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❷
피해자의 아픔과 시민들의 노력
담긴 2744점의 역사
우리 모두의 아픈 기억이자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한 소중한 기록물인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은 일본의 강력한 방해에 직면해 있다. 기록물의 등재 노력을 함께 이끌어 온 신혜수 단장이 전하는 두 번째 이야기는 일본 정부와 우익이 한사코 반대하는 ‘위안부’ 자료들의 면면과 그 선별 과정이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목록에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피해자가 있는 아시아 지역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들을 중심으로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등에 흩어져 있는 연합군 확보 자료까지 포함돼 있다. 2744점에 이르는, 세계기록유산 사상 유례가 없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 기록물은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563건)로 대부분 공적인 사료들이다. 1931년부터 1955년 사이에 생산된 이들 자료에는 우리가 ‘위안부’ 관련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사진이나 ‘위안소’ 규정, 당시의 신문보도 등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한국의 국가기록원과 독립기념관 소장 자료(11건), 중국의 베이징 등 8개 지역 국가기록원 소장 자료(49건), 대만 국사관(國史館)과 대만국립대 도서관 자료(62건)를 비롯해 네덜란드(325건), 영국 런던왕립전쟁박물관(30건), 미국 국가기록원 NARA 소장자료(83건)도 포함돼 있다. 개인 소장 자료로는 1940년대에 버마(현 미얀마)에서 ‘위안소’를 관리했던 조선인 관리자의 일기, 1930년대 말 상하이의 일본인 군의관의 일기, 그리고 1946년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으로 귀환을 허가받은 대만인 ‘위안부’ 피해자의 도항허가증이 있다.
일본의 WAM(여성들의 전쟁과평화자료관)이 제작 및 소장하고 있는 자료인 일본군 ‘위안소’ 분포도.
두 번째 종류는 1449건에 이르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관련된 자료로, 피해자들이 직접 생산한 자료가 여기에 해당된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피해자임을 국가에 신고한 피해자 진술서, 피해자들의 구술과 영상 증언 자료, 끌려갈 때의 상황이나 ‘위안소’ 등에서의 체험과 심정을 표현한 생생한 그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과정에서 만든 작품, 병원 진료기록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호주 전쟁기념관이 보관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7명의 이름을 수놓은 손수건도 귀중한 자료다. 세 번째 종류는 운동 단체들이 생성한 723건의 자료들로, 일본 상대 법적 소송자료와 최초의 수요집회 사진,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판결문, 학생들이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청원 엽서 등 지난 30여 년간 시민사회가 펼쳐온 운동과 국제인권계의 지지를 보여주는 기록물들이다.
우리는 등재 신청할 자료를 선별하기 위해 몇 차례 국제연대위원회를 개최해 각국의 소장 자료에 대해 발표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회의에는 피해국인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네덜란드의 여러 단체뿐만 아니라 가해국인 일본의 WAM(Women''''''''''''''''s Active Museum; 여성들의 전쟁과평화자료관)도 참여했다. 필자는 연합국의 자료들을 등재하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NIOD(전쟁과 홀로코스트, 제노사이드 연구소)와 헤이그의 국가기록원, 영국 런던전쟁박물관, 호주 국가기록원과 전쟁기념관 등을 직접 찾아 자료를 살펴보고 관련자를 면담했다. 특히 호주에서 면담한 데이비드 프릭커(David Fricker) 호주 국가기록원장은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을 심의하는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의 부위원장이기도 하여 주의 깊게 살펴보기도 했다. 미국 국가기록원 측에는 여러 차례 이메일로 문의한 끝에 해당 자료가 공적인 소유물이므로 따로 허가를 받지 않고도 등재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한편 연합국의 이 모든 공공기관에 공동등재자로 함께 하겠느냐는 제의를 했지만 대부분은 자료 등재만 허락했고, 유일하게 런던전쟁박물관이 공동등재자로 이름을 올렸다.
1 김순덕 할머니가 직접 그린 작품인 ‘끌려가던 날’
2 호주 전쟁기념관 소장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 7인의 이름이 수놓아진 손수건.
3 대만인 ‘위안부’ 피해자인 이유추안의 여행증명서.
등재 신청 과정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의 ‘위안부’ 자료가 빠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2014년 말부터 제네바의 북한대표부를 통해 연락했고, 북한도 처음에는 등재를 같이 하겠다는 답변을 주기도 했으나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위안부’ 문제는 초기부터 남북 간에 긴밀하게 협력한 사안이기도 한 만큼, 차후에라도 북한의 기록물들이 신청 목록에 추가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신혜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 단장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위해 ❷
피해자의 아픔과 시민들의 노력
담긴 2744점의 역사
우리 모두의 아픈 기억이자 역사를 바로 알리기 위한 소중한 기록물인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은 일본의 강력한 방해에 직면해 있다. 기록물의 등재 노력을 함께 이끌어 온 신혜수 단장이 전하는 두 번째 이야기는 일본 정부와 우익이 한사코 반대하는 ‘위안부’ 자료들의 면면과 그 선별 과정이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목록에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피해자가 있는 아시아 지역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들을 중심으로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등에 흩어져 있는 연합군 확보 자료까지 포함돼 있다. 2744점에 이르는, 세계기록유산 사상 유례가 없는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이 기록물은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563건)로 대부분 공적인 사료들이다. 1931년부터 1955년 사이에 생산된 이들 자료에는 우리가 ‘위안부’ 관련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사진이나 ‘위안소’ 규정, 당시의 신문보도 등이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한국의 국가기록원과 독립기념관 소장 자료(11건), 중국의 베이징 등 8개 지역 국가기록원 소장 자료(49건), 대만 국사관(國史館)과 대만국립대 도서관 자료(62건)를 비롯해 네덜란드(325건), 영국 런던왕립전쟁박물관(30건), 미국 국가기록원 NARA 소장자료(83건)도 포함돼 있다. 개인 소장 자료로는 1940년대에 버마(현 미얀마)에서 ‘위안소’를 관리했던 조선인 관리자의 일기, 1930년대 말 상하이의 일본인 군의관의 일기, 그리고 1946년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으로 귀환을 허가받은 대만인 ‘위안부’ 피해자의 도항허가증이 있다.
두 번째 종류는 1449건에 이르는 ‘위안부’ 피해자들과 관련된 자료로, 피해자들이 직접 생산한 자료가 여기에 해당된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피해자임을 국가에 신고한 피해자 진술서, 피해자들의 구술과 영상 증언 자료, 끌려갈 때의 상황이나 ‘위안소’ 등에서의 체험과 심정을 표현한 생생한 그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과정에서 만든 작품, 병원 진료기록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호주 전쟁기념관이 보관하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 7명의 이름을 수놓은 손수건도 귀중한 자료다. 세 번째 종류는 운동 단체들이 생성한 723건의 자료들로, 일본 상대 법적 소송자료와 최초의 수요집회 사진,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 판결문, 학생들이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낸 청원 엽서 등 지난 30여 년간 시민사회가 펼쳐온 운동과 국제인권계의 지지를 보여주는 기록물들이다.
우리는 등재 신청할 자료를 선별하기 위해 몇 차례 국제연대위원회를 개최해 각국의 소장 자료에 대해 발표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회의에는 피해국인 한국, 중국,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네덜란드의 여러 단체뿐만 아니라 가해국인 일본의 WAM(Women''''''''''''''''s Active Museum; 여성들의 전쟁과평화자료관)도 참여했다. 필자는 연합국의 자료들을 등재하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NIOD(전쟁과 홀로코스트, 제노사이드 연구소)와 헤이그의 국가기록원, 영국 런던전쟁박물관, 호주 국가기록원과 전쟁기념관 등을 직접 찾아 자료를 살펴보고 관련자를 면담했다. 특히 호주에서 면담한 데이비드 프릭커(David Fricker) 호주 국가기록원장은 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을 심의하는 유네스코 국제자문위원회의 부위원장이기도 하여 주의 깊게 살펴보기도 했다. 미국 국가기록원 측에는 여러 차례 이메일로 문의한 끝에 해당 자료가 공적인 소유물이므로 따로 허가를 받지 않고도 등재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한편 연합국의 이 모든 공공기관에 공동등재자로 함께 하겠느냐는 제의를 했지만 대부분은 자료 등재만 허락했고, 유일하게 런던전쟁박물관이 공동등재자로 이름을 올렸다.
1 김순덕 할머니가 직접 그린 작품인 ‘끌려가던 날’
2 호주 전쟁기념관 소장 네덜란드 ‘위안부’ 피해자 7인의 이름이 수놓아진 손수건.
3 대만인 ‘위안부’ 피해자인 이유추안의 여행증명서.
등재 신청 과정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의 ‘위안부’ 자료가 빠졌다는 점이다. 우리는 2014년 말부터 제네바의 북한대표부를 통해 연락했고, 북한도 처음에는 등재를 같이 하겠다는 답변을 주기도 했으나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위안부’ 문제는 초기부터 남북 간에 긴밀하게 협력한 사안이기도 한 만큼, 차후에라도 북한의 기록물들이 신청 목록에 추가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신혜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 단장