)

20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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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의 여성폭력관련 법을 만들기 위한 로드맵

 

버마여성동맹(WLB; Women''''s League of Burma)은 미얀마/버마 내 13개 소수민족 여성들의 조직이다. 샨, 카렌, 친, 카친 등 소수민족들은 그동안 미얀마 군부에 의해 많은 고통을 겪었다. 때로는 마을이 송두리째 불태워지기도 했고, 수만 명이 태국으로 피신해 난민으로 생활해야 했다. 여성들은 강간 등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옥(jade)의 주산지라서 jade state로 불리는 카친 주는 아직도 내전이 끝나지 않았다. 다른 주는 거의 무력충돌이 끝나 평화를 다시 수립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내가 90년대부터 알고 지내던 WLB 1세대 친구는 20여 년간의 끈질긴 운동으로 많은 20~30대 젊은 여성 활동가들을 길러내었다. 200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미얀마 정부보고서 심의 시 그 친구가 10여명의 2세대 운동가들을 제네바에 데리고 와서 활발하게 로비를 펼치던 기억이 새롭다. 조국을 떠나 국경근처의 태국 치앙마이에서 활동해오던 WLB회원들은 이제 민주화를 향한 걸음마를 막 내딛기 시작한 조국에 돌아갈 계획을 하기도 하고, 또는 새로운 안식의 삶을 시작할 꿈에 부풀어있기도 하다.

 

버마여성동맹

 

개방이 시작된 미얀마/버마에는 지금 많은 국제기구의 관심이 한꺼번에 쏠려 모두들 몰려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내게도 기회가 생겼다. UN WOMEN 아태지역사무소에서 미얀마의 Gender Equality Network (GEN)이라고 하는 조직과 함께 미얀마에 여성폭력관련 법을 만들기 위한 공무원과의 워크숍(3월 23-24일)에 나를 초청한 것이다. 두어 달 전의 미얀마 국회의원들과의 워크숍에는 날자가 맞지 않아 참석할 수 없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일정이 맞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하였다.

 

GEN은 80여개 단체의 연합체인데, 독특하게도 미얀마 내 유엔 기구, 국제 NGO, 그리고 국내단체들의 세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남아공에 본부를 둔 ActionAid라고 하는 국제개발기구 미얀마 지부의 보호아래, 3층 빌딩의 방 한 칸을 얻어 쓰고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직접적 사업수행은 하지 않고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만 한다고 하였다. 나는 이틀을 먼저 양곤(Yangon; 예전의 랭군)에 도착해서 21일에 GEN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한국의 성폭력, 가정폭력법 제정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GEN 운영위원 중 한 사람이 요청하여, 별도로 미얀마 장애여성들, 소수민족 여성단체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미얀마 공무원들과의 이틀간의 워크숍은 수도인 네피도(Nay Pyi Taw)에서 개최되었다. 미얀마의 모든 활동의 중심지는 양곤이다. 그런데 미얀마 정부가 북쪽인 네피도에 8년 전에 행정수도를 건설해서 모든 정부청사와 공무원들 숙소, 의회만 네피도에 있는 실정이다. 순간 우리의 세종시가 떠올랐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았을까. 희한했던 것은 양곤에서 네피도까지 쭉 뻗은 고속도로를 7시간에 걸쳐 갔는데, 차량은 정말 많아야 한번에 2~3대 보일까 말까 했던 한적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식사와 휴식을 위해 들렸던 휴게소에는 음식점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였다. 네피도에 도착해서는 리조트의 별장같이 널찍하고 호화로운 호텔만 큰길가에 즐비하고, 사람이라고는 조경을 가꾸는 일꾼만 보이는 유령도시 같은 모습이었다. GEN 회원 한 사람은 그동안 세 번 네피도에 왔었는데, 자기는 여기 오기 싫다고, 너무나 호화로워서 화가 난다고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묵은 호텔도 리조트 같아서 숙소와 회의장 사이를 오고갈 때 골프장에서 이동하는 골프카트(?) 같은 미니차를 타고 다녔으니까.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간의 워크숍에 80여명의 미얀마 공무원들이 30여명의 GEN회원들과 함께 참석한 것은 일단 대성공이었다. 워크숍의 공식명칭은 “반 여성폭력 법: 정부 관계자들의 워크숍”이었다. 20여개 각 부처 공무원들, 판사들, 제복 입은 남녀 교도관들까지 이틀간 숫자가 줄지 않고 참석률이 좋았다. 외부 resource person으로는 태국의 판사 1명, 캄보디아 여성부차관,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었다. 개회식 사회를 본 미얀마 사회복지과 직원은 한국 대학원에서 코이카 장학생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어서 정말 반갑게 만났다.

첫 세션은 ‘국제적 이슈로서의 여성폭력’, ‘미얀마의 여성폭력실태’, ‘문화와 여성폭력’, 그리고 ‘반 여성폭력 법을 위한 국제적 기준과 틀’ 이렇게 네 가지 주제에 대한 발제가 있은 뒤 네 사람이 나란히 앉아 참가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나는 국제적 기준과 틀에 대한 발표를 했다. 여성차별철폐협약(CEDAW)은 물론이고 자유권규약, 사회권규약, 그리고 고문방지협약 상으로도 여성폭력이 다루어진다는 것을 소개하였다. 질문은 서면으로 받았는데, 활발하였다. 내가 받은 질문 중 한 가지만 소개하면, 중요한 국제적 기준인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선택의정서를 한국은 비준을 했는지, 한국에서 개인진정을 제출한 사례가 있는지, 개인진정의 실제 효과는 얼마나 있는지 등이었다.

 

미얀마 여성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

 

두 번째 세션은 여성폭력법의 외국사례를 듣는 시간이었다. 먼저 ‘CEDAW와 미얀마 법률’에 대한 검토, ‘여성폭력 법 제정 시의 방안’, ‘캄보디아의 여성폭력법’, ‘태국의 여성폭력 법’, 그리고 역시 패널토의로 질문과 답변시간이 주어졌다. CEDAW에 부합되게 법을 제정하지만 하나의 법률에 다 담을 것인가, 혹은 성폭력, 가정폭력 등 이슈별로 따로 따로 제정할 것인가, 또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 하는 시사점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세 번째 세션은 다시 내가 ‘법과 사회구조, 문화의 연관성’에 관한 발제를 한 후 가정폭력과 성폭력 사례연구 2가지를 했다. 시간부족으로 토론은 못하고, 이어 영화 ‘Provoked’(2006년 제작)를 보았다. 영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인도 출신 가정의 사례를 영화화한 것인데, 가정폭력 끝에 피해자인 여성이 남편을 불태워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에 관한 것이다. 영국 여성단체들이 살인죄로 구속된 주인공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10년 간 지속된 남편의 구타로 인해 촉발된 분노와 ‘아내구타신드롬’이 처음으로 법정에 의해 인정된 계기가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나중에 GEN 운영위원들과의 모임에서 나온 평가에 그전까지 여성폭력문제에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던 남성 공무원들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아마도 죽임을 당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수용적으로 돌아섰다는 뒷얘기다.

두 번째 날은 구체적인 법안의 내용에 대한 토론이었다. 네 번째 세션에 내가 ‘반 여성폭력 법의 주요 구성요소’를 발제하고, ‘예방, 보호, 지원서비스’에 대한 각국의 사례, ‘사법부의 지원서비스’에 대한 미얀마와 태국의 사례, 그리고 패널토의가 있었다. 태국에서 참가한 판사가 소개한 톤부리 지역법원의 여성친화적 법정만들기가 인상적이었다. 태국 최초로 법정 가운데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출입구도 따로 따로 해서 여성 피해자가 심리를 받으면서도 가해자와 마주치지 않도록 배려한 사례가 인상 깊었다. 다섯 번째 세션은 구체적으로 법제정과정에 대한 캄보디아와 태국의 사례 소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앞으로의 로드맵에 대한 미얀마 참가자들의 토의와 발표가 있었다. 지금 계획으로는 2014년까지 법안 초안을 작성해서 추진해 나갈 예정이고, 이 모든 과정은 사회복지과에서 GEN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하게 생각되었던 이런 워크숍이 열릴 수 있다는 사실에 GEN회원들은 고무된 모습이었다. 아직도 의회의 25%가 군부에 당연직으로 할당되어 있고, 여성은 상하 양원 전체 의석 664석 중 4.4%에 불과한 현실이지만 미얀마의 앞날은 그래도 희망적으로 보였다. GEN의 중추역할을 맡고 있는 중견실무자는 자기도 실은 친족 출신 소수민족이라면서 이화여대 주최의 Ewha Global Empowerment Program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해서 경쟁이 심하지만 꼭 지원하라고 말해주었다. 프로그램이 개최되는 7월에 서울에서 그녀를 만나 위로해 주고 여러 가지 후속 논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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