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수 이사장 _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1) ‘위안부’ 기록물의 기록유산 등재, 어디까지 왔나?

202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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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❶

‘위안부’ 기록물의 기록유산 

등재, 어디까지 왔나?

 

우리 모두의 아픈 기억이자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한 소중한 기록인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은 일본의 강력한 방해에 직면해 있다. 이 기록물의 등재 노력을 함께 이끌어 온 신혜수 단장이 이번 달부터 그간의 과정과 현 상황, 그리고 기록유산 등재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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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제도라는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30여 년간 계속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이러한 노력에 아시아의 피해국 여성들과 단체들이 합류하고 국제여성운동도 힘을 보태면서, 우리는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일본정부의 공식사죄와 배상, 역사교육 등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려는 일본정부와 일본 우익의 끊임없는 획책은 아베 정권에 이어 스가 정권에서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법학 미쯔비시 교수’라는 직책을 가진 하버드대 존 마크 램지어(John Mark Ramseyer) 교수가 「태평양 전쟁에서의 성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라는 논문에서 “‘위안부’는 자발적 계약에 의한 매춘”이었다는 주장을 하고 나와, 객관적 진리 탐구를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할 학술지에서까지 거짓되고 왜곡된 주장을 펴는 새로운 양상이 등장했다.

 

“‘위안부’가 매춘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라는 주장은 일본 우익단체들이 미국 내 친일단체와 함께 내세우는 바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나라가 주도하여 8개국 14개 민간단체가 2016년에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을 때,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우리의 신청에 맞불을 놓기 위해 내놓은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이들은 당시 일본군이 규율을 잘 지킨 훈련된 군대였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신청기록물이 2744개에 이르는 방대한 목록으로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기록물을 망라한 것인 데 반해 일본 측 신청기록물은 8가지에 불과할뿐만 아니라, 그 중 7개는 우리가 신청한 기록물과 동일하다.

 


 

2016년 5월 18일 한국을 포함한 8개국 14개 민간 단체가 모여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 신청을 앞두고 신청서 서명식을 가졌다. 하지만 일본의 강력한 방해로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동등재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2015년 5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이하 국제연대위원회)를 결성했다. 한국의 6개 ‘위안부’ 운동 단체와 일본의 여러 민간단체, 그리고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네덜란드까지 8개국 14개 단체가 같이 뜻을 모은 결과다. 국제연대위원회는 각국의 ‘위안부’ 자료에서 어떤 것을 등재할 것인지를 수차례의 논의를 거쳐 결정했고, 마지막에는 영국 런던의 전쟁박물관도 공동등재자로 합류하여 모두 15개 주체가 2016년 5월 말에 공동으로 등재신청을 했다. 이는 세계기록유산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등재신청이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 심사의 첫 관문으로 2017년 2월에 열린 등재소위원회에서 9명의 전문가 위원들은 우리의 신청기록물에 대해 “대체불가능하고 독특하다”(irreplaceable and unique)는 좋은 평가를 내렸다. 이후 등재소위원회는 우리의 등재신청은 받아주면서, 일본 측의 신청을 우리 신청의 일부로 포함시키라는 제안을 달아 상위 결정기구인 국제자문위원회에 올렸다고 들었다. 하지만 2017년 10월에 내려진 국제자문위원회의 공식결정은 ‘대화를 전제로 한 등재보류’였다. 우리가 제출한 ‘등재신청 101호’와 일본이 제출한 ‘등재신청 76호’의 공동등재를 하기 위해 양측이 대화를 하도록 유네스코가 중재를 하겠다는 결정이었다.

 

사실 우리는 ‘위안부’ 기록물에 대한 일본의 맞불 등재신청이 있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문제는 이런 결정이 유네스코 기록유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대화의 기간이나 방법, 장소 등 자세한 내용은 하나도 규정되지 않은 채 일본의 강력한 압박 속에서 정치적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일본은 2015년 남경대학살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채택되자 세계기록유산의 등재결정 과정에 투명성과 책임성이 결여되었다고 비판하며, 이후 ‘위안부’ 기록물의 등재를 막기 위해 공개적으로 유네스코 탈퇴 위협과 분담금 납부 지연 전술을 구사했다. 2011년에 미국이 분담금 납부를 중지한 상황에서 당시 일본은 유네스코에서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납입하는 나라였고, 등재보류 결정이 내려진 2017년 10월에는 일본이 납부를 늦추고 있던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당장 11월부터 유네스코 직원들 월급 지급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게다가 당시 우리 정부는 2015년 말 소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이러한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결국 경제력과 정치력, 외교력을 무기로 한 일본의 공세 앞에서 유네스코는 세계기록유산 신청이 등재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전문가의 판단이 아닌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결정한 것이다.

 

‘대화를 전제로 한 보류결정’ 이후 진전 상황은 한없이 느리기만 하다. 2018년 5월에 임명된 중재자는 1년간 아무것도 못한 채 개인적 사정을 이유로 사임했고, 2019년 6월에 임명된 두 번째 중재자는 코로나19 사태 등을 이유로 2020년 10월에야 우리에게 연락을 해 왔다. 작년 말에는 두 번에 걸쳐 양측의 대화가 가능한지를 가늠해보기 위한 온라인 사전 회의를 개최했고, 이후 지금까지 또다시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는 중이다. 그 사이 일본정부는 세계기록유산 규정 자체를 바꾸기 위한 작업을 맹렬히 밀어붙였다. 그 결과 등재신청은 정부만이 할 수 있게 되었고, 특정 신청물에 반대가 있을 경우 심사대상에서 제외하고 무기한 대화를 하도록 규정이 개악되었다.

 

세계기록유산이란 평화와 인권, 상호존중을 목표로 하는 유네스코가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진실을 보여주는 역사적 문건, 피해자들이 남긴 절절한 증언과 그림,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 온 민간단체들의 활동 등 모든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그 자체로 소중한 역사적 기록이자 앞으로 이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 줄 중요한 교육 자료다. 이를 온전히 보전·유지해 올바른 역사교육, 인권교육, 평화교육의 도구로 쓰여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으는 일이 지금 더욱 절실한 이유다.

 

신혜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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