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CUN 칼럼] 문경란 이사_불량품 계속되면, 공정을 바꿔야

202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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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품 계속되면, 공정을 바꿔야

 

문경란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

 

 

스포츠폭력 고발의 파장이 일파만파다. 촉발이 됐던 이재영·이다영 선수는 국가대표 자격이 무기한 박탈되고 경기 출장이 정지됐다. 온라인 고발이 스포츠 전 종목으로 번져나가면서 가혹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청소년기에 휘둘렀던 폭력으로 성인이 된 뒤 선수 생명까지 위협받는 것이 너무 과하지 않냐는 것이다.

가혹성 여부를 판단하기에 앞서 폭력 사실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오래 전 사건의 경우 조사와 증거 확보가 어렵고 시효 문제도 있어 자칫 면죄부만 발급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럼에도 법적 처벌에 준하는 사회적 책임은 부과되어야 한다. 피해자가 오랜 세월 동안 겪었을 고통과 트라우마를 감안하면 당연한 조치며 사회정의에도 부합한다. 스포츠계에 만연한 폭력의 사슬을 단호히 끊어내고 사회적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도 불가피하다. 시민들도 동조한다.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는 일벌백계에 찬성했다.

한편에선 스포츠 선수들만 문제 삼는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엄벌은 스포츠계가 자초한 면이 크다. 한국사회가 민주화가 된지 한 세대가 넘도록 스포츠계의 폭력과 비리는 지속적으로 반복돼왔다.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고 그나마도 얼마 뒤 슬그머니 복귀한 선수나 지도자가 한 둘이 아니다. 사건이 터질 때 마다 대한체육회와 정부당국이 내놓은 실효성 없는 대책과 진정성 없는 사과에 지친 사람들의 공분이 엄벌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엄벌주의로 내닫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만 과잉 부각되고 문제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바꾸는 근원적인 처방을 놓치기 십상이다. 지속적으로 불량품이 생산되면 생산 공정 그 자체를 바꿔야지 불량품을 골라내 망치로 두드려 부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체부와 교육부는 이번에도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징계정보를 통합관리해 가해선수들의 대회 참가나 대표 선발에 제한을 하겠다는 것 따위다. 한마디로 말해 선수 겁주기이자 가해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한 대책이다. 그런데 실효성마저 의문이다. 학교폭력 이력은 졸업과 동시에 삭제된다니 징계통합관리가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폭력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온 스포츠정책의 구조개혁을 외면한 대책이라는 점이다.

스포츠폭력은 직접적으로는 한 개인의 불법적 일탈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유난히 스포츠계의 폭력이 심각하고 반복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구축된 국가주의, 승리지상주의 스포츠 정책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국회나 시민사회에서 누누이 얘기해왔고 정부당국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이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승리지상주의를 원인이라 진단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근원적인 대책이 없는 게 아니다. 2019년 조재범 사건이 터진 뒤 민관합동으로 꾸려진 스포츠혁신위원회는 7차례에 걸친 권고를 통해 국가 스포츠정책의 패러다임을 개혁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정책을 이미 내놓았다. 4개 부처 차관과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이 운동선수, 연구자, 인권전문가 등과 함께 1년에 걸쳐 고심해서 만든 종합대책이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일부 정책을 몇가지 차용해 시행해서는 아무 효과가 없다는 점은 정부가 그동안 시행해온 대책들이 증명하고 있다. 엘리트 스포츠 정책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스포츠(Sports for all!) 정책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메달보다 인권이라는 가치는 올림픽시즌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문재인대통령은 스포츠계의 폭력을 근절시킬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다. 그동안 무려 다섯 차례나 발언을 했다. 그럼에도 별로 변화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부 엘리트 기득권층의 눈치를 보거나 정치적 셈법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그동안 수많은 선수와 학부모의 희생을 볼모로 유지돼온 국위선양의 허구는 그만할 때가 한참 지났다. 폭력근절이라는 사회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스포츠폭력 미투 피해자들에게도 최고의 치유책이다. 정부당국은 더 이상 좌고우면 하지 말고 스포츠정책의 구조개혁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 이 칼럼은 시사인 통권 703(2021. 03. 09.)에 실린 것을 중복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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