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신혜수의 사회권위원회 이야기 (15)

201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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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이름으로 사죄를 요구하다

- 유엔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논쟁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쪽 오렌지카운티의 부에나파크 시에 건립이 추진되어 오던 일본군위안부 기림비가 일본의 방해 공작으로 건립이 지연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는 2010년 미국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 파크에 처음 세워진 데 이어 두 번째 시도다. 기림비 건립이든 의회에서의 결의안 채택이든 아마도 일본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지속적으로 일본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미국 팰리세이즈 파크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 (출처: Suzanne DeChillo / The New York Times)

 

개별 국가로 확산되기 이전에 일본군성노예 문제는 유엔에서 먼저 제기되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일찍이 20여 년 전인 1992년에 일본군성노예문제를 유엔에 들고 간다. 일본이 처음에는 “위안부 모집은 민간업자가 한 일이고 정부는 모르는 일이다”는 식으로 답변하다가 군의 개입이 명백한 문서가 일본 사학자에 의해 발굴되자 “일부 군의 개입이 있었다. 하지만 강제는 없었다.”로 바뀌었다. 분노한 생존피해자들의 증언집회와 항의가 잇따르자 “일부 강제가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법적인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양자 간 조약으로 해결되었다”라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할까 고민”한 끝에 ‘아시아여성기금’을 민간기금으로 조성하고 이를 총리의 개인 사과편지와 함께 피해자들에게 나눠준 것이 그간 “사죄했고 배상했다”는 내용의 전말이다. 그러나 그간 일본 각료들의 연이은 망언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과는 립서비스이고 배상은 책임에 따른 정당한 법적 조치가 아닌 위로금이었다.

유엔의 조사와 일본의 법적 배상을 요구한 이래, 많은 성과가 있었다. 유엔 인권위원회(현 인권이사회) 쿠마라스와미 여성폭력 특별보고관(스리랑카)이 방문조사를 나왔었고, 조사보고서가 1996년에 제출되었다. 1998년에는 인권소위원회의 전시성노예 특별보고관 맥두걸(미국)의 방문조사보고서가 연이어 제출되었다. 필자는 당시 정대협의 국제협력위원장으로서 유엔 인권위원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도록 하기 위해 매년 제네바를 오가며 활동 했다. 이 두 보고서는 모두 일본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결론지었으며 국가의 책임으로 피해자들에게 법적 배상을 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위안부에 관한 가장 유명한 보고서인 ‘게이 맥두걸 보고서’를 쓴 맥두걸 보고관은 “‘위안소’는 강간센터”였다고 기술한 바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뿐만 아니라 유엔 조약기구에서도 일본군성노예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자유권위원회, 사회권위원회, 여성차별철폐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에서 다양한 표현으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여러 차례 일본정부에 권고하였다. 금년에도 역시 일본의 국가보고서 심의 때 이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

사회권위원회는 지난 4월 30일에 일본의 사회권규약이행 3차 보고서를 심의했다. 일본의 시민사회는 무려 74명의 인원이 몰려와서 위원들을 대상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문제부터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 과로사 문제 등 여러가지 문제를 브리핑했다. 물론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브리핑도 있었다. 특히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하면서 ‘할망구들 모두 죽어라’는 식의 막말과 비난이 난무하고 있는 사진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나는 당연히 일본군성노예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추궁했는데, 일본 정부대표단은 여전히 법적인 문제는 다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여 몇 차례 공방이 오갔다. 독일이 아직도 나치 전범을 처벌하고 피해자에게 배상을 계속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는 비판에 일본 수석대표인 우에다 대사는 “독일은 동서로 나뉘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식의 동문서답을 하였다.

일본군성노예 문제에 대한 사회권위원회의 최종견해는 심의 당시의 논란을 반영한다. 즉 일본 국가보고서에는 위안부 사안은 사회권규약이 제정되기 이전에 있었던 일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당했던 착취로 인한 지속적인 부정적 영향”을 위원회가 우려한다고 한 것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사회권규약이 제정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 해도 그 영향이 지금까지 미치고 있으니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우익들의 난동과 막말을 일본정부가 막기 위해 대중을 교육하라는 권고도 했다.

사회권위원회와 비슷한 시기에 개최된 고문방지위원회에서는 일본에 대한 비판이 더욱 강도 높게 진행되었는데, 역시 우에다 대사가 수석대표로 나와 심의를 받았다. 고문방지위원회에서의 해프닝은 나중에 언론에도 많이 보도된 바 있지만, 나는 고문방지위원회 위원으로부터 심의 직후 직접 듣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한 위원이 “일본의 인권상황은 중세시대와 같지 않은가?”라고 하자 흥분한 우에다 대사가 “일본은 중세시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발전된 국가 중 하나다.”라고 답했는데, 참관한 NGO 대표들이 이를 듣고 실소하자 “왜 웃어? 닥쳐!”(Don’t laugh. Why you are laughing? Shut up, shut up. We are one of the most advanced countries in this field.)라고 한 것이다. 우에다 대사의 이 발언은 유튜브에서 조회할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hkoQjIBA_3U)

 

민간 국제기구인 ICJ(1994)와 국제앰네스티(2005)에서도 조사보고서가 발간되었고, 알려진 바와 같이 유엔 인권위원회와 인권소위 특별보고관, 여러 조약기구에서 법적 책임을 질 것을 계속해서 권고했지만 일본은 꿈쩍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일부 인정한 과거 정부의 입장도 자꾸 번복하려고 한다. 일본은 일본군성노예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전까지 국제사회의 리더가 될 자격이 없다. 물론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는 꿈도 꾸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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